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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목 Jun 09.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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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개월의 지지부진한 상담에서 순수한 눈물이 튀어나온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얼마나 깊이 퇴적되었는지 파훼하는 데만 몇 개월이 걸렸던 자아. 그것은 방문 뒤로 숨은, 돌 같이 굳은 어린아이의 형상이었다.


 그날의 상담 시간은 아직도 기억 속에서 선명하다. 언제라도 시공간을 가볍게 뛰어넘어 그날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이. 이름 모를 꽃이 핀 화분이 나란히 있던 창가, 탁자의 빈 곳을 빼곡하게 메운 휴지들, 오후 4시의 나른한 햇살에 숨어있던 먼지가 튀어나와 일렁이던 모습, 그리고 함께 울어주던 상담 선생님. 처음으로 주체 못 할 분노에서 우러난 울음이 아닌 순수한 눈물방울을 흩뿌렸던 기억이다. 나는 왜 그 순간 동상 같이 굳은 아이를 발견했을까.


 내가 가장 잘하는 것은 소리 내지 않고 우는 것이었다. 먼저 온 얼굴 근육의 위치를 일그러트리고 숨을 참는다. 그리고 숨기지 못한 울음소리는 목뒤로 삼킨다. 우스꽝스러울 걸 알면서도 우는 소리를 내기 싫어 나는 항상 이렇게 울었다. 슬픔을 격렬하게 토해내는 것은 사치였다. 큰 울음소리는 다시 싸움으로 이어졌고, 끊이지 않는 감정 소모를 견뎌내는 것은 울음을 참는 것보다 힘든 일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울음을 꾹꾹 눌러 쌓았다. 지난한 눈물과의 사투가 끝나면 빨개진 코끝과 퉁퉁 부은 눈꺼풀이 시야까지 가리는 흉한 얼굴을 볼 수 있다. 그 모습이 꼴 보기 싫어 쇠망치로 두들겨 맞은 듯 아픈 머리를 부여잡고 그대로 잠자리에 들곤 했다.


 엄마와 나 사이의 유대감은 오래전에 끊긴 탯줄 같이 단절되어 있었다. 우리 사이의 벽은 두껍고, 너무나 오래되었다. 벽을 두들겨 맞은 편의 생사를 확인할 수도 없는 그런 관계. 그것이 나와 엄마의 관계였다. 이것들은 내 자아를 좀 먹었고, 나는 그대로 시간을 멈춰 세운 채 세상을 살아갔다. 내게는 나아갈 용기가 없었다.


 그 후 나는 여의찮은 사정으로 상담을 일찍 마무리지었다. 그러나 나는 내 속의 어린아이를 움직일 방법을 아직 찾지 못했다. 나아지고 싶었지만, 문제점을 알게 된 것과 방법을 아는 것은 달랐다.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상담은 끝났지만, 나는 홀로 노력해서라도 이 감정을 해소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쯤에 엄마와 다시 크게 다투었다. 그녀에게도 사정이 있었음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음에도 그 순간만큼은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내게 쌓인 울분이 느껴졌다. 그저 난도질당한 내 마음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싶었다. 그 순간만큼은 내가 과거에 멈춰 있는 이유가 된, 굳어있는 아이를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얼기설기 기워가며 영혼의 형체를 유지하려 노력했던 내 마음을 엄마가 조금이라도 알아주길 바랐다.


 그때 무언가가 떠올랐다. 나는 벼락을 맞은 사람처럼 벌떡 일어섰다. 그 길로 책상 서랍을 허겁지겁 뒤져 작은 약통을 꺼냈다. 몇 년 전부터 모아왔던 약들이 있는 통이었다. 너무 많은 약이 섞여 어떤 게 무슨 약인지도 모르는 것들이었다. 약통을 꽉 채울 만큼 모아 털어 넣어보려고 했다. 부질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작은 알약들이 모여 나를 죽음, 그것이 힘들다면 적어도 죽음과 비슷한 안식까지라도 이끌어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모아오던 것들이었다. 그만큼 나는 살아가는 게 힘들었고, 엄마와 지속해서 대치하는 게 죽음보다 괴로웠다. 차라리 죽음으로 모든 걸 끝내고 싶은 마음이었다. 엄마는 대체 내게 뭘 원해 나를 낳았을까, 이런 부질없는 의문을 접고 싶었다.


 떨리는 손으로 약통의 뚜껑을 열어 그대로 집어 던졌다. 형형색색의 알약들이 차가운 바닥에 흩어졌다. 속으로 엄마의 반응을 기다렸다.


 시간이 흘러도 방에는 적막만이 흘렀다. 엄마는 빼곡한 알약과 장판 사이 어딘가를 응시하다 말없이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 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처음으로 크게 소리 내어 울었다. 슬픔의 둑이 무너진 기분이었다. 나는 엄마에게 내 모든 감정을 토해내고 싶었다. 답답한 마음과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들을. 그러나 내가 원했던 건 이런 방식이 아니었다. 나는 엄마와 이런 식으로 대화하고 싶지 않았다. 무언가가 잘못되어 영영 돌이킬 수 없는 길을 택한 것 같았다.


 그 후로 집은 내내 조용했다. 나는 일부러 바깥을 나돌다 늦은 시간에 집에 돌아갔다. 조용한 집은 너무 불편했다. 엄마와 그 후로는 다툼이 없었다. 그렇지만 어디를 가도, 무엇을 해도 내게는 안식이 없었다. 수면제는 고작 하루에 30여 분의 잠을 선사했고, 덕분에 꿈으로의 도피도 힘들었다. 멍한 정신으로 밤의 중천에 뜨는 달이 얼마나 밝은 줄 알게 되었고, 새벽 공기는 죽은 사람의 체온만큼 차갑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공허한 밤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친구가 갑자기 내게 책을 선물했다. 그때의 나는 말 수가 급격히 줄었고, 친구와도 거의 연락하지 않았다. 날 걱정하는 마음이 느껴지는 선물이었다. 섬세한 친구의 관심에 고마웠지만, 펴보지 못했다. 친구가 선물한 책 내용처럼 가볍게 털어 버리고 ‘힐링’을 추구하기에 내 삶은 너무나 황폐했다. 친구에겐 거짓으로 감사의 인사를 건네며 나는 그 책을 잊었다.


 그리고 나는 그 후로 몇 달 뒤 자취방을 정리하면서 그 책을 발견했다. 새 책의 종이가 울퉁불퉁했다. 나는 의문을 품고 책을 펼쳤다. 책에 홍수를 낸 범인은 메모지였다. 책 속에 친구가 쓴 작은 메모들이 책갈피처럼 종이 사이사이에 빼곡히 꽂혀 있었다. 작은 메모지의 말은 온통 나를 걱정하는 말과 나의 위안을 바라는 단어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내용이었다. 그것을 보는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내게 필요했던 것은 아주 작은 위로였다는 것을. 내 어린아이를 움직이게 할 수 있는 방법은 그거였다. 또한 내가 엄마에게서 원했던 것은 나를 인정해주는 한마디 말, 모든 감정을 대신하는 따뜻한 포옹 한 번이었다. 문득 책 위로 엄마의 삶이 주마등처럼 펼쳐 지나갔다. 위로가 필요했던 건 엄마도 마찬가지였지 않을까. 엄마도 외로이 무언가를 견뎌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도 작은 어린 아이를 속에 품고 있을지 몰랐다.


 그 후 엄마와 냉전을 종식하고, 우리는 다시 관계를 회복했다. 나는 엄마에게 짧은 사과의 말을 전했다. 엄마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우리는 포옹했다. 나는 그날 다시 한번 진심으로 울었다. 그것은 처음으로 느낀 괴롭지 않은 눈물이었다.


 나에게 생긴 또다른 변화는, 삶의 벅참을 느낄 때마다 친구의 메모를 떠올리게 된 것이었다. 작은 낱말들이 모여 만들어낸 짧은 문장 몇 개. 그것들이 내 삶을 지탱해줬다. 나는 그 친구의 마음을 상기할 때마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비록, 가장 가까운 관계인 엄마에게 그 방법을 알지 못하고 큰 상처를 줬지만, 앞으로 그런 과오를 다시 저지르고 싶지 않았다.


  또한 나는 지금도 종종 내 안의 어린아이를 살핀다. 아이는 너무 오랫동안 굳어 있어 잘 움직이지 않을 때가 많다. 굳어버린 아이는 사후 경직이라도 오는 것처럼 조금만 깜빡하면 귀신같이 딱딱해지곤 한다. 그럴 때는 갓난아이를 대하듯 살살 어루만져준다. 언젠가는 이 아이도 말랑말랑한 피부를 가지고 밝은 곳으로 나서길 바란다. 때로는 작은 위로 하나에 힘을 얻고, 작은 행복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 불편해하지 않고 익숙하게 더 밝은 빛을 찾아 방을 떠나는 모습을 나는 상상한다. 작은 위로의 힘을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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