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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나비 Jan 02. 2022

코로나 블루

코로나19를 피해 산속으로 들어왔다. 정확히 말하면 외할아버지 집으로 도피했다. 이곳은 경북에 위치한 수도산 자락. 해발 500m에 위치해 있다. 반달곰이 즐겨 찾는 주요 서식지이기도 하다. 산언저리에 있는 이 동네는 10가구 남짓 살고 있다. 대부분 사별하시고 혼자 지내시는 어르신들이시다. 정년퇴직 후 고향으로 돌아와 이곳에 터를 잡고 사는 부부도 있다. 동남아 여자들과 4번이나 국제결혼을 했던 남자분도 계신다. 지금은 혼자 사시는데 아내들이 모두 몰래 도망쳤다고 한다.


이 동네에 젊은 사람은 50대 초반인 우리 삼촌과 외숙모다. 할아버지 집에서 10분 거리에 터를 잡고 살고 있다. 두 분은 20년 전에 귀농을 해서 산머루(산포도)를 경작하고 와이너리를 만들어 직접 와인을 빚고 있다. 이제 제법 많이 알려져서 각종 주류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대상도 받고 사업이 커져 직원을 둘 정도가 되었다.


2021년 6월. 서울에서 더 이상 못 살 것 같았다. 이곳에 살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코로나 여파가 컸다. 3년 전 서울로 독립했을 때는 많은 계획과 기대가 있었다. 그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고 집 안에서만 생활하는 내 모습 보면서, 어차피 집에만 있을 거면 서울에 꼭 있어야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직장 일에 염증을 느꼈고, 비염은 나를 더 괴롭혔다. 한쪽 콧구멍이 살짝 막혀 있는데 그 상태에서 마스크를 쓰고 출퇴근 시간 합쳐 하루 10시간을 일을 한다는 것이 고역이었다.


숨이 콱콱 막히는데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드니 몸에 무리가 왔다. 퇴근 시간 후에는 지쳐서 아무것도   없었다. 무기력했다. 변비는 갈수록 심해져서 일주일에   화장실 것도 약을 먹어야 가능했다. 피부도 엉망이 되었다. 나중에 한의원에 가보니 대장이 전혀 운동을 하지 않고 있었다고 했다.


어떻게 하면 이곳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산에서 일주일 만이라도 쉬고 오고 싶었다. 8월 휴가를 계획하던 중 템플스테이라는 것이 떠올랐다. 절은 산속에 있으니까. 그곳에서 힐링 좀 하고 나오자 하고 생각하고 있는 중에 엄마로부터 삼촌 소식을 듣게 되었다. 삼촌 와인이 유명해져서 TV에도 나오고 상도 많이 받았다고 했다.


'삼촌 와인이 잘 팔리는구나. 그곳에서 소일거리 하면서 1년만 시골에서 휴식을 취하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반짝 떠올랐다. 엄마에게 내 생각을 이야기하니 매우 기뻐하셨다. 말은 안 하셨지만 서울에서 혼자 고생하는 딸이 내심 안쓰러우셨던 모양이다. 삼촌도 무척 환영하였다. 그렇게 시골로 들어오게 되었다.


시골에서 적응하는 과정 중에 심적으로 어려움도 있었지만, 현재는 매우 만족하고 있다. 제일 좋은 건 하루 종일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과 매일 눈앞에 펼쳐진 병풍 같은 산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할아버지 반찬을 해 드려야 하니 요리 솜씨도 조금씩 늘고 있다. 산골 오지이지만 서울 못지않게 택배도 빠르게 받을 수 있다. 인터넷도 연결되어 있어서 불편한 점이 전혀 없다.


나는 도피했다. 나는 실패했다. 도피하고 싶어서 도피했고, 실패도 허락했다. 알량한 자존심으로 고집 피우지 않았다.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라고 생각한다.  도피로 인해,  실패로 인해 나는 지금 무척이나 평화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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