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알드 달 단편소설집 <맛>
너 내 얘기에 푹 빠져들지 않고는 못 배길걸?
얇은 콧수염을 한 채 멋진 양복을 차려입은
작가가 한쪽 눈을 찡긋거리며 말을 걸어온다.
소설은 읽는 내내
멋진 마술이 내 앞에서 펼쳐지는 듯 흥미진진하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작가 로알드 달은
영국의 장식미술, 클래식 음악,
포도주, 옷, 꽃이며 식물, 심지어 거미류에까지
해박한 지식과 흥미를 가지고 있으며 이를 작품 군데군데 적절히 펼쳐놓고 있다.
모두 10편의 단편소설이 실린 <맛>은
모두 다른 이야기들이지만 치밀한 빌드업으로
허를 찌르는 결말을 들려준다.
꾀를 부리다 제 무덤을 파는 내용이 많고
도박과 라이터가 자주 등장하는 게 흥미로운 대목이다.
<목사의 기쁨>:우연히 영국 시골마을에서
진귀한 가구를 헐값에 손에 넣은 업자 보기스는
아예 주날마다 영국 시골을 샅샅이 훑어
큰 부자가 될 계획을 세운다.
이상한 사람으로 보이면 안 되니
안전하게 목사인 척 위장한다.
그런 그 앞에 토머스 치 펀데일의 귀한 작품이 나타나고
보가스는 무식해 보이는 농촌 사람들을 상대로
작업에 들어가는데…
<손님>:카사노바보다 더 많은 여성들을 탐하고 다녔던
부유하고 방탕한 숙부 오스왈드의 기막힌 반전 이야기.
여행길에 시리아의 한 불결해 보이기
짝이 없는 주유소에 들른 오스왈드.
차 부품이 고장 난 오스왈드는 꼼짝없이 그 주유소에서
하룻밤을 보내야 했는데 거짓말처럼 사막에 대저택을 보유한 아랍인 부호가 그를 초대해 하룻밤 묵고 가라고 한다. 그 부호의 부인과 딸은 뛰어난 미녀들이었고 여자를 유혹하는 데 자신 있던 오스왈드는 둘 중 누구를 유혹할지 행복한 고민에 빠지기까지 한다.
<맛>: 역시 짜릿한 반전의 작품. ‘식도락가’ 모임 회장이자 유명한 미식가 리처드 프랏은 마이크 스코필드 저녁식사에 초대됐다.
언제나 리처드 프랏을 위해 특별한 음식을 내놓는 마이크는 이번에도 특별한 와인을 준비했다.
아무리 미식가라도 맞추기 어려운 종류의 와인이라고 소개하자 미식가는 맞출 수 있다고 자신하고 그러다 둘은 거의 자신들의 전부라고 할 것을 걸고 내기를 한다.
<항해 거리>: 항해 거리를 두고 내기를 한 보티볼 씨는 배가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항해해 자신이 질 것 같자 어처구니없는 작전을 세운다.
<빅스비 부인과 대령의 외투>: 한 달에 한 번 남편 몰래 대령과 바람을 피우던 빅스비 부인은 대령으로부터 귀한 외투를 선물 받지만 남편에게 밝힐 수가 없어 꾀를 내고 모든 건 계획대로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 같았다.
<남쪽 남자>: 라이터 잘 켜진다고 자랑했다가 졸지에 손가락을 건 내기에 걸려든 청년. 라이터가 열 번 제대로 켜지지 않으면 왼쪽 새끼손가락을 잃고 대신 제대로 켜지기만 하면 캐딜락을 얻을 수 있다.
<하늘로 가는 길>: 비행기, 기차, 배 등의 시간을 놓치는 것에 강박이 있는 포스터 부인. 사랑하는 손녀를 만나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으로 가게 된다. 그런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남편은 계속 준비를 늦게 하고 날씨 때문에 비행기가 못 뜰 거라는 둥 조금씩 그녀의 신경을 긁는다.
결국 비행기 일정이 하루 늦춰지고 그녀는 다시 집에서 하루뒤 출발하는데 남편이 아예 자기 행선지에 들렀다가 공항에 가라고 한다. 남편 말대로 하면 늦을 게 뻔하다.
그런데도 차가 출발하려는 순간 남편은 작은 선물 상자를 두고 왔다며 도로 집으로 들어간다.
어떻게 이런 이야기들을 만들어 내는지
놀랍고 경이롭다. 이런 이야기를 더 매끄럽게 만든 건 번역의 몫인 것 같다.
번역 덕분에 원작이 잘 전달되는 것 같은데 번역가의 글 <옮기고 나서>도 맛깔났다.
#로알드달#맛#정영목옮김#강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