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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남경 Sep 24. 2021

순간의 완벽함

이번 명절맞이 대구 방문이 여느 때 보다 특별했던 이유

대구에 도착하고 4일 내내 나는 집에 딱 붙어 엄마가 차려주는 세끼를 먹고, 추석 음식을 만들고, 아빠랑 티비를 보고, 마냥 푸르기만 한 바깥 풍경을 바라보면서, 때때로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느꼈다.


더 이상 할 일이 없어 쇼파에 앉았는데 나는 처음으로 ‘순간의 완벽함’이라는 것을 느꼈다. 지금 이대로도 좋다. 이대로 생을 마감한다 해도 나는 후회 없이 죽겠다.


정말 원하던 걸 가진다거나, 마침내, 고대하던 일을 마쳤을 때, 아니면 오랫동안 준비하던 프로젝트의 결과가 좋았을 때, 복권에 당첨되었을 때, 내가 투자한 코인의 수익률이 100%를 찍었을 때. 뭐 그럴 때나, 뿜어져 나오는 아드레날린을 느끼며 ‘죽어도 여한이 없구나’라는 마음의 소리가 나올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 아니었다.

하루에 세 번, 아침, 점심, 저녁 시간쯤이 되면 아이구 우리 똥강아지들 배고프겠다 하면서 부엌으로 향하는 엄마가 오늘도 점심으로 맛있는 한 끼를 차려주셨고 그것을 먹고서 나는 요리에 감사하다는 의미로 마땅히 설거지를 했다. 그렇게 나의 할 일은 끝났다. 그대로 나는 쇼파에 앉았고, 아빠는 커피를 내려서 거실 탁자로 다시 향하고 있었고, 엄마는 설거지를 마친 부엌에서 남은 뒷정리를 하고 있었다. 어딘가 당연하다는 듯 흘러가는 일상. 베란다 너머로는 굽이굽이 초록색 산과 가을을 맞아 아주 푸르러진 하늘이 보였고 시원이 바람이 살랑 불어왔다. 정말 완벽한 순간이었다.


나는 무엇을 그리도 갖고 싶었을까. 무엇을 그리도 이루고 싶었을까. 인간은 어떤 존재일까. 무엇을 가져야만 할까. 굳이 가져야만 내가 살아있는 걸까. 인생이 흐르는 속도에 맞게, 그냥 그렇게 사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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