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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현 May 11. 2020

'후회'

아무것도 아닌 단어 하나

어디서나 볼법한 평범한 연인이 있었다.

그러나 서로가 함께하는 시간이 쌓이자, 그들 사이에도 익숙함이라는 이름의 불청객이 찾아온다.

연인보다 일이 중요했던 남자는 결국 오늘도 연인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고 만다.

눈물이 고인채 식당을 뛰쳐나온 여자는 비 오는 거리에서 택시를 잡았고, 뒤늦게 여자를 쫓아 밖으로 나온 남자는 그녀가 탄 택시의 문을 잡고 한참을 머뭇거렸지만 끝내 택시에 오르지 않았다.

복잡한 눈으로 멀어져 가는 택시를 보던 남자, 그러나 연인이 탄 택시가 이내 옆에서 달라오던 다른 차로 인해 사고를 당하자 바닥에 주저앉았다.

결국 연인은 세상을 떠나고, 그 모습을 지켜보며 눈물을 흘린 남자는 뒤늦은 후회로 괴로워했다.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온 그는 연인의 빈자리에 괴로워하다 잠이 든다.

다음 날,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잠에서 깬 남자는 세상을 떠난 연인이 살아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다...


2004년 개봉한 영화 'if only'의 앞부분 줄거리이다.

이어지는 영화의 대략적인 스토리는, 남자는 사고로 연인을 잃은 그날 아침으로 되돌아온 것을 깨닫는다.  

남자는 과거 일어났던 일들이 반복되는 것을 막으려하지만, 결국 사고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깨는다.

그리고 남자는 자신의 지난 과거를 후회하며 연인과 함께 최고의 하루를 만드려 한다.

영화 말미에는 세상에 홀로 남았던 과거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던 남자 주인공의 선택이 나온다.

그 남자는 익숙함에 속아 결국 연인을 붙잡지 않은 자신의 행동과 그 결정으로 인해 연인을 잃어버린 결과를 후회했다.

그래서 그는 누군가 자신에게 준 기회,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통해 후회를 남긴 과거를 반복하지 않으려 했다.

결국 그 남자는 과거 자신이 했던 후회를 반복하지 않는데 성공한다.

영화는 해피엔딩이 아니었지만, 내가 만약 그 남자였다면 그 남자에게 남은 후회가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슴에 박혀있는 단어 중, 이 글에서 꺼내보려 하는 것은 '후회'라는 단어다.

후회 없이 사는 삶...

누구나 꿈꾸는 그런 이상적인 삶이다.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새로운 것을 배우고. (溫故知新-온고지신)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고. (Carpe diem-카르페디엠)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삶. (Boys be ambitious-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모두 다 후회를 남기지 않는 삶을 꿈꾸는 이들의 가슴을 울리는 말이다.


누구나 후회 없는 삶을 바라지만, 나에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지금 쓰고 있는 이 변변치 않은 글조차 쓰고 나면 후회가 남는다.

구성, 표현, 문장, 단어 모든 것이 내 선택이지만, 다시 읽어보면 분명 후회로 남을 것들이 쏟아진다.

 

나는 하루에도 수십 번, 어쩌면 그보다 횔씬 더 많이 후회라는 것을 한다.

가까이는 오늘 먹은 점심 메뉴에 대해서부터, 조금 멀리 보면 왜 내가 10년 전에 비트코인을 사지 않았을까 하는 터무니없는 후회에 이르기까지도, 나의 후회는 끝이 없을 뿐만 아니라 끝없이 방대하다.

  

한때는,  솔직히 지금까지도.. 선택을 하는 순간에는 깨닫지 못하고, 지나고 나서야 뒤늦은 후회를 하는 나 자신이 너무도 싫었다.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말조차 나에게는 위로가 되지 않았다.

온고지신이라는 말처럼 과거의 후회에서 뭔가를 배워 이제는 그러지 않아야 함에도 나는 후회를 반복하고...

카르페디엠이라는 말처럼 지금 현재에 충실해야 함에도, 과거에 대한 후회로 나는 현재를 오롯이 살지 못하고 있었다.

야망을 갖고 다가올 미래를 위해 노력하라는 누군가의 명언조차도, 후회로 주저하는 나에게는 공허한 말이 되었다.


인생이라는 내가 걸어온 길이 후회로 점철된 것 같다는 생각은 앞으로 내가 하게 될 모든 결정도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을 불러왔다.

그런 생각들로 머릿속이 가득 차자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었었다.

그러자 무력감이 찾아왔다.

어차피 후회할 텐데 뭔가를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

차라리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말자는 생각.

그러나 그런 생각의 결과는 또다시 내게 후회를 가져다주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생을 영위하는 것은 사는 게 아니었다.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에서 오는 후회는 과거 내가 경험했던 어떤 후회보다도 더 큰 후회를 가져왔다.


그 이후에서야 나는 다시 움직일 수 있었고, 지금까지도 움직이고 있다.

이제 나를 그만 찾아왔으면 하는 마음에도 불구하고 후회는 여전히, 그리고 수시로 나를 찾아온다.

후회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나는 여전히 답을 찾지 못했다.

후회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생산적으로 발전시키기에 나는 너무도 모자란 사람이다.

다만 조금 변한 것이 있다.


과거 후회라는 것이 내 인생에서 상상하기도 싫었던 불청객이었던 것에 비해, 지금은 내키지 않은 손님이 된 것 같다는 점이다.

여전히 후회라는 감정이 나를 찾아오는 것은 불쾌하다.

그러나 후회가 찾아올 때마다 온갖 스트레스를 받아온 과거의 나날들에 비하면 괜찮은 것 같다.


이전에 언급했다시피 나는 후회를 교훈 삼아 앞으로 한걸음 나아가는 그런 멋진 사람이 아니다.

그저 후회에 조금 담담해지려 노력하는 사람일 뿐이다.

그리고 그런 내가 종종 스스로 대견해 보일 때도 있는 그런 평범한 사람이고, 계속 그런 사람으로 남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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