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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는 더이상 수용되지 않고 소비된다.

 김종배가 뉴스를 읽고 소비하는 방법- 김종배

* 본 콘텐츠는 2019 미디어오늘 저널리즘 컨퍼런스에서 진행된 시사평론가 김종배님의 발표내용과 제 개인적인 견해로 작성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스마트폰 보급률은 95%에 육박합니다. 1가정 1PC 시대를 지나, 개개인이 하나의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는 시대가 온 것이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 SNS가 발달했습니다. 아날로그 세계에서 모바일, SNS 시대로 접어들면서 많은 것들이 변했습니다. 


뉴스 공유와 즉각적 소통이 이루어지는 단톡



시사평론가 김종배는 그 영향 중 '뉴스유통에서 시공간이 소멸되었다'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뉴스를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고, 다른 뉴스와 비교하며, 단톡방으로 의견을 나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뉴스를 보면서 동시에 휴대폰으로 정보를 찾을 수 있습니다. 뉴스를 통한 의사소통이 즉각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좋든 나쁘든 그에 대한 감정 역시 즉각적으로 발현합니다. 단톡방, 네이버 카페, 블로그 등 수많은 사이트에서 뉴스를 보고 바로 자신의 생각을 표출합니다.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SNS를 비판하는 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지극히,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이 당연한 이야기가 무슨 시사점이 있을까요?


우선 뉴스의 시간 제약이 사라지면서 감정이 정제될 시간도 같이 사라졌습니다. 인간은 무슨 일이 생기면 그에 대한 감정으로 가득 찹니다. 시간이 지나면 그 감정이 사그라지지만, 바로 그 시점에는 주체를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감정을 즉각적으로 드러낼 수 있게 되면서, 극단적인 표현이 많아졌습니다.


 SNS에서 사람들이 많이 모입니다. 아군과 적군이 공존하는 공간에서 소통이 일어납니다. 흥분된 상태에서 적을 만난다면, 더욱 감정적이게 되죠. SNS 소통은 감정적 지배로 이루어질 수밖는 시스템 속에 존재합니다. SNS를 보면 현대인들은 분노조절장애에 걸린 것 같다고 합니다. 사람은 예나 지금이나 같습니다. 모바일과 SNS로 인해 살고 있는 환경이 바뀌었을 뿐입니다. 


아날로그 시대 뉴스 생태계와 비교하면 차이점을 더욱 선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과거 뉴스 유통은 전달과 수용이 핵심이었습니다. 미디어는 뉴스를 생산·전달하고, 대중은 잘못된 것을 점검하는 차원의 수용을 할 뿐이었습니다.  과거 뉴스브리핑은 "먹고 살기 힘들어서 뉴스보기 힘드셨죠? 편식하지 마시고 정치·사회·경제·문화 두루 필요한 정보를 건강식으로 정리해드리겠습니다."가 목표였고, 대중은 이를 받아들였으며 주위 사람들과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에 그쳤습니다. 


전통적 커뮤니케이션 모델인 SMCR 구조. 출처: 시사평론가 김종배님 발표자료


하지만 모바일 시대가 오면서 대중은 수용이 아닌 뉴스를 소비하기 시작했습니다. 소비의 기본적 동기는 효용, 즉 욕망입니다. 내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뉴스를 소비합니다. 자연스레 뉴스는 욕망의 지배 아래에 종속되었습니다. 그런데 뉴스는 진실을 전달하는 전달물입니다. 진실과 욕망이 연결되면 어떻게 될까요? 내가 알고 싶은 진실만이 보이게 됩니다. 내가 반대하는 가치의 진실은 외면하는 것이죠. 대중은 뉴스를 통해 객관적 진실이 아닌, 내가 알고 싶은 진실만을 확인하는 용도로 소비하게 되었습니다.


아군과 적군이 공존하는 상황에서 즉각적으로 감정표출이 일어납니다. 근처에는 아군이 '선호'하는 뉴스, 적군이 '선호'하는 뉴스가 동시에 송출되고 있습니다. 저마다의 목소리가 가면갈수록 극단적으로 커지는 시스템 속에서 현대인들은 뉴스를 소비합니다.



위 시사점을 현대 미디어 현상에 접목시켜 볼 수 있습니다.

무조건 이것이 정답이란 것이 아니라, 이런 해석도 가능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1) 인맥다이어트

인맥다이어트란 식단을 관리하는 것처럼 친구들도 관리하는 것입니다. 나와 맞는 사람은 남겨두고, 맞지 않는 사람은 차단합니다. 진실 중에서도 내가 알고 싶은 것만 남겨두는 것처럼, 지인들도 내가 알고 싶은, 나와 통하는 사람만 남겨놓고 싶다는 것입니다. 결국 내 주변은 동질집단으로 한정되고, 그 안에서 '공유'되는 감정은 일방적이고 단색적이게 됩니다. 내가 원하는 진실이 더욱 극대화됩니다. 내가 원하는 진실이 아니면? 그것은 진실이 아닌거죠.



2) 기레기 (기자 + 쓰레기)

레거시 미디어, 올드 미디어라고 불리는 전통적인 미디어에서는 불문율이 있습니다. '방송콘텐츠는 중졸 수준을 평균으로, 언어는 중립적으로'. 방송은 여기저기 사방으로 뿌려버리는 시스템으로, 특정 계층이나 인물을 전제하기 어렵습니다. 하향 평준화가 되는 것이죠. 즉 아무나 원하는 것을 방송하는 것은 결국 아무도 원하지 않는 것을 땅에 버리는 결과를 낳는 것입니다.


기자는 감정적인 것, 극단적인 것을 피하고 무색무취의 중립적인 콘텐츠를 택하다보니 기회주의자로 비춰집니다. 또 미디어는 정보와 대중을 이어주는 매개체의 역할로 자리해왔습니다. 지금은 즉각적인 소통이 이루어지는 시대입니다. 이런 매개체는 소통을 지연시키고 가로막는 장애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거기에 이 편도, 저 편도, 내 편도 아니니 거부감이 듭니다. 기레기는 이런 시스템 속에서 필연적입니다. 반면에 나랑 같은 생각을 하는 기자는 스타기자로 등극하게 됩니다.



3) 스타기자

아무 편을 들지 않는 기자를 기레기라고 한다면, 내 편을 들어주는 기자는 스타기자가 되기도 합니다. 내가 원하는 진실을 지속적으로 제기해주는 기자는 정의로워 보입니다. 그래서 오보를 내더라도, 낸 이유가 있겠지하며 두둔하게 됩니다. 반대로 객관적 진실을 제시하는 기자일지라도 나와 상충된다면 비난합니다. 이렇게 팬덤을 가진 기자와 그 팬덤과 같은 독자 무리는 똑같이 동질화될 수 있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4) 지상파 방송사 실적 악화

우리는 지금까지 '국민OO'이란 말을 자주 '썼었'습니다. 지금도 자주 쓰나요? 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국민MC는 강호동, 유재석에서, 국민 여동생은 아이유에서 멈췄습니다. '국민'은 '남녀노소 관계없이 좋아하는' 이라는 형용사처럼 쓰여왔습니다. 이제는 남녀노소 누구나 다 좋아하는 사람보다, 특정 계층에서 인기있는 사람이 더 유명해지고 성공합니다. 국민이라는 호칭이 의미가 없어졌죠.


지상파 방송사의 고민거리가 바로 이 점일 것입니다. 지상파 방송사는 주파수라는 공공재로 사업하기 때문에 온국민이 볼 수 있는 콘텐츠를 제작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아무도 보지 않는 콘텐츠를 생산할 뿐입니다. 과거에 비해 위상이 많이 떨어진 지상파 방송사 실적을 보면 알 수 있죠. 방송사는 누구를 상대로 장사를 해야하는지 고민해야 합니다. 정파성(같은 이념, 정치성을 공유)을 가질수록 장사가 된다는 것을 알지만, 언론사로서 이는 부적잘한 행위이기 때문에 섣불리 새로운 전략을 시도할 수 없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개선할까... (예비)언론인은 물론 국민과 함께 고민해야 할 부분입니다.



시사평론가 김종배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저도 모르겠습니다.

미디어에 가고 싶어하는 주위 사람들도 모릅니다.

현직에 종사하시는 분들도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


그 답을 찾기 위해 모두들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도 그 노력의 일환으로 미디어오늘 저널리즘 컨퍼런스에 참석했고, 지금 글을 적고 있습니다.

이런 노력을 지속하다보면 언젠가는 결실이 맺어질거라고 생각하며,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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