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 시한부 50% 파트타임을 반년간 하게 됐다
서너 달 전 팀에 새로 들어온 나와 2인용 사무실을 함께 쓰는 일잘러 독일인 동료 ㅍㅇ.
내가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한 달 만에 보는 그가 반가운 미소로 "어 너도 같은 기차 타고 오지 않았어? 근데 왜 이제 와?"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두두둑
내 눈물을 두두둑이라고 밖에 표현하지 못하겠다. 또르르라고 하기엔 굵고 큼직한 큰 방울 여러 개가 양쪽 눈에서 뚝뚝 두두둑 하고 떨어졌으니까.
그렇게 떨어지는 눈물도 당황스럽고 살갑게 질문한 동료에게 대답은 자동적으로 해야겠는 나는 겉옷을 옷장에 걸며 "기차 탔지. 근데 사실 한 시간 전 기차 타고 왔어. 올라오는데 한 시간이 걸렸지 뭐야."라고 어이없이도 정말 매우 솔직하게 말해버렸다.
이렇게 솔직하게 말할 수 있었고 나의 바닥의 민낯을 애써 더 힘들게 숨기지 않을 수 있었던 까닭은 (그 순간에 숨길 힘도 능력도 어차피 없었지만) 아마도 내가 병가+휴가 콜라보를 내기로 결정했던 한 달 전에 그에게 솔직하게 메시지를 남겨놓았고 힘겹게 회사 노트북을 딱 한번 메일 확인차 켰을 때 확인했던 그의 따스한 답변에 안도했었기 때문이리라.
전혀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너의 빈자리는 그동안 팀장님이랑 내가 잘 지키고 있을 테니 너는 얼른 낫는데 집중해. 휴가지에서 맞이하는 생일도 기쁘게 보내길 바랄게.
그리고 전날 이미 홈오피스하면서 미리 화상통화로 내 상황을 솔직하게 알렸었던 것도 한몫을 했던 것 같다.
힘들었지만 한 달 만에 복귀해서 홈오피스라고 메시지로만 나 왔어 안녕하기엔 나는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통화가능 여부를 묻고 힘들지만 얼굴을 보며 내 상황을 전달했다. 우울증이라는 단어는 쓰지 않았지만 코로나 이후로 몇 달을 힘들었고 그 이후로 무슨 이유에서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내 뇌에 특정 호르몬이 부족해져서 감정조절이 힘들고 그로 인해서 정상 업무가 힘들어졌었다고. 지금도 아직 힘들다고.
그런 대화를 이미 했기 때문일까.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애써 진정했던 눈물이 다시 왈칵하고 터졌다.
이유는? 정말 나도 모르겠다.
일이 그렇게 힘든가? 이 포지션은 원래 힘든 포지션이고 승진루트가 보장된 포지션으로 알려진 만큼 기대치도 높고 반복되는 업무도 적고 임원 바로 밑에서 데이터마케팅 서포트 하는 역할이라 신입치고 부담도 크다. 근데 그걸 내가 지금 처음 겪나? 이미 일 년 넘게 일을 했고 이런 일의 특성은 그냥 받아들이든지 정 아니면 이직이나 사내 부서이동도 시도해 보면 되잖아.
그저 정상적으로 분석을 전략을 해결책을 찾을 새도 없이 떨어지기만 하는 눈물.
나는 그냥 지쳤구나.
독일어가 영어가 많이 힘들었니? 그렇다고 하기엔 지난 일 년 동안 일을 꽤 잘했잖아? 평가도 늘 좋았고. 하루에도 수십 번 네이버 사전 구글번역으로 여러 번 확인하고 또 확인하며 일을 하긴 했지만 이건 내가 독일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이상 앞으로 안고 가야 할 문제이기에 처음부터 다짐하고 시작한 거잖아. 그리고 새삼스럽게 왜 갑자기?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은 채 그저 벅참에 떨어지는 눈물을 한동안 주체할 수가 없었다.
동료는 당황한 눈치지만 로봇답게 완벽한 정석 나이스 젠틀 스마트맨답게 그저 아무 일 없다는 듯 딱히 질문을 하지도 무시하지도 않고 그냥 평소처럼 대해줬다.
"창문 열어도 돼?"
"커피 마시러 갈래? 아님 갖다 줄까?"
"같이 물 뜨러 갈래?"
그런 그가 참 고마웠고 한 한 시간쯤 지나고 나니 서서히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동료는 나도 잘 아는 다른 팀 동료와 이미 점심 약속이 있었는데 고맙게도 나를 끼워주었고 덕분에 점심시간 동안 편하게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그렇게 이어진 오후 근무.
아 오늘은 힘들었지만 그래도 일을 몇 가지 해냈다.
이렇게 이번주 버티고 나면 그냥 쭉 100프로 일할 수 있을 것만 같아.
하지만 그다음 날, 나는 출근길에 더 심하게 울어버렸다. 그리고 사무실에서도...
결국 전년도 고과평가와 올해 업무목표 설정하는 하는 자리에서 팀장에게 휴가 전 고맙게도 제안받았던 파트타임을 수용하기로 했다. 단 내가 원하는 때인 반년 뒤에 다시 풀타임으로 전환한다는 조건하에.
이게 가능할 수 있었던 이유는 회사가 글로벌 대기업이기도 하고, 일단 팀장님과 과장님이 나를 너무 아껴주고 잃고 싶지 않아 하는 눈치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내가 솔직하게 내 상태에 대해 커뮤니케이션했기 때문인 것 같다. 사실 진단서를 받고 일주일 병가를 내던 날 나는 팀장에게 전화를 했었다. 곧 2주 부활절 휴가를 이미 내놨는데 부득이하게 휴가 바로 직전에 병가를 내게 됐다고. 올해 들어 급격하게 안 좋아진 체력과 무너진 멘털에 나도 어쩔 줄을 모르겠다고. 팀을 위해 그만두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었다고 정말 너무도 솔직하게 말했었다. 그때 팀장은 나에게 본인은 내가 우울증을 앓고 있는 걸 이미 눈치를 챘었고 이미 과장과도 나를 보호할 수 있는 옵션들에 대해 얘기를 간단하게 해 놨었고 내가 원하면 언제든 바로 50%로 당분간 업무량을 조절하는 것도 가능하니 일단 병가와 휴가 총 3주 잘 쉬고 오라고 정말 고마운 이야기를 해주었었다.
사실 독일에서는 병가를 아주 길게 낼 수 있고 6주까지는 100% 유급, 6주 이후에는 보험사에서 병가 전 월급의 60-70프로를 병가 기간 내내 보장한다. 장기간 병가를 낸 직원에 대해 기업이 고용보장을 해줘야 할 의무는 없지만 대기업의 경우 병가로 인해 직원을 해고하는 일은 사실상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고용보장과 병가시스템이 정말 잘 갖춰져 있다.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나는 사실 그냥 병가를 내가 원하는 만큼 그리고 의사가 내주는 만큼 내고 쉬면 됐었다. 내가 일을 하면서 우울증을 이겨내고 싶고 그건 나를 위함이기도 하지만 고마운 동료와 날 아껴준 팀장에게 업무량을 떠 넘기고 싶지 않아서라는 것을 팀장과 과장도 알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일을 하면서 우울증을 회복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현했고 (내 우울증이 세 번째이고 이미 이전 직장에서 우울증으로 인한 병가를 세 달 내고 퇴사를 했다는 걸 회사사람들은 모른다) 그 솔직함에 대한 이해와 고마움(?) 차원에서 팀장과 과장이 배려해 준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다음 달인 5월부터 아마도 부서 처음으로 자진해서 아이도 없는데 50%로 시한부 반년 동안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게 된 1년 2개월 차 특이하고도 특이한 신입이 되었다. 안 그래도 유일한 아시아인이라 특이한데 정말 더 특이해졌구나.
과연 50%는 해낼 수 있을까? 그리고 반년 뒤에는 100%의 업무시간과 양을 채울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