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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나따 Nov 17. 2021

결혼 후 달라진 플레이리스트

결혼을 해서 그런지, 아직 일년도 안 지난 신혼이라 그런지, 올 가을은 가을 한 번 타지 않고 평온하게 보냈다. 자고로 내게 가을이란 빛과 소금의 <그대 떠난 뒤>로 시작해 김창완밴드의 <E메이저를 치면>으로 끝나는 궁상과 처연의 계절이었는데 말이다.


요즘은 예전 즐겨듣던 가을 전용 음악을 들을 일이 잘 없다. 잠 안오는 가을 밤에 심야 라디오처럼 틀어놓고 아련해져야 하는데, 남편과 함께 있는 공간에서 나만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 놓기는 쉽지 않다. 게다가 이 신혼의 넘치는 여유와 충만한 행복함. 쓸쓸한 마음이 감히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이 사랑으로 꽉 찬 일상에서 어찌 가을을 탈 수 있으리.


차를 탈 때 주로 내가 음악 선곡을 하지만 저런 조용한 노래는 드라이브에 어울리지 않는다. 대신 신나는 윈디시티의 라틴풍 음악이나 술탄오브더디스코의 경쾌한 리듬을 드라이브 시간에 틀면서 슬쩍 남편이 좋아하나 눈치를 쓱 본다. 정말 마음에 들면 “이 노래 좋다”고 해줄 때도 있고, 그 다음날 흥얼거리기도 하는데 그럼 이제 나만의 노래가 아닌 우리의 노래가 된다.


몇주 전, 본격적으로 낙엽이 떨어지기 전 부지런히 가을을 즐기자는 마음으로 산책열심주간을 가졌다. 결혼 전 듣던 포크송을 듣기 딱 좋은 혼자만의 산책이었다. 루시드폴의 <햇살은 따뜻해>, 이한철의 <산책>을 들으며 은행나무 길을 골라 들었다. 오늘 아침에는 찬 바람 들어오게 환기를 활짝 하면서 브로콜리 너마저의 2집 CD를 틀었다.


"그 어떤 신비로운 가능성도 희망도 찾지못해 방황하던 청년들은"


이렇게 시작하는 노래가사가 한 때는 너무나 내 이야기 같아서 눈물 없인 들을 수 없었지만, 지금은 '참 명반이다~'라고 생각하며 듣는다.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거나 그때가 싫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렇게 외로워하며 방황하던 내가 있었기에 지금이 행복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뿐이다. 물론 이렇게 자만해서는 안된다. 가을을 타는 것과 결혼 여부는 크게 상관관계가 없을지도 모른다. 내년 가을에는 또 모를 일이다. 너무 행복할 때 애써 불행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자만하지 말고 지금의 행복과 일상의 포만감을 잘 유지해야겠다. 가끔씩은 혼자만의 음악도 틈틈이 즐기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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