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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초맘 Sep 12. 2019

내 엄마가 되어줘

미주 뉴스코리아  <슬초맘의 작은 행복찾기> - 2013년 3월

때는 바야흐로 투병 생활을 잘 졸업한 슬초빠가, 모두의 예상을 깨고 직장 복귀를 하지 않고 예배 사역자의 길을 걷겠다고 선언했던 2011년의 이야기입니다. 그 때 슬초네에는 여러 가지 큰 변화들이 생겼습니다. 먼저는 살던 집을 다운사이즈하여 좀 낡고 허름한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는 것, 둘째는 슬초가 오랫동안 정들었던 기독교 사립학교를 떠나 근처 공립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는 것, 셋째는 슬초맘이 가족과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직장으로 옮겼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은 슬초빠가 학업을 위해 달라스로 올라가며 슬초네가 주말가족이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함께 노는 것이 봉사라니! 라며 좋아하던 우슬초 (2013)

모두에게 큰 변화였지만, 그 중 슬초에게 닥친 변화가 제일 컸던 것 같습니다. 특히 새로 전학간 학교의 방과 후 프로그램에서 부모의 이혼을 경험한 많은 친구들을 만나며 큰 충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슬초가 주중에는 엄마와 살고 주말에는 아빠를 만나기 위해 달라스로 간다는 말에, 동병상련을 느낀 그 친구들이 슬초에게 자신들의 상처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 것입니다. 우리 엄마 아빠는 이혼한게 아니라는 말에도, 그 친구들은 슬초의 등을 토탁거리며 따뜻히 위로해 주었다고 합니다. “처음부터 대놓고 이혼했다고 말하는 부모는 없어. 그냥 회사, 공부 등 이런저런 핑계를 대다가, 어느날 갑자기 너희 엄마가 남자친구를 데려오면 그 사람이 이제 네 아빠가 되는 거야.” 그래서 슬초도 한동안은 불안함에 잠을 못 이루던 나날들이 있었더랬습니다. 지금은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옛날 이야기가 되었지만요.


그 시기에 만난 슬초의 친구 중 잊혀지지 않는 아이가 있습니다. 부모의 거듭되는 이혼과 재혼으로 형제들이 뿔뿔히 흩어지고 결국 아빠와 함께 살게 되었지만, 매 주말마다 한 시간 반 거리의 엄마와 엄마의 남자 친구의 집에 보내지던 아이였습니다. 문제는 이 친구가 슬초네 강아지들과 놀고 싶다는 핑계로 자주 슬초네에 와서 좀처럼 집에 가려하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미국 아이인데도 매운 김치찌개를 호호 불어가며 저녁 밥을 든든히 얻어 먹고 밤 늦게까지 버티다 가곤 했고, 그 친구의 아빠도 좀처럼 딸을 찾지 않았습니다. 한 마디로 좀 부담스러운 친구였지요.


그런데 어느날 학교 오피스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깜짝 놀라서 전화를 받았더니 슬초더군요. 갑자기 전화해서 미안하지만, 오늘 꼭 그 친구를 데리고 좋은 식당에서 맛있는 저녁을 좀 사 주고 몰에 가서 옷도 한 벌 사 달랍니다. 비용은 자신이 그간 개똥을 주워 모아놓은 용돈으로 갚겠답니다. 놀랐던 슬초맘, 짜증이 좀 났습니다. 이건 좀 아니지 싶어서, 이 녀석 밤에 따끔히 혼쭐을 내야지하고 벼렀더랬습니다. 방과 후 아이들을 만나 보나, 슬초 말이 글쎄 오늘이 그 아이 생일인데 생일을 챙겨주는 사람이 없어서 슬초가 생일 파티를 해 주고 싶은데 엄마가 꼭 필요하답니다. 아니 이게 웬 수퍼울트라 오지랖이냐 싶지만, 고상한 엄마가 되기위해 노력 중인 슬초맘은 일단 참습니다. 그날 밤, 그 두 아이들과 맛있는 저녁을 먹고, 슬초와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찾아간 옷가게에서 슬초맘은 알게 되었습니다. 왜 슬초가 ‘엄마가 꼭 필요하다’고 말했었는지 말이지요. 여자아이라 몸은 커가는데, 아이의 아빠가 아이의 몸의 변화에 맞는 속옷을 챙겨주지 못해서 그 아이는 항상 크고 헐렁한 어른 티셔츠에 어깨를 움추리고 다녔야 했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생일 선물로 받은 속옷과 몸에 맞는 옷들을 입어보고 거울 앞에서 좋아라 뛰던 아이가 집에 돌아갈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득 뭔가 주저주저하길래 왜 저러지?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 아이가 달려와 슬초맘에게 덥석 안기더니 어렵게 말을 꺼냅니다. “I want you to be my mom!” 그리고는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주먹으로 쓱쓱 닦으며 집으로 뛰어 들어갑니다. 


그 때부터 만 2년이 흐른 지금, 슬초맘은 달라스의 한 도시 빈민 지역에서 경제적/가정적인 어려움으로 인한 학습부진으로 유급을 당한 아동들을 위한 산수 공부방 봉사활동에 개척 멤버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봉사자들이 엄마로, 아빠로 또는 큰 형, 큰 누나의 모습으로 아이들을 돕는 그 일에 어린 슬초도 형제를 따라 함께 온 미취학아동들을 위한 놀이방 교사로 함께 참여하고 있습니다. 영어를 모르고 스페인어만을 사용하는 아이들이라서 함께 놀기가 어려울 텐데도 역시 아이들이라 그런지 까르르르~ 웃어가며 서로 신나게들 잘 놉니다. 그런데 이상하지요. 그 모습을 보고 있는 슬초맘의 가슴 저 깊은 곳에서 자꾸 그 때 그 아이의 목소리가 울려온다는 것이 말이지요. “I want you to be my mom!” 


슬초맘과는 생김새도 다르고, 언어도 문화도 다른 이 아이들. 한 때 내 새끼, 내 땅이 아니라며 고개 돌리던 슬초맘에게 이제 이 어린 것들의 눈물, 바로 미국의 눈물이 보이고 느껴지기 시작하는 것을 보니 힘들었던 지난 이민 생활, 그간 이 미국 땅에 미운 정도 고운 정도 많이 들었나 봅니다. 도무지 내 땅이 아닌 것 같던 이 땅의 아픔이 이제 내 아픔 같아 함께 감싸안고 걷겠다 하는 것을 보면, 그간의 이민 생활은 치열하고 힘들었지만 슬초맘을 참 많이 변화시킨 쓸모있는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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