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교회에 나가면 내 손에는 달란트가 주어졌다. 나는 그 달란트를 모아 달란트 시장에서 맛있는 떡볶이도 사 먹고 학용품도 얻을 수 있었다.
누군가와의 동행으로 성당에 간 적이 있었다. 쭈뼛쭈뼛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미사가 시작되자 파이프 오르간 소리가 들렸다. 그 파이프 오르간 소리가 좋아 나는 지금도 종종 성당을 찾아간다.
산을 오르다 보면 경치 좋은 곳에 절이 자리하고 있었다. 자비롭게 웃고 있는 불상을 보며 마음이 편해졌다. 그래서 산에 오를 때면 나는 절을 둘러본다.
P는 내 주변 사람 중 가장 독실한 신자이다. 카카오톡 프사만 봐도 P가 얼마나 독실한지 누구나 알 수 있을 만큼 그는 독실하다. 그는 자신에게 어려움이 닥쳐도, 아픔이 찾아와도 종교에 의지해 어려움을 넘기려고 했다. 그런 P에게 다시 아픔이 찾아왔고, 나는 그가 겪는 아픔이 남일 같지 않았다. 그래서 P에게 위로와 응원을 전하고자 했다. 하지만 꽤 오랜 대화에도 불구하고 P에게는 내 마음이 제대로 전해지는 것 같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투명한 막이 내 말을 가로막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 벽이 종교라는 이름의 무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P 둘 중 하나가 틀린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나와 P는 좀 달랐다. 나는 사람을 믿고 사람에게 의지하고 싶어 한다. 반면 P는 절대적인 무언가를 믿고 그것에 의지한다. 그 차이가 나와 P 사이의 벽이 된 거 같았다. 나는 P를 이해한다. 빈말이 아니라 정말 이해한다. P에게 종교는 그동안 울타리가 되어주었을 테니까. 세상에 지치고 휘청거리는 P에게 종교는 거친 바람을 막아주는 울타리가 되기도 하고, 바닥에 주저앉은 그를 일으켜주던 동아줄이 되기도 했을 테니까...
P에게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었던 종교가 나에게는 나와 P를 가로막는 벽으로 다가왔다. 사람에게서 의미를 찾으려는 나, 절대적인 무언가에서 의미를 찾는 P. 대화가 겉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나는 정말 P를 이해한다. 그리고 이해하기에 P에게 내 생각을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는 멀리서 그저 P를 지켜본다.
P가 지금의 아픔과 어려움을 잘 극복해내기를 기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