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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갱 Sep 06. 2021

김치수제비

새로운 가을의 요리

재료 (2인분)

멸치 다시마 육수 600ml, 썰어놓은 김치와 김치 국물 1/3컵, 작은 감자 1개 (혹은 큰 감자 1/2개), 양파 1/4개, 애호박 1/6개, 대파 약간, 새우젓, 다진 마늘 1/2 큰술

반죽 재료 중력분 1컵, 차가운 물 1/4컵, 식용유 1 작은술, 소금 1/2 작은술, 계란 흰자 1개(는 레시피마다 다르던데 나는 넣어보았다)


만드는 법

1. 반죽 재료를 넣고 섞어 반죽을 만든다. 반죽은 5분 이상 열심히 치댄다. (보통 반죽으로 지저분해지니 많은 레시피에서는 비닐에 넣어서 치대었다. 나는 그 경고를 무시했고...)

2. 냉장고에 수제비를 2~3시간 정도 숙성한다.

3. 멸치 다시마를 준비한다. (나는 시중 다시팩을 사용)

4. 물 800ml 정도에 육수 재료를 넣어 10분 정도 우려낸다.

5. 애호박, 양파, 감자는 먹기 좋은 크기로 깍둑썰기 한다.

6. 4번의 육수가 우러나면 김치와 김치 국물, 감자를 넣고 한소끔 끓인다.

7. 수제비 반죽을 꺼내 밀대로 얇게 밀고 뜯어내면 얇게 잘 뜯어진다. 뜯어서 국물에 투하.

8. 양파, 애호를 추가로 넣고 재료들이 다 익을 때까지 끓인다.

9. 어느 정도 재료들이 익으면 다진 마늘과 대파를 넣고, 부족한 간은 새우젓으로 보충한다.



새로운 계절은 서서히 다가오고, 그것을 나는 온몸으로 느낀다.  서서히 다가오지만, 그래도 세상에 완벽한 그라데이션은 없는 것처럼 어떤 경계선은 있는 법. 어떤 날부터 내가 그렇게 좋아하던 배맛 탄산수가 더 이상 상쾌하지 않고 불쾌할 정도로 차갑고 자극적으로 느껴졌고, 또 어떤 날에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목이 칼칼해서 몇 개월 만에 뜨거운 차 한잔을, 유리잔이 아닌 다기에 달그락 거리며 우려 마셨고, 그리고 어떤 날은, 수제비를 먹고 싶어졌다.

 수제비는 면이 아닌 밀가루를 좋아하지 않는 내가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음식이고, 그 전분이 녹아들어 들척이는 국물의 묵직한 질감과 뜨겁고 얼큰하게 뱃속까지 데우는 그 온도감이 여름과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계절이 바뀌고 나니 귀신처럼 당기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반죽이라는 과정이 포함되어 있긴 해도 새로운 것 없이 늘 보던 그 재료들을 가지고 보골보골 끓여내면 그만이라 손쉽기도 하고. 제철 음식이라는 것이 그 철에 나는 신선한 식재료를 가지고 만드는 것이기도 하지만, 이렇게 나의 몸이 조금의 온도 변화를 받아들이고 그것에 기반해 내게 가장 잘 맞고 가장 맛있을 법한 것이 바로바로 제철 음식 아니겠는가.

 그러고 보니 이 브런치에 처음 글을 썼던 것이 추석에 만들었던 밤 조림이었으니, 어느덧 이곳에 글을 쓴지도 일 년이 다 되어가는 것이다. 제철과 계절이라는 말을 참 많이 썼던 것 같은데, 어느새 내가 겪을 수 있는 모든 계절과 온도를 다 겪어내고, 다 지내고 이렇게 다시 그 자리로 돌아왔다는 것이 신기하다. 그 시간들 동안 참 많은 음식에 대해 고민하고, 새로운 재료를 만져보고, 맛있게 먹고, 많은 설거지를 하고 또 글을 썼다. 물론 글로 쓰지 않았던 더 많은 식사 자리가 있었고, 사진 찍지 않은 많은 허술하고 간편한 메뉴들도 많았다. 가정 주부였던 엄마가 여행을 떠났을 때 '남이 해준 밥 매일 먹는 게 좋다'라고 했던 것이 떠오르는데, 그만큼 매일매일 어떤 것을 먹을지 고민하는 것부터 치우는 것까지의 일련의 과정들을, 그것도 하루에 두 번 내지 세 번이나 수행한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었던 것이다. 아무리 드높은 꿈과 이상이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 음식을 섭취하지 않으면 몸과 머리는 일을 하지 않고, 그래서 부자든 거지이든 연예인이든 회사원이든 우리는 누구나 모두 밥을 먹는다. 매슬로우 아저씨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말을 한 것 같아도, 이렇게 생각하면 꽤 의미 있는 성찰이었고, 그 이론에 따라 우리는 모두 밥상 앞에서 평등하다. 특히 코로나가 심각해짐에 따라 나는 집에서 근무하는 기간이 길어졌고, 그것은 나 스스로 주어진 점심시간 동안에 질리지 않고 나름대로 행복하게 하지만 효율적으로, 삼시 세끼 무언가를 먹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물론 무엇을 사다 먹을 수도 있고 배달시켜 먹을 수도 있지만, 왠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요리가 취미 활동으로서 주는 즐거움에 앞서, 나에게는 가장 맛있는 것을 정성껏 차려 나 자신에게 제공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길고도 외로운 코로나 시대를 이겨내는 나의 원동력이었고, 적막한 환경에서 쉽게 우울에 빠질 수 있는 나 자신을 구원하는 방법이었다.

 요즘엔 어쩐지 정체되어 있다고, 늪에 빠져버린 것만 같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더 큰 목표를 이루기 위해, 더 크게 성장하기 위해 무엇이든 해내고 싶은데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도통 알 수가 없어 지친다고 느끼기도 했다. 나의 인생의 큰 방향성에 대해 고민을 해야 할 것 같은데, 어떤 것들을 결정하고 새롭게 나아가야 할 것 같은데 매일매일 삼시 세끼 뭔가 열심히 차려먹다 보면 어느새 또 하루가 허무하게 지나갔다. 그렇게 아침 식사가 저녁 설거지가 되도록, 나의 밥상이 꽃게탕에서 냉이된장국으로, 비빔국수에서 수제비가 되도록 나는 그저 머무른 채 너무 작은 만족감만을 행복이라고 여기고 안주해버리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했다. 건강하게 맛있게 밥을 열심히 잘 차려먹으며 스스로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은 물론 나의 삶에 큰 도움이 되는 일이지만, 어쩌면 하루살이처럼 살아가느라 깊은 고민의 타이밍을 놓치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그것을 애써 모른 척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불안했다. 일상 속에 작고 확실한 행복을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정말 그럴까?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이 글쓰기의 시간이 중요했다. 하루하루 새로운 음식을 만나고 그것을 만족스럽게 먹고 나면 그것은 오늘의 행복이 되지만, 그 요리를 만들어내면서 했던 여러 가지 재미난 공상과 내가 갖고 있던 고민들, 그리고 느꼈던 좋은 느낌의 감정들을 되새김질해서 잘 정리해 놓는다면, 그리고 어떤 이들이 우연히 그것을 읽고 요리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거나, 나의 생각 혹은 감정에 대해 공감하고 그 에너지가 전이된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나의 세계의 확장이었다. 나는 물리적인 영양분을 먹기도 하지만 정신적인 영양분을 먹기도 하며 어쩌면 누군가에게 나눠줄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것들이 모두 나의 글감이 된다고 생각하니, 그 시간들이 조금 더 소중해졌다. 어떤 것을 해 먹어야 내가 다양한 생각들을 해낼 수 있을지, 또 멋지고 맛있을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되풀이되는 것 같았던 그 하루하루가 그 하루만의 의미를 갖게 되었을 때, 나는 조금 더 행복해졌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계절과 시간의 흐름을 느끼며, 그것에 따라 새로운 것을 먹고 또 내가 조금 더 성장했음을 느끼며, 작년 가을과 올해 가을의 나는 조금은 다를 것이라 기대하며 국물 음식의 계절에 다시 진입해본다. 물론 작년 가을과 지금의 나는 절대 같지 않고, 세상에는 내가 만들어보지 않은 음식이 무궁무진하다. 반죽기로 빵 반죽이나 돌릴 줄 알았던 내가 (손 반죽하기 싫다... 그래서 솔직히 아직 스스로 베이커라고 부르기가 민망하다...) 수제비 반죽을 조물조물 만들어보는 새로운 가을, 반죽기가 반죽해준 보송한 빵 반죽과는 달리 반죽을 막 시작한 수제비 반죽은 훨씬 질고 그래서 손과 주방 곳곳에 덕지덕지 달라붙는다는 것을 새롭게 깨닫는 가을이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밀가루만으로 반죽한 질퍽한 것이 맛있는 뭔가가 될까? 의심을 품다가도 멸치 육수와 김치의 마법에 새롭게 감탄하고, 번잡스럽게 화려한 재료로 승부를 보던 평소의 나의 얄팍한 요리 방식과는 달리 단순하고 간단한 재료들의 마법에 신선해하며,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들이 때론 무언가를 해낸다는 희망과 용기를 마음속에 다지며, 창문에서 들어오는 살짝 차가운 바람에 더 이상 뜨거운 국물을 먹어도 등에 땀이 흥건하지 않다는 것으로 차가운 계절이 왔음을 느끼는, 소중하고 새로운 가을이다.

 

맛은 있어도 탄수만 가득해... 고기랑 같이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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