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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현 Feb 02. 2020

'서점'

아무것도 아닌 단어 하나

일상에 지친 몸을 이끌고 서점으로 향한다. 서점에 들어선 후에는 언제나 그래 왔듯 책장 사이를 배회하며 책을 집어 든다. 서두를 필요는 없다. 찾고자 하는 책도 없다. 그저 천천히 배회하며 읽고 싶은 마음이 드는 책을 찾을 때까지 이것저것 책을 집어 든다. 운이 좋은 날은 십 분 만에도 읽고 싶어 지는 책이 내 눈에 들어온다. 반대로 운이 조금 부족한 날에는 한 시간을 서성여도 이거다 싶은 책을 찾지 못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렇게 고른 책을 서점에 놓인 의자에 앉아 읽는다. 그 시간이 나는 솔직히 행복하다.


내 단골 서점이 되기 위해서는 황송하게도 몇 가지 조건이 붙는다. 먼저 규모가 작은 독립 서점은 피한다. 규모가 작은 독립 서점은 오래 있기가 어렵다. 서점 주인 분의 마음이 넓어도 내 좁은 마음은 그곳을 불편하게 여길 게 뻔하기 때문이다. 책은 많아야 한다. 책이 많을수록 좋다. 특정한 책을 찾아 서점을 찾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내 눈이 닿을 책은 많을수록 좋다. 마지막으로 그곳은 앉을 곳이 필요하다. 서점 주인의 눈에 나는 그다지 쓸모 있는 고객은 분명 아닐 것이다. 몇장 읽다가 괜찮다 싶으면 책을 사는 사람들과 다르게 나는 책을 다 읽어보고 난 후에 산다. 내 기준을 토대로 정말 살만한 가치가 있다 판단되면 그제야 그 책은 내 것이 된다. 그래서 꼭 앉을 곳이 필요하다. 분명 서점 주인의 관점에서 나는 많이 깐깐한 손님인 것이다.


좋은 책을 읽는 동안에는 일상의 피로가 사라졌다. 나에게 책을 읽는 시간은 여행을 가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내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여행. 책은 내게 수많은 여행지를 소개해 주었다. 그리고 내게 물었다. 이곳을 한번 여행해보지 않겠느냐고. 나 같은 겁 많고 소심한 사람조차 승낙할 수 있는 가벼운 여행, 책은 그런 여행을 나에게 선사한다. 나는 잠시 동안 누군가의 삶, 혹은 누군가의 생각이라는 여행지를 다녀온다. 가보면 별로인 여행지도 많았다. 그러나 정말 놀라울 만큼 멋진 여행지도 있었다. 누군가가 소개하는 내 마음을 떨리게 하는 여행지. 다른 이들이 일상의 스트레스를 자기만의 방법으로 해소하는 것처럼 나는 그렇게 책이라는 장소를 여행하며 일상의 피곤을 털어 버렸다


책이 좋은 것은 다른 누군가와 함께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이다. 나는 혼자서는 무언가를 잘하지 못한다. 혼자 여행 가는 것도 잘 못 해서 항상 누군가의 동행이 필요했다. 혼자 밥을 먹는 것도 잘 못해서 끼니를 넘긴 일도 많다. 그렇게 계속 다른 누군가를 필요로 하는 삶을 살았다. 그런 나조차도 책은 혼자 하는 것이 괜찮았고, 그렇게 서점은 나에게 안식처가 되었다. 마음 한편이 아플 때마다 홀로 조용히 찾아가는 안식처.


나에게 서점은 안식처다. 이 치열하고 험난한 세상을 살다 보면 어느 누구도 그런 공간이 필요한 것 같다. 다른 사람에게 그 공간이 굳이 서점일 필요는 없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꼭 그런 공간은 필요한 것 같다. 누군가는 그런 곳이 집 혹은 내 방이라고 답할 것 같아서 내 의견을 덧붙이자면. 내 방만큼 편한 곳은 없겠지만, 내 마음을 쉴 곳이 내 방뿐이라면 조금 부족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주제넘은 생각도 해본다. 아무 생각 없이 휴식을 취하는 것은 내 방만큼 좋은 곳이 없을 수 있겠지만, 조금 부족하지 않을까? 개인적인 경험을 이야기해보면 내 방은 나에게 안식처가 아니라 도피처와 같았다.


다른 이들이 나보다 더 멋진 공간을 찾기를 응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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