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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이인형 Jul 06. 2024

희망퇴직을 신청했다

10년만에 쉬는건가


7월  회사가 흑자에 전환했다. 전사가 여름방학을 가지고 엄마와 유럽여행을 다녀왔다.

9월  YoY 역신장이 시작되었다. 나는 인도를 다녀왔다 

10월 올해 실적이 전년대비 성장하지 못할 경우 최악의 상황이 올 수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11월 대표님의 스피치에서 "구조조정"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그리고 24.1월 회사는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확실한 희망퇴직 공고가 진행되기 전부터 어느정도 나는 결심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MD로 10년차가 되는 해였으며 팀장, 리더의 포지션으로 일한지는 3년이 넘어가는 시점이었다. 


작년 가을부터 회사에 내가 필요한 사람인가? 나는 이 회사에서 성장하고 있는가? 를 스스로 계속 고민했다. 이 고민은 사실 이직 전부터 계속했던 고민이었고 이직을 하고 새로운 회사를 옮기면 정답을 찾을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23년 가을에 인도를 다녀오기도 했었다. 

어떠한 인생을 정답을 찾기보다는 해당 문구가 나를 끌리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현재의 일상이 재미없다면 인도를 가보라. 그렇다면 현재의 평범한 일상에 감사하게 될 것이다" 

어떠한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인도의 무질서함을 표현하는 문장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인도가 너무 재밌었다.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 가라고 추천은 하지 않는다) 


나는 일상에서도, 여행에서도 그리고 일에서도 새로운 이벤트와 미션을 기대하는 사람이었다. 

이직한 회사는 다닌 회사 중 가장 친절한, 가장 착한 사람들과 일할 수 있는 회사였다. 

하지만 조금은 더 치열하게 일하고 싶다는 나와 너무 편안함에 길들어진 내가 충돌하며 이렇게 일해도 괜찮을까 라는 질문을 계속해서 던지게 만드는 환경이었다. 내가 스스로 동기부여를 하고 달릴 수 있는 구성원이었다면 좋았겠지만 그렇지는 않았던 것 같다. 


희망퇴직 공고를 받고 대표님의 앞으로의 계획을 듣고 생각했다. 

회사를 위해서, 그리고 나를 위해서도 '나는 회사를 떠나는 것이 맞다.'


24살 처음 사회경험을 시작한 이후로 대만으로 1년 어학연수를 다녀온 기간을 빼고는 쉰 적이 없었다. 물론 이직을 앞두고 2주정도씩, 또는 회사를 다니면서 휴가를 다녀온 적은 많지만 앞으로의 계획이 없이 쉬기로 결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구조조정의 과정은 떠나는 사람보다는 남는 사람들에게 더 힘든 과정일 수도 있다. 

떠나는 사람은 앞으로의 계획이 있거나 또는 후련한 마음으로 떠나지만 남는 사람은 업무 공백과 허전함을 그대로 남아 견뎌야하기 때문이다. 


퇴사 서류를 작성하고 나의 스톡이 휴지조각임이 됨을 깨달으며 이게 맞는지에 대한 고민을 계속해서 했던 같다. 내가 퇴사를 하기로 결정한 마당에 팀원들의 앞으로의 플랜에 대해서 상담을 해주는 것도 고역이었다. 남으라고 그렇다고 떠나라고 조언을 해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회사의 팀장이 아닌 직장생활을 몇 년 더 해본 선배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들어줄 수 밖에 없었다. 


희망퇴직 발표 이후 2주만에 절차는 마무리되었고 불행 중 다행으로(?) 많은 인원이 희망퇴직을 신청하여 추가 구조조정은 없이 절차가 마무리 되었다. 마지막 4개월, 그래도 회사를 전환시켜보겠노라 열심히 함께 일한 한 마케팅팀 팀장님과 점심 후 회사를 나섰다. 


대낮에 강남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가는 기분이 묘했다. 

2년 동안의 회사 생활의 흔적은 조그마한 레디백에 모두 담겨있었다. 


퇴사를 하고 나에게 남은 것은 3개월치 월급의 위로금 (=이직지원금), 나라에서 주는 실업급여

그리고 2년간의 회사생활을 마무리하며 받은 퇴직금이었다. 


그렇게 24년 2월, 나의 백수생활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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