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느 자리에서나 단연 돋보이는 언변이 화려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나 전혀 말주변이 없는 사람이 아니었음에도 나는 말보다 글이 좋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더 그랬다. 부족한 글솜씨에도 불구하고 글이 말보다 좋은 점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늘어났다.
말은 자꾸 실수를 낳았다. 내 입에서 나온 말로 소중한 이들조차 상처를 입었다. 입에서 가볍게 나온 말이 상대방 가슴에 무겁게 자리를 잡았다. 급히 사과를 건넸지만 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는 없었다. 반면 글은 쓰고 나서 다시 읽어보며 상대방에게 상처가 될 것 같은 말을 지우거나 다른 단어로 바꿀 수 있었다.
말은 자꾸 잊혀졌다. 내 기억 속에 있는 말과 상대방이 기억하는 말이 달랐다.
"그랬어?"
"내가 그런 말을 했어?"
분명 같은 말이었음에도 서로의 기억이 달랐다. 종종 자신이 그런 말을 했는지조차 잊어버리는 사람도 있었다.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한 사람들, 나에게는 그게 상처가 되었다. 나 또한 그랬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말이 무서워졌다. 반면 글은 상대방을 생각하며 쓴다. 오롯하게 상대방을 위한 글이 쓰인다. 그래서 굳이 글이라는 증거가 없어도 마음이라는 체취가 글에 담겼다. 나는 그게 좋았다.
말보다 글이 좋았던 마지막 이유는 나를 보여줄 수 있어서였다.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하는 대화가 글보다 오히려 자신을 드러낼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나와 마주한 이들은 내 외면과 나를 둘러싼 무언가를 보며 나에게서 나올 말을 기대했다. 나는 그 기대가 부담스러웠고 그래서 진솔한 나의 모습을 마주한 이에게 보여주지 못했다. 약한 모습, 모자란 능력, 그다지 밝지 않은 내면... 하지만 글에서는 드러낼 수 있었다. 비록 여기저기 깨지고 금도 간 모습일지라도 진짜 내 모습에 가까운 글을 쓸 수 있었다. 나는 그게 좋았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편지지를 하나 사서 들어갈 생각이다. 그리고 또 누군가를 생각하며 편지를 쓸 것이다. 그 시간 내 머릿속에는 오롯이 그 사람만이 존재할 것이고 이번에도 나는 글을 쓰며 웃고 있을 것이다. 나는 지독한 악필이지만, 그래서 이렇게 자판을 누르는 게 더 마음 편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편지지에 글을 쓰며 웃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