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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갱 Apr 25. 2021

열무얼갈이김치

당연하지 않은 존재

준비물

열무 1~1.5kg, 얼갈이배추 약간 (집에 있는 거 넣음), 쪽파 100g, 양파 1/2개, 고춧가루 1.5컵, 다시마물 1컵, 다진 마늘 2스푼, 매실청 4스푼, 액젓 4스푼, 소금 1.5스푼, 밀가루풀, 굵은소금


만드는 법

1. 열무와 얼갈이배추는 시든 잎을 정리 후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는다.

2. 물기를 빼고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준다.

3. 굵은소금 1컵, 물 1컵을 준비한 후 열무와 얼갈이에 켜켜이 뿌린다.

4. 1시간~1시간 반 정도 절여준다.

5. 미지근한 물 1컵에 다시마 3장을 넣고 다시마물을 우려 준다.

6. 물 1컵, 밀가루 2스푼을 넣고 중 약불에 올려 밀가루풀을 만든다. (뭉치지 않게 잘 저어주고 걸쭉해지면 식힌다)

7. 쪽파, 양파도 적당한 크기로 썰어 놓는다.

8. 밀가루 풀에 양념 재료들을 모두 넣고 섞어준다.

9. 열무와 얼갈이는 물에 가볍게 헹궈주고 물기를 뺀다.

10. 열무와 얼갈이, 양념, 쪽파, 양파를 모두 넣고 잘 버무려준다.

11. 잘 버무려진 김치는 김치 통에 넣고 숙성시킨다.




 한식에는 다양한 요리가 있지만, 진정으로 한식을 요리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말을 듣기 위해서는 솔직히 김치를 담글 줄 알아야 한다. 아니, 담가본 적이라도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어려운 것을 내가 해내었다.

 다른 음식은 몰라도 김치라는 음식은 내게는 영 부담스러운 요리였다. 많은 재료가 필요하고, 한 번에 많은 양을 해내야 하고, 엄청나게 많은 준비 과정이 필요한데, 가장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치 맛을 보장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프로 주부 엄마의 김치가 가끔씩 실패하고 속상해하시는 모습을 볼 때마다 김치에 대한 나의 공포증은 커져만 갔다. 엄마에게 김치란 몇 개월간 미우나 고우나 식탁에서 마주쳐야 하는 것이었고, 김치가 잘 되지 않았다는 것은 그 몇 개월 간 유쾌하지 않은 감정을 계속 견뎌내야 한다는 의미였다. 그 커다란 김치통이 바닥을 보일 때까지 말이다. 그런데 김치가 잘 되지 않는 것에는 대부분 엄마가 어찌할 수 없는 변수들이 작용했다. 엄마의 실력은 늘 비슷한데, 배추가 좋지 않았다던지, 소금이나 젓갈이 별로였다던지, 아니면 알 수 없는 이유로, 아삭거리지 않거나 너무 맵거나 짜거나 싱겁거나 다양한 상태의 김치가 제조되곤 했다. 이쯤 되면 거의 가챠 아니냐... 나야 뭐 프라이팬 같은 걸로 그날그날 만들 것을 좀 깨작거려 보기나 했지, 요리에 있어서 그런 대형 장기 프로젝트에 도전할 의지와 패기가 없었다. 점점 극단적인 위험 회피형이 되어가고 있는 내가, 아무리 열심히 노력하고 칼같이 레시피를 지켜도 망할 수 있는 것을 하다니, 게다가 그 결과는 당장 확인할 수 도 없고 며칠을 기다려야 하며, 또 그 결과에 대해서 며칠 혹은 몇 주간을 곱씹어야 하다니. 별로 흥미가 생기는 일은 아니었다. 게다가, 앞서 서술했던 밥과 마찬가지로, 요즘 사 먹는 김치는 너무나 편리하고 맛이 있었다. 소형 가구인 나에게 조금씩 구입해서 가장 맛있는 방식으로 가장 맛있을 때 먹는 것이 보장되는 김치란 너무나 든든한 존재였다.

 그러나 언니네 텃밭에서 열무 한 무더기를 덥석 받아버리면서 상황이 변했다. 처음엔 다른 것을 많이 찾아보려 했다. 그런데 열무김치가 아닌 생 열무를 활용한 레시피는 많지도 않았고, 그 모든 레시피들이 열무김치와 비교하면 무조건 열위였다. 살풋한 봄과 여름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산뜻한 열무김치의 맛은 내게 얼마나 힘을 주는가. 열무 국수와 열무 비빔밥은 또 어떻고. 솔직히 말하면 열무 국수를 너무 좋아하는 편이지만 그 음식은 아주 간편한 음식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니 그것은 김치가 만들어져 있는 상태일 때의 말이라서, 결국 나는 늘 중간 과정에서부터 요리를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 앞에 수없이 긴 과정이 있는 줄도 모르고, 열무 국수라는 그 한 그릇의 음식이 얼마나 많은 손을 거쳐 많은 그릇을 거쳐 내게 어렵게 어렵게 온 건 줄도 모르고... 무튼, 그래서 나는 난생처음으로, 처음부터 끝까지의 김치 담그기를, 그것도 엄마 없이, 배추김치도 아닌 열무로 도전하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 집은 주부의 집이 아니기 때문에 김치 담그기라는 작업이 낯설었고, 소위 말하는 '다라이' 하나도 없이 어떻게 김치 만들기에 함부로 덤볐는지 참으로 모르겠다. (다라이가 필요할 정도로 많은 양은 아니었지만.) 엄마 같은 요리사로서의 노련함도 아직 없기 때문에, 밑간을 보고 뭔가를 더 추가하고 고개를 갸웃거리고 그런 건 없다. 그냥 레시피가 하라는 대로 하는 거다. 그때, 내가 아직은 참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나름대로 멋나는 음식들을 호다닥 만들어 맛있게 먹곤 했지만, 아직은 나만의 내공이 부족하기 때문에 이런 복합적 사고가 필요한 요리에 있어선 아직 겁이 나는 요린이였던 것이다. 어떻게 보면 채소와 양념, 그 두 개가 끝이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한식의 기본 재료들이 마구 투입되는 것이 한식의 종합예술이라고도 할 수 있고, 채소와 양념뿐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맛이 우수한 재료(고기라던지...)에 의존하는 꼼수조차 부리지 못하는, 그야말로 무장 해제의 상태가 된다고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어찌어찌 만들어 김치 통에 담았을 때, 내가 어기적 어기적 만든 것이 그래도 어떻게 김치라는 것과 비슷한 모양새가 되었을 때 놀랍고도 행복해서, 그날 밤은 참 잘 잤다.

 그런데 더 강렬한 감정은 바로 김치가 익어갈 때 느낄 수 있었다. 열무김치라 그렇게 긴 기다림이 아니었는데도, 어떨까 싶어 하루 이틀마다 열어서 체크했는데, 처음엔 갸웃했던 것이 점점, 조금씩 맛이 변해가는 것이 느껴졌을 때는 조금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맛이 들어간다'라는 말이 왜 있는지를 알았다. 맛은 어느 날 뿅, 생기는 것이 아니라 흰 종이에 먹이 퍼져가듯 조금씩 조금씩 '들어가는' 것이었고, 매일매일 달라지고 성숙해지는 그 김치의 맛을 보면서 식물이 조금씩 조금씩 아주 느리게 꽃을 피워가는 그 과정을 보는 듯했다. 그리고 어느 날, 이제 정말 '맛있는 김치'라고 부를 수 있는 순간이 되었을 때 웃기게도 김치한테 고맙기까지 했다. 이상해지지 않고 잘 성숙해줘서 고마웠다. 발효는 엄밀히 말하면 시들어가는 과정이지만, 내게는 왠지 새로운 성장의 과정처럼 느껴졌다. 이제 나의 작은 김치통은 한동안 든든한 밥상의 자산일 것이고, 내게는 요리 꼬마로서의 자부심일 것이다. 그렇게 김치라는 건 호흡이 긴 음식이고, 그렇게 우리의 삶에 생활에 스며들 수밖에 없는 하나의 문화이고 정서였다. 한동안 중국산 김치 논란으로 말이 많았는데, 밥상에 늘 올라오는 김치에 대해 한 번씩은 생각해 보시기를. 어떤 먼 길을 거쳐서 나의 밥상에 올라오게 되었는지.

 

어설프지만 제법인 나의 첫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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