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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 Apr 24. 2020

인물의 시선. 관객의 시선.

The Daughters of Edward Darley Boit

The Daughters of Edward Darley Boit

John Singer Sargent (American, 1856–1925)

1882

https://collections.mfa.org/objects/31782


보스턴 미술관(Museum of Fine Arts Boston) 232번 갤러리 가운데에는 존 싱어 사전트(John Singer Sargent)의 그림 The Daughters of Edward Darley Boit가 걸려 있다. 가로 세로 각각 2미터가 넘어 시야를 가득 채우는 그림이다. 그림 속 Boit가 4 자매 중 셋은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다른 하나는 그늘 속에서 고개를 돌리고 있다.


그림을 가까이 들여다보면 보아서는 안 되는 비밀을 엿보고 만 듯한 섬뜩함이 느껴진다. 자매들 사이에서는 어떠한 친밀감도 느껴지지 않는다. 자매들은 하얀색 긴 앞치마 말고는 서로와 아무것도 공유하고 있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각자 자신만의 세상에 살고 있던 이들을 누군가가 그 공간 안에 잘라 붙여 놓은 것처럼 부자연스럽다. 가족이라고 하기에는 몹시 어색하다. 가족이 모였음에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들은 관객과의 대화 또한 거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양탄자에 앉아 인형을 안고 있는 아이(Julia)의 얼굴에 미소는 없다. 인형의 이름이 무엇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에 대해 들뜬 표정으로 말해줄 것 같지는 않다. 왼쪽 끝 밝은 곳에 서 있는 아이(Mary Louisa)는 오른쪽 위로 눈동자를 굴리며 등 뒤에 무언가를 감추고 있다. 발을 앞으로 살짝 뻗은 채로 입을 앙다물은 채 혼자여도 충분하다는 듯 당당히 서있다. 그늘에서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아이(Florence)는 수줍은 표정으로 입을 살짝 벌리고 있다. 무언가를 말하려다가도 다시 그늘 속에 숨어버릴 것만 같다. 마지막 아이(Jane)는 그늘 속에서 표정조차 보여주지 않은 채 고개를 떨구고 있다.


그렇게 자매들은 노크도 없이 문을 열고 들어온 관객에게 자신들의 비밀을 쉽게 이야기해줄 수는 없다고 선언한다. 그럼에도 쉽게 눈을 거둘 수는 없다. 그들 사이의 위태로운 균형을 유지해주는 것은 관객의 시선뿐인 것 같기 때문이다. 바라봐주지 않으면 애초부터 서로 모르는 사이였던 것처럼 뿔뿔이 흩어져 버릴 것 같다. 나이를 먹어 그늘 뒤로 숨어버린 두 아이들처럼 영영 닿지 못할 곳으로 떠나버릴 것 같다. 


어쩌면 아이들은 누군가가 계속 자신들을 바라봐주기를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물의 시선과 관객의 시선이 서로 맞았을 때, 유화로 그려진 그들의 눈동자 안에 관객의 눈이 비칠 때면 못 이기는 척 정적을 깨고 하나씩 자신의 비밀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기를 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자매들은 서로가 서로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기를 바라고 있는 것만 같다. 그때서야 관객은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그림 앞을 떠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보스턴에 방문할 일이 있다면 직접 그림 앞에 서 보기를 바란다. 자매들의 경계 어린 눈길을 꿋꿋하게 견뎌내 주길 바란다. 오랫동안 그 앞에 서서 인물의 시선을 버티고 있다 보면 어쩌면 자매들이 나는 볼 수 없었던 다른 모습을 내보여 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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