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후우울증이 왔다가 갔고 갔다가 다시 왔습니다
3월에 아기를 낳고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 벌써 아기가 목을 가누고 베시넷유모차에는 공간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독일에도 한국의 문화센터 같은 놀이그룹이 있다. 회당 10유로 정도의 비용을 서너 달 한 번에 지불하고 8명의 아이들과 함께 하는 Eltern-Baby-Treff (부모-아기-만남) 또는 PEKiP 놀이 그룹.
오늘 처음으로 다녀왔는데 돌아오는 길에 정말 태어나 처음으로 느끼는 허무한 기분을 느꼈다.
놀이그룹 내내 아기에게만 집중하고 수유하느라 미처 챙기지 못했던 나의 옷차림.
수유용 나시티 아래 수유용 브라의 패드가 꾸깃꾸깃한 것을 삼십 분가량 되는 거리의 집에 돌아오는 길 중간쯤 지나서야 깨달았다.
브라를 안 한 것도 아니고 유럽에서 또 안 해도 문제 될 것은 무엇이며 (실제로 안 하는 사람들 꽤 많다 - 용기에 박수) 백일 갓 넘은 아기 키우는 엄마가 그럴 수도 있지 옷매무새 조금 틀어진 것 가지고 무엇이 문제냐 할 수 있겠지만, 내 옷매무새에 굉장히 민감한 나는 정말 길 한복판에서 충격을 받았다.
내 가슴 표면이 울퉁불퉁한데, 브라 속 패드가 접히고 말려서, 근데 길 한복판에서 가슴을 만질 수도 없고 이게 뭐람. 정말 돌아오는 길 내내 너무 불쾌했다.
거울을 제대로 볼 시간도 없는 나는 내가 아닌, 여자가 아닌, 엄마라는 이름의 아예 다른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놀이그룹에 가기 전 독일답지 않게 더운 날씨 때문에 아기 옷은 세 벌을 갈아입혔다. 이건 너무 시원하고, 이건 너무 크고, 이건 아 너무 한국스러운 로고플레이의 명품인데 (선물 받았다...) 독일에서 입고 다니기엔 너무 창피한데 이러면서 애기 옷 세 번 갈아입힐 동안 내 옷은 언제 얼마나 빨리 갈아입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완벽주의로 번아웃이라는 늪에 세 번이나 빠지고 그로 인해 우울증도 세 번이나 겪었던 내가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내 아이는 생후 6-7주 차부터 수면교육을 받고 촘촘히 짜인 스케줄에 따라 규칙적인 하루를 살아내며 50일에는 8시간, 100일 이후부터는 12시간을 내리자고 있다. 그리고 나는 직수완모를 하고 있다. 제왕절개를 했음에도 분유는 여태컷 내가 너무 힘들었던 어느 날 두 손 두 발 다 들고 네가 알아서 해!라고 하니 남편이 먹였던 단 한 번이 전부이다.
아이는 잘 자라고 있고 내 머리는 많이 빠지고 있다.
내 완벽주의로 인해 육아가 힘들기도 하지만 여러 면에서 다른 엄마들과 비교해 (또, 또 비교한다..) 수월한 면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많은 정보를 얻고 추리고 요약해서 실천한 결과 아기는 좋은 것을 먹고 잘 싸고 정말 잘 자면서 쑥쑥 성장하고 있다.
다만, 완벽주의자인 나는 너무 힘들다.
다만, 완벽주의자인 남편은 육아휴직이 끝났음에도 육아와 살림에 많이 참여하면서 일을 하느라 너무 힘들다.
완벽주의자인 나와 내 남편은 우리가 완벽주의자라서 통잠을 자주는 아이를 두고도 잠이 부족하다. 그 시간에 육아공부를 하고 집안을 깨끗이 하고 또 나름의 재미도 추구하느라...
나의 아이는... 제발 완벽주의가 아니길 바란다. 그냥 좀 실수하고 어설프더라도 마음 하나만큼은 편히 먹고 살아가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는데, 편하지 않은 마음으로 키워내는 부모를 두고 과연 그게 가능할 수 있을까.
몸과 마음이 편안하고 건강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 역설적으로 나와 내 남편의 몸과 마음은 시들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