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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초맘 Sep 13. 2019

따랑해요

미주 뉴스코리아  <슬초맘의 작은 행복찾기> - 2004년 4월

두 살. 한참 말을 배우느라 쫑알쫑알거릴 나이라서 그런지 슬초는 요즘 말이 참 많아졌습니다. 하다못해 공원에서 지나가는 멍멍이한테도 다가가 말을 걸 정도니 말이지요. "멍멍아~ 일루 와봐봐요~" 그런데 문제는 이 멍멍이가 바로 미쿡 멍멍이라는 것입니다. 두 살 어린아이와 이 멍멍이 사이에도 언어장벽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이민생활입니다. 불러도 대답이 없는 멍멍이에게 슬초는 이제 플랜 B를 시전합니다. "멍멍아~ 컴온이야요~" 헉..  이 어린 녀석마저도 콩글리쉬라니. 미국에서 태어났다고 하지만, 기나긴 2년 평생을 한국 가정에서 자라난 슬초에게 들렸던 영어란 이런 수준이었던가 봅니다. 자, 이제 우리의 슬초가 이민생활의 쓴맛을 볼 차례인가요. 슬초의 콩글리쉬에 이건 또 뭐냐는 시선으로 바라보던 멍멍이가 귀찮다는 얼굴로 콧방귀를 핑 뀌더니 저 멀리 가버립니다. 그러자 슬초의 애타는 절규가 들려옵니다. "멍멍아~, 까만잔(잠깐만)! 컴온이야요~! 일루 와봐봐요~ 까만잔~! 까만잔~~!!" 이건 거의 언어장애 수준이군요. 한국어도 제대로 못하고 영어도 제대로 못하는 이민 2세 + 2세(두 살) 우슬초, 현재 그녀의 언어 발달 상태는 영어도 한국어도 아닌 제 3 외국어를 나름 유창하게 구사하는 단계입니다. 문제는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아 듣기가 힘들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점은, 그 유창한 제 3 외국어를 듣고 있는 사람은 왠지 심히 부끄럽지만 막상 자의식이라는 것이 아직 형성되지 않은 그녀는 자신의 유창함이 그저 으쓱으쓱 자랑스러울 뿐이라는 것입니다.


추운 겨울날 외로운 병실에서 슬초빠와 함께 녀석을 만났던 것이 벌써 2년 전입니다. 아이의 탄생을 함께 축하하고 준비해 줄 가족이 없는 초보 부모 슬초빠와 슬초맘이 아기의 겉옷을 준비해 오지 못해, 추운 날씨에 이 초보 가족을 퇴원시키는 것이 못내 걱정되었던 간호사 아주머니는 병실 문 앞에 걸려있던 산타클로스 양말을 떼어서 그 속에 슬초를 쏘옥 담아서 슬초맘에게 건냈더랬습니다. 빨간 양말 속에서 쌕쌕 잠이 든 아가를 선물처럼 받아안고 둘이서 집에 돌아오던 기억이 아직도 이렇게 생생한데, 그 때 그 아이가 요즘은 이렇게 쫑알거리고 있습니다. 엄마 아빠는 한국어로 말을 하고, 티브이는 영어로 말을 하기에 두 언어를 동시에 배우느라 정신이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다행히 엄마 아빠와는 한국어로 대화를 합니다. 그런데 얼마 전, 녀석이 뭔가에 갑자기 기분이 좋아서 슬초맘에게 후닥닥 달려오더니 와서 슬초맘을 껴안고 등을 토닥토닥거리며 그러네요. "아이 좋아~~" 흠.. 녀석이 나름대로 감정표현을 하는 모양인가 봅니다. 그런데 이 상황이 "아이 좋아~"를 하고 싶었던 상황은 아닌 것 같아서, 얼마 전 "사랑해요~" 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팔로 동그랗게 하트 모양을 만들며, "사랑해요~" 라고 하는 것을 가르쳤더니 새는 발음이지만 제법 따라하는군요. "따랑해요~"

 
녀석의 어설픈 하트 모양의 "따랑해요~" 를 보고 있자니, 지난 몇 년 간의 아팠던 기억들도, 오늘의 삶의 무게 마저도 눈 녹듯이 녹아내립니다. 그러나 동시에 가슴이 싸해지는 것은 가족을 등지고 머나 먼 이민길을 선택한 이민자들의 어쩔 수 없는 숙명인가 봅니다. 나 역시도 이렇게 존재 자체로 우리 부모님께 기쁨이었겠지. 아직도 밖에 나가시면 어머니보다 십 미터는 앞서 걸어가시는 아버지. 자식들에게 평생 헌신적이고 희생적이셨지만 말로는 잘 표현할 줄을 모르셨던 어머니. 사랑 표현을 할 줄도 그리고 받을 줄도 몰랐던 가족이었기에, 아니 말 보다는 행동으로 삶으로 표현하는 것에 더 익숙했던 이들이었기에 우리 서로에게는 "사랑해요" 라는 말 한 마디가 그렇게도 하기 힘든 말이 되어버렸나 봅니다.

2001년 2월. 결혼 후 사흘 만에  미국으로 입양되는 아가들을 안고 미국행 비행기에 탑승. 이민생활 시작.

그렇게도 반대했던 결혼 후 삼일 만에 결국은 빈 손, 아니 이민 가방 네 개를 들고 비행기값을 아끼겠다고 미국으로 입양되는 아기 두 명을 안고 태평양을 건너 떠나가는 딸자식 부부를 보내며 아버지는 결국 방에서 나오시지 않으셨더랬습니다. 아마도 눈물을 보이셨겠지요. 바보 같은 슬초맘도,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말 한 마디 못하고 "아버지 저희 이제 갈께요" 한 마디만 남겨 놓고 나왔더랬습니다. 바보 같으니... 이런 천하의 바보 같으니. 바다 건너 남의 땅에 살며 이민법이라는 불합리한 시스템에 팔다리가 묶여, 친정 가족들을 만나려면 내가 일군 가정을 위험에 처하게 할 수도 있는 상황 속에 살게 되며, 이제 사무친 그리움으로 전화기를 들어도 막상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부모님 목소리에는 말문이 막혀버립니다. 왜 그리 힘든 걸까요. 내 마음 속의 사무치는 감사함과 사랑을 왜 그 분들께는 말로 표현하기가 이렇게 어려운 걸까요. 되뇌이고 또 되뇌이다가도 막상 그리운 목소리를 들으면 저 멀리 안드로메다에서 온 안부인사가 튀어나옵니다. "어, 전데요.. 식사하셨어요?" 매 끼니 그것이 뭐가 그리 중하다고, 분단위로 비용이 청구되는 비싼 국제전화에서조차 이놈의 끼니 걱정을 해야 하는 것일까요. 어색한 대화가 오고 간 후, 국제 전화비용 걱정에 전화를 얼른 끊자하시는 부모님의 걱정에 결국은 오늘도 이렇게 허무한 통화가 끝이 납니다. 그렇습니다. 슬초 뿐만이 아니라 슬초맘에게도 언어장애가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답답한 마음에 장난감을 가지고 신나게 놀고있는 슬초 녀석에게 "사랑해요~"를 보냈더니, 녀석도 헤~ 웃으며 답으로 어설픈 하트를 만들며 "따랑해요~"를 보내는군요. 휴우.. 녀석의 순진무구함이 그저 부럽습니다. 슬초맘도 언젠간 저렇게 속시원하게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어머니 아버지, 낳아주시고 키워주시고 최선을 다해 가르쳐 주시고 또 오늘 저희가 이렇게 멋진 가정을 일구어 나갈 수 있도록 허락하심에 감사합니다. 그리고 두 분을 무척이나 사랑합니다. 언어장애 모녀 슬초와 슬초맘, 오늘부터 함께 마주 보고 연습에 들어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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