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ino Dec 18. 2023

'부러운 인생'은 이런 게 아닐까

전순예 <내가 사랑한 동물들>을 읽고

이사를 하느라 책을 정리하던 중에 발견한, 출처도 모호한 책이었다.

어쩌다 애매하게 남은 시간에 가볍게 읽으려고 펼쳤다.

1945년에 강원도에서 태어난 작가가 환갑이 되어 지난 기억을 더듬어 쓴 글이다.

 제목 그대로 어릴 때부터 함께 한  동물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다.


살림이 어렵던 때, 작가의 어머니는 장에 가서 삐쩍 마른 암송아지 한 마리를 사 와서 지극정성으로 키운다.

가족들은 물론 동네 사람들이 "다 죽어가는 송아지를 사 왔다"라고 타박했지만 작가의 엄마는 그 송아지를 부엌구석에서 콩죽을 떠먹여 가며 키웠고 그 송아지는 어느새 훌륭한 암소로 자라 새끼를 낳으며 작가의 집안을 일으켰다.


작가네 집안은 동물을 아끼고 잘 키웠던 것 같다. 농고를 다니던 작가의 오빠는 학교에서 영국산 돼지를 데려왔다. 1년 동안 잘 키우면 학비를 면제해 준다고 했단다. 이 돼지는 식성이 좋아서 '꿀꿀이'란 이름이 붙여졌고 가족들이 계속 먹을 걸 마련해 줘야 했다. 돼지는 가족들의 사랑을 듬뿍 받은 덕이었는지 엄청 크게 자라 학교까지 데려가는데 여섯 명의 장정이 동원되어야 했다.

1년 동안 정이 들었던 가족은 눈물바람으로 꿀꿀이를 배웅했다. 고등학교에 간 꿀꿀이는 작가네 집에서처럼 웃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강원도 사투리로 난챙이라 불리는 새매가 집의 닭들을 잡아먹자 화가 나서 생포해서는 또 영물이라고 다친 곳을 고쳐주고 먹여주기도 했다는 작가의 가족들.


이웃집 큰 닭이 횡포를 부리는 게 분했던 작가의 작은 오빠가 장날 병아리를 사 와서는 훌륭하게 키워내 복수를 했다는 통쾌한 이야기까지 읽고 나면 사람과 동물의 관계는 어디까지 가능한 걸까, 가늠이 되기는 할까 싶게 경이롭다.

그 시절 엄마에게 닭 먹일 소고기를 사달라고 했다니 작은 오빠의 정성과 열정이 어땠을지 짐작이 간다.


책에는 동물과 인간의 교감에 관한 이야기뿐 아니라 어렵게 한 시절을 살아왔던 이야기,

옛날 우리네 삶과 마을에 관한 이야기들이 잘 녹아있다.

닭이며 소, 돼지, 오리뿐 아니라 매와 뱀, 부엉이, 너구리, 이구아나까지 등장한다.

작가도 가족들도 평생 동물을 사랑해 왔기에 따뜻한 교감의 순간들이 책 읽는 내내 흐뭇하게 만든다.


작가는 '작가의 말'을 통해 '세월의 갈피갈피에 두고 온 많은 동물들을 앨범을 넘기듯 가끔씩 꺼내봅니다' 라며 '마지막까지 내 인생을 풍요롭고 행복하게 해 주었던 많은 동물들에게 감사하며 그 기억을 아름다운 선물 보따리처럼 안고 살아갈 것'이라고 했다.


작가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풍요로워졌다.

다른 어떤 이의 인생보다 동물들을 사랑하며 함께 한 작가의 인생이 진심으로 부러웠다.




매거진의 이전글 얇지만 알찬 플라멩코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