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고통을 감수하며 이뤄내는 삶
똑같은 아침을 맞아본 일이 있는가, 똑같은 하늘, 똑같은 태양을, 본 적이 있는가,
어제의 하늘은, 어제의 태양은, 결코 오늘의 그것이 아니다. 삶은 정반대되는 두 가지 요소를 다 포함하고 있다.
삶은 낡았으면서 동시에 새로운 것이다.
<안리타, 모든 계절이 유서였다 중>
매일 같은 곳을 지나면서도, 종종 하늘과 해와 달, 주변의 보이는 풍경들의 사진을 찍어두는 날이 많이 있다. 어쩌면 비슷한 사진들의 연속이겠지만, 그날의 하루와 생각들에 대한 기록은 단 하루도 같은 날이 없다.
출근길에 보이는 탄천의 풍경, 퇴근길에 보이고 느껴지는 달과 바람. 매일 쓰는 일기에 기록된 하루도 같지 않았던 나의 감정과 하루의 일들이 그렇다.
이번주의 어떤 날은 회사 창립기념으로 일찌감치 나가 회식을 했다. 회사를 다니면서 느껴보지 못한 (마치 대학생이 된 것 같기도 한) 활기찬 느낌이 매우 신기하고 귀여워서 오랜만에 술도 마시고 신나게 웃었다.
동시에 정신이 좀 돌아오면, 나는 지금 잘 해나가고 있는 것이 맞는가에 대한 근심과 함께 복잡한 감정이 들기도 한다. 이제는 이런 감정을 자주 표출하는 것도 좋지 않으며, 결과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알기 때문에 이렇게 매일의 일기에만 담아두고 있다.
명확하게 도달해야 할 목표는 있으니 막연하게 노력만 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최소한 아니구나. 그럼에도 걱정 많은 나는 가끔 두려움을 느낀다. 다행인 것은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에, 그래도 일단은 할 수 있다고 말을 할 용기가 생겼다는 것이다.
좌절과 다짐을 반복하고 기뻤다가 슬펐다가 여러 가지 생각을 반복하는 시간들의 흐름과 내가 달라지는 과정들을 지켜보는 일은 꽤 재미있는 일에 속한다.
얼마 전 봤던 뇌와 관련된 영상에서 “행복은 쾌락이 아니라 자발적인 고통이다.”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우리의 뇌는 고통으로 쾌락을 얻어가는 과정을 의미 있는 삶으로 가는 길로 인식하고 있다. 그렇기에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는 길은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가? 라는 답 대신, 역으로 내가 고통을 감수하면서도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알아차리는 일로도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매일 고통을 감수하고 동시에 즐거움을 얻어가는 매일 다른 모양의 하루. 당장 막막해보이는 회사의 일도, 글을 쓰는 고통의 과정도, 더위와 체력의 고통을 감수하면서 느끼는 여름의 락페스티벌까지도.
그래서 삶은 낡았으면서 동시에 새로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