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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나따 Oct 27. 2021

영국 티 문화의 "원조"는 포르투갈?



찬바람 부니 따뜻한 차가 땡긴다. 아침에 일어나면 새벽 내 추워진 온도 때문에 목이 칼칼하니까 따뜻하게 차 한잔, 자기 전에 소화 시키고 몸을 데워주려고 또 따뜻하게 한 잔. 영국에서 교환학기를 보냈을 때, 그 춥고 추적추적 비도 자주 내리는 나라의 기후를 체험해보니 이 나라 사람들이 왜이렇게 차에 환장하는지 알 것 같았다. 추우니까 자꾸 따뜻한 음료를 찾게 된다. 지금은 영국이 '차'의 국가이지만, 포르투갈에서는 "사실 그 차, 우리가 원조야!"라고 말한다. 포르투갈 공주가 영국으로 시집가면서 차 문화를 가져갔다는 것이다.



포르투갈은 유럽 문화 내에서 자신들을 타자(Other)로 재현한다. 프랑스나 영국, 스페인 같은 강국에 비하면 늘 유럽의 주변부이기 때문이다. 늘 주목받지 못하고, 문화 전파도 느리고, 억울하기만 한 주변부 국가이다 보니 "사실 ㅇㅇ은 우리가 원조야!"라는 식의 국뽕 담론이 꽤 있는데, 대표적인 게 영국의 티 문화와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반면 자신들이 식민통치 했던 아프리카나 아시아 지역의 문학은 "우리는 다 같이 루소폰 문학~"이라면서 포르투갈 문학 범주에 통합시킨다. 마치 남미의 가브리엘 마르케스를 미국인들이 "우리 아메리카 문학~~"이라면서 자신들의 문학으로 유입시키려 했던 것처럼. 조금 내로남불이긴 하지만, 브라질을 제외하고 앙골라나 모잠비크 등의 국가들은 출판사나 대학 제도 등이 미흡하기 때문에 포르투갈의 제도와 학계에 의존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자성적인 목소리와 식민 지배 과거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도 그 내부에 분명히 있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포르투갈의 실존 인물인 포르투갈 왕 동 페드루와 이네스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이야기가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에 영감을 주었다는 것인데,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 이 주장에는 좀 무리가 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이야기가 어디 한 둘이어야 말이지. 그렇게 치면 우리나라 견우 직녀 이야기도 포르투갈이 원조게? 이야기라는 것에는 "원본"이 없다. 무수히 많은 다양한 판본들이 존재할 뿐이다. 


그런데 영국에 티 문화를 전파해준 것이 포르투갈이라는 이야기는 꽤 신빙성이 있다. "포르투갈의 공주, 영국의 왕비"였던 도나 카타리나(D. Catarina) 때문이다. 영국이 강대국이 되기 전, 유럽의 쩌리 국가였을 때, 포르투갈은 영국과 우호관계를 맺어왔다. 이 우호관계는 프랑스의 나폴레옹이 등장하고 유럽을 재패하고자 할 때 정점을 찍는데, 역시 적이 같아야 더 친해진다고, 나폴레옹 물리치려고 둘이 아주 짝짝꿍이 잘 맞는다. 이 두 나라는 아프리카 정복 사업을 하면서 서로 사이가 틀어진다. 영국이 카이로부터 케이프타운까지 C to C를 잇는 아프리카 종단 정책을 펼치며, 반대로 횡단 정책을 펼치던 프랑스와 대립하고 있는데, 이미 후발주자가 되어버린 포르투갈까지 여기에 합세해 이 두 강국의 독식을 막으려고 아프리카 서부인 모잠비크와 동부인 앙골라를 식민지배하며 견제 전략을 펼친다. 땅따먹기 앞에 우호국은 적국이 되어버린다. 물론 이미 영국의 국력이 훨씬 강해져서 포르투갈은 더이상 비비지도 못하는 처지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런 일이 있기 전까지만 해도 사이 좋은 두 나라였다. 카타리나 공주는 영국의 찰스 2세와 결혼하면서 당시 중국으로부터 들여온 차를 마시는 문화를 영국에 알린다. 카타리나 공주가 영국으로 시집갈 때, 함께 배를 타고 공주를 호위한 사람이 당시 포르투갈에 외교관으로 와 있던 샌드위치 백작이다. 차 뿐 아니라, 마멀레이드도 함께 영국에 알렸는데, 영어에서는 오렌지 마멀레이드 등 여러 시트러스 계열 잼을 일컫는 말로 변형되었지만, 포르투갈에서는 '마르몰루(Marmolo)'라는 모과처럼 생긴 과일로 만든 단단한 잼을 가리키는 말이다.  


물론 영국인들 중 자신들의 일상인 차 문화가 17세기에 포르투갈에서 시집온 왕비가 데려온 문화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잘 없었다. 별론 관심 자체가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영국인들이 말하는 "차 문화의 원조"는 또 따로 있을지도 모른다. 차 마시는 습관을 수입한 것은 카타니라 왕비일지 몰라도, tea라는 말의 어원은 또 다른데서 기원했으며, 우유를 타먹는 영국식 차 문화는 분명 다른 경제적, 사회적 이유가 있을 것이고, "밥 먹어라"라는 말에도 "tea"라는 단어를 쓰는 특이한 영국 영어는 그들 사회에서 "tea"라는 기표가 가지는 광범위한 기의를 보여주는 것이니까. 원조를 따지는 일은 매우 세심하고 까탈스러운 일이고, 더 선행하는 또다른 '원조'를 발견하기 전까지 어디까지나 '임시'에 불과한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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