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ino Jul 27. 2023

사라진 직업 속 엿보이는 옛날 생활

<사라진 직업의 역사> 를 읽고


직업과 관련한 박물관 프로그램 <이런 '일'이 있었구나!>를 진행하면서 사라진 직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외국책으로는 <역사 속에 사라진 직업들>을 읽었는데 뭔가 아쉬웠다. 한국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사라진 직업의 역사>란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역사 속에 사라진 직업들>이 신기하고 재밌는 과거의 직업을 단편적으로 훑었다면 <사라진 직업의 역사>는

한국의 옛날 직업에 관한 이야기를 흥미롭게 다루고 있다.

옛날 신문과 잡지 읽기를 즐긴다는 저자는 꼼꼼한 자료를 바탕으로 마치 그 시대를 살다 나온듯 섬세한 감성을 담아 글을 쓰고 있다. 지식의 나열이라기보다 사람들 삶의 조각을 영화나 드라마처럼 보여주는 힘이 있다.

이 책에서 살펴본 직업은 전화교환수와 변사, 기생, 전기수, 유모, 인력거꾼, 여차장, 물장수, 약장수의 9가지 이다.


직업들은 시대가 바뀜에 따라 또 다른 이름으로 바뀌기도 하고 아예 사라지기도 했다.

저자는 당대의 신문과 잡지가 전하는 이들의 제법 깊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시대로 훅 들어가 보는 일은 어림짐작도 되지 않는 에피소드들을 만나는 일이기도 하다.


전화교환수가 처음 일했던 곳은 왕궁. 고종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오면 신하들은 바로 전화를 받지 못했다. 전화기를 향해 큰절을 네 번이나 올린 뒤 국왕의 부름에 대답했다. 빨리 받는게 미덕인 전화의 속성과는 완전 배치되지만 그랬으리라 능히 짐작된다.


변사에 관한 이야기도 재미있다. 변사는 영화 선택을 좌우할 정도로 인기 직업이었다. 단순히 영화 목소리를 대신하는 정도가 아니라 외국 배우 이름을 김서방, 박서방이라고 붙이기도 했다. 각색을 잘하는 변사는 인기도 많았다.


우리나라에는 특이하게도 나라에서 직접 관리하는 관기가 있었다. 기생에게도 계급이 있어서 일패, 이패, 삼패로 나뉘는게 이색적이었다. 남자에게 동정을 구하느니 차라리 남자와 똑같이 살겠다며 조선 여성 최초로 단발을 한 강향란에 대한 이야기는 여운이 오래 남았다.


전기수(傳奇叟)란 직업은 낯선데 책이나 소설을 낭독해 주던 사람이었다. 전기수의 활동을 재미있게 묘사한 글을 소개하고 있다.

'긴장되고 중요한 대목에 이르면 갑자기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러면 사람들이 그다음 대목을 듣고 싶어서 앞다투어 돈을 던진다. 이를 '요전법(邀錢法)' 이라 한다. '


유모 직업 이야기중 가슴 아픈 대목은 돈을 벌기 위해 다른집 유모가 된 젖먹이 엄마의 이야기다. 일하는 집 눈치가 보여 정작 자신의 아이에게는 젖을 못 먹였다. 아이 입장에서는 엄마 젖을 빼앗긴 셈이었고 결국 젖도 못먹은 아이는 세상을 떠나야 했다.


일본에서 시작된 인력거꾼은 조선 후기 등장했다. 지금으로 치자면 택시기사라고 봐도 무방할 인력거꾼 이야기에는 시대의 다양한 모습이 그대로 담겨있다. 먹고 살기가 힘들어 부인이 속옷을 저당잡힌 이야기,권세 있는 주인에게 소속된 인력거꾼이 경찰에게도 함부로 한 이야기, 단발령을 거부하다가 통감부에서 영업을 정지시키기까지 하자 어쩔 수 없이 단발을 했더니 또 조선 사람들이 욕을 해댄 이야기.


힘겹게 시대를 살아가던 인력거꾼에게 놀라운 반전이 있다. 1924년 인력거꾼 3000명이 '경성차부협회'를 조직해 매달 모은 돈으로 '대동학원'이라는 학교를 설립한 것이다. 자식들만큼은 훗날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면서... 중간에 고비가 왔을 때는 또 인력거를 애용했던 기생이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박봉에도 외모 가꾸기와 손님들의 흔한 성희롱,평균 10시간이라는 근무시간에 시달렸던 여차장 이야기는 중고등학교 시절 만원버스를 몸으로 버텨내던 차장들의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직업으로는 물장수가 신기했다. 북청 물장수(북청은 함경도 지명이다. 북청 출신 사람들이 물장수를 처음 시작하기도 했고 단합해서 물장수를 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라고 들어는 봤어도 아는 사실은 거의 전무해서이다. 지금은 집에서 정수기로 물을 많이 먹지만 조선 후기만 해도 각 가정에서 물을 공급받았다 한다. 물통을 어떻게 이고 지고 다녔을까.


<북청 물장사>

김동환

새벽마다 꿈길을 밟고 와서

머리맡에 찬물을 솨~ 퍼붓고는

그만 가슴을 디디면서 멀리 사라지는

북청 물장사

물에 젖은 꿈이

북청 물장사를 부르면

그는 삐걱삐걱 소리를 치여

온 자취도 없이 사라져버린다

아침마다 기다려지는

북청 물장사



'물에 젖은 꿈'이라니 시인의 표현은 역시다 싶으면서도 이 시절 북청 물장수를 매일 기다리는

사람의 심정이 나타나는 것 같다.

<사라진 직업의 역사>는 예전에는 있고 지금은 없는 우리네 직업에 관한 이야기다. 사라진 직업만이 아니라 사라진 풍경, 사라진 관계, 사라진 시간들의 이야기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렇게까지... 살았구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