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스튜디오: Studio Thonik
누군가 영국으로 교환학생을 간다고 하면, 나는 이렇게 말한다.
"일단 겨울학기는 안돼!"
단호한 조언의 바탕에는 실제로 기대만 잔뜩 안고 겨울에 영국으로 떠났다가, 마음에 상처를 왕창 받고 돌아온 나의 경험이 있다. 영국의 학기는 크게 가을학기와 겨울(+봄) 학기로 나뉘는데, 거의 6개월 정도로 긴 가을학기에 비해 겨울학기는 정말 너무 짧고(11주), 겨울의 영국은 상상하기도 싫을 정도로 날씨가 구리다. 영국에 도착하고 몇 달간 나는 우울해서 사람도 잘 만나지 않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9년의 겨울에 내가 영국으로 교환학생을 간 일을 후회하지 않는 몇 가지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꿈만 같았던 Study Trip이다.
내가 교환학생으로 파견되었던 Kingston University London에서는 겨울학기에 유럽권으로 Study Trip을 간다. 홍대로 치면 디자인 기행쯤 되려나.(^^)
다만 이 곳에서는 베를린 혹은 암스테르담으로 스터디 트립을 갈 수 있다는 점. 원하는 스튜디오 최대 4곳을 선택해 직접 방문할 수 있다는 점. 정말, 꿈만 같은 여행이었다.
왜인지 나는 그때 베를린/암스테르담이라는 선택의 기로에서 "당연히 암스테르담이지!"라고 암스테르담을 선택했었고, 그 선택에 후회는 없다.
이 글을 통해서는 우선 4박 5일간 방문했던 암스테르담 기반의 디자인 스튜디오 4곳을 소개하고, 내가 직접 그 스튜디오에 방문해 보고 느낀 점들을 나누고자 한다.
첫 번째로 소개할 스튜디오인 스튜디오 Thonik은 25년간 활동한 암스테르담 기반 디자인 스튜디오로, 스튜디오를 리드하는 Thomas와 Nikki의 이름을 따 Thonik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Thonik에서 진행한 대표적인 작업으로는 Holland Festival 브랜딩, 암스테르담 공공도서관 브랜딩 등 큰 규모의 브랜딩 작업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현대 시티 아울렛 비주얼 아이덴티티 및 캠페인 작업을 진행했다.
Contact
Thonik Website: https://www.thonik.nl/work/
Thonik Instagram: https://www.instagram.com/studiothonik/?hl=ko
Address: Grensstraat 47 1091, SW Amsterdam, the Netherlands
여러 개의 작은 운하를 건너며 도착한 스튜디오 Thonik에서 나는 Thomas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아래의 내용은 Thomas와 이야기를 나누며 적은 메모를 재구성한 내용임을 미리 밝힙니다.
Thomas: 요즘처럼 디자인이 '저렴'했던 적이 없습니다. 과거의 디자이너들은 종이 위에 자로 활자를 세팅하며 디자인을 했어요.
그러다가 애플의 매킨토시가 나왔어요. 그와 동시에 디자인이 너무 쉬워졌어요. 헐값이 되어버렸죠. 그때 우리는 북디자인을 그만뒀습니다.
그리고 브랜딩을 시작했죠. (여러분이 북디자인을 사랑하는 것을 알고 있어요. 우리도 북디자인을 사랑합니다! 다만, 그때 그랬었다는 것뿐이죠.)
Thomas: 브랜딩은 돈이 되는 사업이었어요. 돈이 많은 클라이언트들이 있었거든요. 그때 브랜딩을 하면서 많은 디자이너들이 큰돈을 벌었어요.
그리고, 인터넷이 보급화되었죠. 그때 Thonik은 어도비 플래시로 꽤나 재미있는 것들을 만들었었어요. 성공적이었죠. 그런데, 어도비 플래시는 순식간에 ‘구시대’적 유물이 되어버렸습니다. 정말 한 순간이었어요.
그리고 HTML의 시대가 왔습니다.
Thomas: 현재 디자인은 웹과 절대 뗄레야 뗄 수 없는 영역이라고 생각해요. 요즘 시대의 디자이너는 개발자나 프로그래머와 일하는 것이 필수적인 시대가 왔어요.
하지만, 그 또한 영원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10년 뒤에 이 일은 또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가 되어있을 것이에요.
우리(Thonik)는 그저 그 변화를 따라갈 뿐입니다.
Thomas와 나눈 이야기 중 또 하나 기억에 남는 것은 바로 디자이너와 정치에 대한 이야기다. Thomas는 디자이너가 (정치적) 견해와 입장을 가지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실제로 인상적으로 봤던 작업 중에 Socialist Party라는 네덜란드의 정치 정당을 클라이언트로 진행한 작업이 있는데, 그들 또한 많은 고민을 했지만, 성공적으로 프로젝트를 마무리해서 기뻤다고 했다.
아름다운 도시 한가운데에 위치한 자유로운 스튜디오 Thonik에서 Thomas와 나눈 이야기들은 단언컨대 내가 이 도시를 사랑하게 된 이유 중 하나이다. 이렇게까지 자유롭다니! Chemical-free 탐폰 브랜드 Yoni와 함께 진행한 브랜딩 작업을 설명하는 Thomas에게서 그가 정말로 이 일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 또한, 시간이 흘러도 디자인을 사랑하는 디자이너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한 순간이었다.
누군가에게 암스테르담은 대마 냄새로 찌든, 홍등가와 마약, 그리고 동성애의 나라로 기억된다. 하지만 처음 스키폴 공항에 발을 디디던 순간부터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 195일간 여행하며 수많은 나라와 도시들을 지난 후에도, 나에게 암스테르담은 가장 일해보고 싶은 도시이다. 그곳에서 방문했던 디자인 스튜디오들의 분위기와 작업환경이 너무나도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Thonik은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스튜디오이기 때문에(사실 암스테르담 기반의 스튜디오가 대부분 그러하다) International Intern도 지원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관심이 있다면 포트폴리오를 다듬어 메일을 보내보자. 일단... 이 역병이 조금 지난 후에.
그전까지, 나는 암스테르담 스튜디오의 이야기들을 계속 써 보려고 한다. 다음 스튜디오는 암스테르담 기반의 편집 디자인 스튜디오 Haller Brun!
다른 암스테르담 스튜디오 방문기도 들어보실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