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를 피해 산속으로 들어왔다. 정확히 말하면 외할아버지 집으로 도피했다. 이곳은 경북에 위치한 수도산 자락. 해발 500m에 위치해 있다. 반달곰이 즐겨 찾는 주요 서식지이기도 하다. 산언저리에 있는 이 동네는 10가구 남짓 살고 있다. 대부분 사별하시고 혼자 지내시는 어르신들이시다. 정년퇴직 후 고향으로 돌아와 이곳에 터를 잡고 사는 부부도 있다. 동남아 여자들과 4번이나 국제결혼을 했던 남자분도 계신다. 지금은 혼자 사시는데 아내들이 모두 몰래 도망쳤다고 한다.
이 동네에 젊은 사람은 50대 초반인 우리 삼촌과 외숙모다. 할아버지 집에서 10분 거리에 터를 잡고 살고 있다. 두 분은 20년 전에 귀농을 해서 산머루(산포도)를 경작하고 와이너리를 만들어 직접 와인을 빚고 있다. 이제 제법 많이 알려져서 각종 주류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대상도 받고 사업이 커져 직원을 둘 정도가 되었다.
2021년 6월. 서울에서 더 이상 못 살 것 같았다. 이곳에 살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코로나 여파가 컸다. 3년 전 서울로 독립했을 때는 많은 계획과 기대가 있었다. 그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고 집 안에서만 생활하는 내 모습 보면서, 어차피 집에만 있을 거면 서울에 꼭 있어야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직장 일에 염증을 느꼈고, 비염은 나를 더 괴롭혔다. 한쪽 콧구멍이 살짝 막혀 있는데 그 상태에서 마스크를 쓰고 출퇴근 시간 합쳐 하루 10시간을 일을 한다는 것이 고역이었다.
숨이 콱콱 막히는데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드니 몸에 무리가 왔다. 퇴근 시간 후에는 지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무기력했다. 변비는 갈수록 심해져서 일주일에 한 번 화장실 것도 약을 먹어야 가능했다. 피부도 엉망이 되었다. 나중에 한의원에 가보니 대장이 전혀 운동을 하지 않고 있었다고 했다.
어떻게 하면 이곳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산에서 일주일 만이라도 쉬고 오고 싶었다. 8월 휴가를 계획하던 중 템플스테이라는 것이 떠올랐다. 절은 산속에 있으니까. 그곳에서 힐링 좀 하고 나오자 하고 생각하고 있는 중에 엄마로부터 삼촌 소식을 듣게 되었다. 삼촌 와인이 유명해져서 TV에도 나오고 상도 많이 받았다고 했다.
'삼촌 와인이 잘 팔리는구나. 그곳에서 소일거리 하면서 1년만 시골에서 휴식을 취하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반짝 떠올랐다. 엄마에게 내 생각을 이야기하니 매우 기뻐하셨다. 말은 안 하셨지만 서울에서 혼자 고생하는 딸이 내심 안쓰러우셨던 모양이다. 삼촌도 무척 환영하였다. 그렇게 시골로 들어오게 되었다.
시골에서 적응하는 과정 중에 심적으로 어려움도 있었지만, 현재는 매우 만족하고 있다. 제일 좋은 건 하루 종일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과 매일 눈앞에 펼쳐진 병풍 같은 산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할아버지 반찬을 해 드려야 하니 요리 솜씨도 조금씩 늘고 있다. 산골 오지이지만 서울 못지않게 택배도 빠르게 받을 수 있다. 인터넷도 연결되어 있어서 불편한 점이 전혀 없다.
나는 도피했다. 나는 실패했다. 도피하고 싶어서 도피했고, 실패도 허락했다. 알량한 자존심으로 고집 피우지 않았다.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라고 생각한다. 그 도피로 인해, 그 실패로 인해 나는 지금 무척이나 평화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