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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ee Dec 27. 2020

배경여행 서재 소재

작품의 배경별로 정리한 서재 이야기

2년 전 이사를 와서 내 방이 생기자마자 하루키 컬렉션을 꾸몄다. 컬렉션이라고 해봤자, 책장 두 칸을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단편과 장편 소설로 정리한 정도였지만 덕후들에겐 이런 게 꽤 기쁜 일이다. 바라만 보고 있어도 흐뭇하다. 2년 내내 하루키 컬렉션에만 만족하며 지내다 오늘 드디어 작품의 배경별로 책장을 정리했다. (분류한 책보다 분류하지 못한 책이 더 많지만 더이상 정리하면 쓰러질 것 같은 관계로 이쯤에서 마무리했다. 다음 정리는 또 2년 후가 되려나.)


하루키 컬렉션

2년 전에 컬렉션을 만들고 나서 신작이 몇 권 더 출간되기도 했고, 일본에 출장을 오가며 사들인 원작이 몇 권 늘어 하루키 컬렉션은 옆 책장으로 새끼를 쳤다. 원서들이 따로 모였고, 하루키가 쓴 글이 아닌 하루키를 분석한 글들만 다른 칸에 배치했다. 그리고 하루키가 추천하는 미국의 몇몇 작가의 글을 모은 칸도 하나 마련했는데, 아직까지 하루키가 추천한 작가의 작품 중 흠뻑 빠져든 작품은 만나지 못했다. 아 레이몬드 챈들러의 <기나긴 이별>에 나온 김렛 레시피는 정말 만족해서 종종 마시고 있다. (로즈사의 라임주스와 진을 반반 섞고 아무 것도 넣지 않아야 한다.) 아직 <기나긴 이별>은 다 읽지 못했다. 원서 섹션에 특히 추억이 많은데, <무라카미 T>(커버에 싸여있음)와 <무라카미 송즈>는 친구가 선물해준 책이다. <무라카미 송즈>를 선물 받은 곳이 하루키의 단골 바인 바 라디오였다. 하루키가 번역한 <크리스마스의 추억>은 <양을 쫓는 모험의> 배경 니우푸의 한 숙소에서 주인아주머니가 떠나는 길에 선물로 주셨다. 추억이 듬뿍 담긴 칸.


홋카이도 컬렉션

꽤 오래전 홋카이도 가이드북 집필 계약을 했다. 계약을 하고 취재 및 집필 작업에 들어갔는데 한일 관계가 악화되었고, 코로나가 창궐했다. 출간은 무한정 늘어지고 있고 책 작업을 좀처럼 못하고 있지만 홋카이도 컬렉션은 잘 보존하고 있다. 가이드북 작업에 도움을 받고 있는 경쟁사 책들이 모여있고, 홋카이도를 배경으로 한 소설, 에세이, 만화 컬렉션이 있다. 미우라 아야코(그러고 보니 <빙점>이 어디로 갔지?)는 홋카이도를 대표하는 작가로 워낙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내가 추천하고 싶은  홋카이도 배경여행의 최고봉은 사쿠라기 시노의 작품들이다. 특히 홋카이도 동부 여행을 간다면 사쿠라기 시노 작품 하나는 꼭 읽고 갈 것을 강력 추천. 갈까 말까 망설이는 사람도 꼭 읽어보는 것이 좋다. 마지막 책장을 덮자마자 비행기표를 예약하게 될 것이다.


https://brunch.co.kr/@istandby4u2/126


가보고 싶은 일본 배경여행

나의 저서, <다정한 여행의 배경> 리뷰 중에는 ‘너무 일본에 편중되어 있다’는 이야기가 많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인데 이것이 내 책의 치부가 되는 것 같아 조금 속상한 마음은 있다.


일본으로 교환학생을 다녀왔기 때문에, 언어의 장벽이 없음 > 사람들과 대화가 되기 때문에 에피소드도 많고 쓸 거리가 많음

물리적으로 가까움 > 계속 직장을 다녔기 때문에 긴 여행을 하는데 한계가 있음


앞으로 가보고 싶은 일본 배경여행 칸은 여전히 비교적 넓다. 최근에 읽은 <파친코>는 정말 추천하고 싶은 소설이다. 일본만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은 아닌데, 한때 머물렀던 요코하마에 다시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 이곳에 꽂아두었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는 가루이자와에 다시 가보고 싶게 하는 작품이고, <끝난 사람>에 나온 도쿄의 한 레스토랑과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데뷔작 시나리오가 된 <환상의 빛>의 배경, 소소기 여행도 벼르고 있다.


우리나라 배경여행

이상하게 한국 작가들의 소설은 읽고 나서 배경이 된 곳에 가보고 싶단 기분이 들지 않는다. 작품에 그려진 감정들이 여운으로 남을 뿐 배경이 어디였는지는 금세 까먹어버리곤 한다. 최근 작품 중엔 장류진 작가의 <일의 기쁨과 슬픔>에 판교의 이상한 다리가 나왔을 땐 기뻤고 (자주 지나간 길이라), 이도우 작가의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을 읽고 나선 이화장에 가보고 싶단 생각을 했다. 우리나라는 아마 30년 넘게 살며 바라본 배경들이라 익숙하여 호기심이

생겨나지 않는 것일까.


미국 배경 여행

팟캐스트을 듣다가 피츠제럴드 이야기가 나와 읽게 된 <리츠 호텔만 한 다이아몬드>. 화려함의 극치를 표현하는 문장들 덕분에 글을 읽고 있는 내내 눈이 부셨다. 언젠가 소설의 배경인 몬태나주 로키산맥에 위치한 1.6킬로미터의 결점 없는 다이아몬드를 찾으러 가보고 싶단 생각을 한다. 당연 가상의 공간인 줄 알면서도.


유럽 배경여행

한강의 <흰 도시>를 읽으며 배경인 폴란드 바르샤바가 너무 궁금했다. 최근 읽은 소설 <비와 별이 내리는 밤>은 끝까지 읽는데 고생을 좀 했지만 그리스 배경이 무척 매력적이다.


다정한 여행의 배경

<다정한 여행의 배경>이 출간된 지 꽤 오래되어서 섹션은 만들까 말까 고민을 하다가 한 칸을 내어주기로 했다. 이후에 떠난 배경여행 책들도 같은 칸에 정리하려다 공간이 좀 협소해서 최상위 층으로 옮겨버렸다. 개인적으로 마음이 가는 작품 및 배경은 <태풍이 지나가고>의 기요세 아사히가오카단지와 <내게 무해한 사람> 속 광명시. 단지라는 점에서 두 곳이 매우 닮아 있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은 배경과 상관없이 모여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settingtripbook


그리고

책에 관한 이야기가 담긴 책들과 업무에 관한 책들만 따로 모은 칸도 마련했다. (본업을 들키게 될 수도) 요즘 읽고 있는 책 섹션도 있는데, 조금 부끄러운 책들이 있어, 공개는 하지 않는다.




아 이 글을 쓰게 된 이유.

오전에 이북 리더기를 샀다. 책을 계속 관리하는 게 힘들단 생각에서였는데, 이렇게 하루를 온전히 쏟아부으며 책을 분류하고 정리하고... 또 책을 읽으며 ‘꼭 가봐야지’, '당장 가보고 싶어' 했던 마음들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잃게 되는 건 조금 쓸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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