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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Aug 27. 2019

인턴 일기

평소와 같은 날(2)

카트와 응급물품들을 챙기는 간호사들의 손이 분주하다.  이런 상황은 익숙하고도 익숙하지가 않다. 의사들이 달려오고 선배 의사의 지시에 맞추어 움직이는 의료진들의 행동은 마치 잘 짜인 톱니바퀴가 돌아가듯 능숙하다.  원인 파악을 위해 컴퓨터 차트를 보는 의사, 오더 하는 의사, 중환자실 확보를 위해 전화 컨택 중인 의사, 보호자에게 설명하는 의사, 인투베이션을 하는 의사, 각종 약물을 믹스하고 전달하는 간호사들, 혈액 준비, 기도확보 술기를 어시스트하는 간호사들.. 사람들로 가득가득 들어찬다. 빠르게 필요인력을 선정하고 그 외 의료인들은 제자리로 돌려보낸다. 


나는 사의 기로에 접어들려고 하는 환자를 최대한 천천히 이생에 붙잡기 위해, 시간을 벌기 위한 흉부압박을 한다. 일초에 두 번씩, 흉골이 깊게 눌렸다가 완전히 이완될 때까지, 그래야 멈춰버린 심장을 누를 수가 있다. 갈비뼈가 부러지는 느낌이 나지만 어쩔 수 없다. 갈비뼈는 시간이 지나면 붙을 테지만 지금 내가 효과적인 흉부압박을 못한다면 누군가의 사랑하는 가족은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건넌다.


환자는 중환자실로 이송되고 고요한 아수라장에 혼자 남아, 땀범벅이 된 얼굴을 닦으며  잠시 숨을 고르다 고개를 든다. 

'세월호 침몰, 구조 난항, 최소 백여 명 이상 실종'

'수학여행 가던 중학생들과 교사'


복도 건너 병실 TV 속 자막이 의미 없이 내 망막에 달라붙는다. 꿈뻑꿈뻑 눈꺼풀이 내렸다 올랐다 한다.

 

할아버지는 살았을까. 

드레싱 같은걸 하러 갈 때마다 아들이 출장을 가느라 이틀 있다 온다거나, 손자가 하나 있는데 요즘 젊은 사람들은 애를 많이 안 낳는다며 국가의 미래가 걱정된다느니 하는 말을 구시렁구시렁 하고, 그러면 나는 그게 무슨 젊은 사람들 때문이던가요 국가의 미래보다 내 미래가 더 걱정인데요 하며 뭔가 부루퉁하고. 할아버지는 다시 아가씨는 의사 아녀? 의사가 무슨 걱정이야 선생님 소리 들으면서 잘살면 되지. 그러게요 선생님 소리들을 줄 알았는데 아가씨 소리를 벗어나질 못하네요. 아이고 그러네 아가씨 미안하네 다음부터는 선생님 해줄게.


나와 관계없는 단 한 명의 노인의 죽음에도 이리 많은 사람들이 붙잡으려 애를 쓴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그리고 이 큰 병원에 있는 수많은 의료진들이 수술을 하고, 약물치료를 하고, 교육을 하며 밤을 새운다. 



아이들은 살았을까.


알 수 없는 무기력함에 잠시 쪼그려 앉는다. 콜폰은 여전히 울린다.

아니면 죽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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