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국수는 사드세요 제발
재료
쌀국수면, 고수, 양파 1/3개, 초절임 재료 (물1컵,설탕1큰술,매실액2큰술,식초3큰술), 숙주
스리라차소스, 라임, 쪽파
육수재료 (3인분)
닭다리 400g (하지만 소고기를 쓴다면 더 좋을듯), 양파 반개, 통생강 1개, 대파 한대, 통계피 3조각, 팔각 개, 정향 2개, 코리앤더시드 가루, 육두구 가루, 통후추 15알, 물 2L
피쉬소스 4작은술, 소금 1작은술, 설탕 2작은술
만드는법
1.양파를 채썰어 양파 초절임 재료에 담가놓는다.
2.통생강, 대파, 통양파를 마른 팬에 굽고, 이어서 통계피, 정향, 팔각도 굽는다.
3. 닭다리를 깨끗하게 씻어 준비한다.
4.냄비에 2,3의 재료, 통후추, 육두구 가루, 고수씨가루, 물을 넣고 센불에서 한소끔 끓인다.
5.4에서 거품이 올라오면 걷어내고, 약불로 줄여 충분히 끓여준다 (1시간정도)
6. 쌀국수를 물에 30분 이상 불려둔다.
7.5에 피쉬소스, 소금, 설탕으로 간을 한 후 조금 끓여내고 재료들을 건져낸다.
8.건져낸 닭다리에서 살을 발라낸다.
9.숙주는 씻어두고 쪽파는 쫑쫑 썬다.
10.쌀국수 면을 살짝 데친다.
11.쌀국수와 숙주, 닭고기 고명을 얹고 육수를 붓는다.
12.쪽파와 양파초절임, 고수잎을 얹고 라임 즙을 뿌린다.
이런 생각이 갑자기 왜 들었을지 모르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지만... 어느날 쌀국수를 만들어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해먹는다는 것은 시판 소스를 사용하지 않고 국물부터 만드는 것을 의미한 것이었다. 시판 소스는 우리가 원하는 바로 그 맛을 가장 편리한 방법으로 먹을 수 있게 하는 말하자면 고속열차 같은 것인데, 나는 알 수 없는 고집에 의해 시판 소스를 사용하는 것은 뭔가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무궁화호에 오르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치면, 쌀국수 면도 반죽부터 해야지? 스리라차 소스도 만들어야지? 라고 말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다는 건 안다. 자꾸자꾸 그런 질문을 던지다 보면 언젠간 초콜렛을 먹기 위해 생 카카오를 구하러 다니는 모 유튜버처럼 되는걸까....? 쌀국수는 사드세요 제발.
아무튼, 베트남 음식점에서 다 되어 나온 형태의 음식만 보았던 지라 이 국물의 정체와 제조 방식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고깃국물이긴 한데, 우리나라의 곰탕과는 다른 어떤 동남아의 맛을 조금 가미하는 것 같다는 정도의 느낌. 그러나 막상 레시피를 찾아보자, 생각보다 그 '동남아의 맛'이라는 것은 꽤 고생해서, 꽤 많은 재료들의 희생과 시간 뒤에야 오는 것이었다. 아니 그러니까 고깃국물이라는 것은 맞긴 한데 (나는 닭육수로 냈다) 그 후에 더 필요한 재료가... 정향? 팔각? 육두구? 통후추와 계피? 고수씨??? 이쯤되면 미국이나 유럽에서 인삼 황기 대추를 넣고 삼계탕 끓여야 하는 수준? 아니 그런 재료가 일반 가정집에 어디있냐는 말이다. 그런데... 있다! 우리집에 다 있어!!!
예전부터 '요리는 레시피와 거기서 넣으라는 재료가 있으면 평타는 친다'라고 늘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확실하지 않은 다른 것으로 대체하려는 궁리 대신 레시피에서 필요하다는 것들을 사서라도 넣었다. 그 결과 나의 찬장에는 어지간한 요리에 들어가는 이국의 향신료들을 대부분 갖추게 되었고, 쌀국수는 나의 내공이나 실력보다도 아이템 싸움인 음식인 덕분에 솔직히 약간 신이 났다. 모든 게 준비되어 있는 이 느낌, 이걸 언제 다 쓰나 했던 온갖 향기로운 것들이 담긴 유리병들을 늘어놓고 마냥 흡족한 기분. 이쯤되면 요리가 아니라 제조에 가깝다고도 볼 수 있겠다.
어디보자... 정향과 계피는 글뤼바인 만든다고 가장 먼저 우리집 찬장에 들어온 애들이고, 팔각은 동파육 만든다고 샀다. (솔직히 팔각은 사면서도 긴가민가했다. 이걸 어디에 쓰나해서...) 육두구는 라구소스 만들 때 가루 형태로 샀고, 고기 잡내를 없애는데 좋아서 쏠쏠히 쓰고 있다. 통후추도 뭔가 오래 삶는 요리 때 샀던 듯 하고... 가장 낯선 재료인 고수씨는 이또한 가루인데, 태국인지 베트남인지 동남아 여행 가서 마트를 기웃거리다가, 갑자기 '이건 한국에서 못 구할 것 같아' 라면서 샀다. 진짜로 한국에서 못 구하는 재료였는데, 그 이유는 한국에서 안 쓰기 때문이었다! ㅎㅎㅎㅎㅎㅎ 인도식 카레에도 들어간다고 하는데 솔직히 인도 카레에는 마살라같은 또 더 희한한 재료들을 많이 사야하므로 일단 접고... 아무튼 코로나 이전 여행가서 샀는데 단 한 번도 안쓴 것을 이번에 개봉하니 또 엄청나게 뿌듯할 수밖에.
그리고 그렇게 마녀의 스프 마냥 신비한 재료들을 아낌없이 털어넣고 보글보글 끓여낸 그것은, 크어어 소리가 절로 나올 만큼의 위대한 국물이었다. 약과 음식은 결국 하나로 이어져 있다더니, 이것은 단순한 국물이 아니라 어떤 약의 경지였다. 닭육수를 낸 게 좀 아쉽긴 하지만 (소고기 육수가 훨씬 더 잘 어울릴 것 같았다) 그것을 능가할 정도로 뱃속이 따뜻해지는 그 기운이, 기세가, 참 좋았다. 마치 약과 같은 그 강렬함 속에 아삭거리는 숙주와 양파절임, 그리고 라임즙의 새콤함은 그것을 음식의 경지로 다시 데려와준다. 이런 약과 같은 국물을 소박한 그릇에 담아 턱, 무심하게 내어주던 먼 나라의 그 요리사들은 그 이글대는 더위 속에서 이런 과정들을 거쳤던 것이었을까? 그 더위를 이겨낼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입맛을 사로 잡는 향신료 어벤저스가 필요했던 걸까? 국밥충의 나라에서 국밥 먹듯 크어어 크어어 깊은 감탄을 내뱉으며, 잠시 그곳의 사람들과 밥상들을 생각해본다. 이국의 요리는, 이런 과정을 거쳐서 내 밥상에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