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수도 리스본 근교에는 오비두스(Óbidos)라는 중세마을이 있다. 고즈넉한 성곽 둘레길, 아기자기한 상점들, 초코컵에 담겨 나오는 체리주 등 반나절 정도만 구경해도 아름답고 행복해지는 곳이다. 리스본에서 오비두스로 가는 버스를 타면 “여왕의 스파”라는 뜻의 깔다스다하이냐(Caldas da Rainha)라는 동네를 지난데, 이곳은 도자기로도 유명하다.
신석기시대부터 진흙이 풍부했다는 이곳을 도자기의 명소로 만든 것은 19세기 말의 예술가이자 도자기 공예가 보르달루 피녜이루(Bordalo Pinheiro, 1846-1905) 때문이다. 과일과 꽃, 식물 등을 모티프로 하는 세라믹 아티스트였던 보르달룬 동생과 깔다스다헤이냐에 도자기 공장을 세우고 자신의 작품을 대량생산하여 판매하기 시작했다. 음식과 잘 어우러지는 토마토 모양 스프컵, 배추 모양 접시 등은 대중적으로 큰 사랑을 받았고 현재도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기념품을 선별하여 큐레이팅하는 편집샵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번 소개한 비스타알레그르도 자연의 모티프를 많이 사용했지만 보르달루의 경우 훨씬 적극적이고 직접적으로 자연을 차용한다.
딸기모양 쟈(jar)와 접시. 딸기 꼭지가 뚜껑이라 열고 닫을 수 있다. 이파리와 과일의 오돌토돌한 질감을 잘 담아냈다. 우리나라 음식 중에 연잎을 깔고 그 위에 요리를 얹는다든지 실제 풀을 데코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마치 그런 효과를 낸다.
이건 수박. 음료를 담을 수 있는 쟈, 납작한 접시, 오목한 그릇까지 다양하다.
이건 메론. 노란 메론 색깔이 한국의 늙은 호박 색 같기도 하다.
여기 파인애플도 있다.
내가 보르달루에서 그릇을 산다면 사고 싶은 세트. 꽃의 모양을 형상화한 오목한 그릇들을 자세히 보면 수술과 암술이 꽤 실감나게 표현되어 있다. 꽃잎모양 그릇과 풀잎 모양 그릇을 교차로 배치하여 정말 꽃밭을 식탁 위로 옮겨놓은 듯 하다.
세트로 말고 딱 하나 단품으로 산다면 사고 싶은 것은 저 배춧잎 모양 접시이다. 저 접시에 한국의 빨간 김치를 올리면 너무 멋스럽고 먹음직스러울 것 같다.
이렇게 차분한 라인도 있다. 은은한 파스텔톤에 특유의 양각기법을 사용한 질감 표현이 고급스럽다.
생생한 표현이 특징인 만큼 앗! 이렇게까지 생생하게? 싶은 작품들도 있다. 개구리가 붙어있는 화병. 보르달루의 유머러스함이 돋보인다. 보르달루는 도자기 공예 뿐 아니라 신문에 만평을 그린 만화가로도 활동했다. 그의 주 특기가 유머와 풍자인 것이다. 이 개구리는 약과이고 나뭇잎 모양 그릇에 작은 달팽이가 붙어 있는 디자인의 그릇도 있다. 재치 넘치긴 하지만 혹여 비위가 약하거나 잘 놀라는 사람은 먹다가 깜짝 놀랄지도 모른다.
제비는 우리나라에서도 가정의 화목을 상징하는데 포르투갈도 마찬가지다. 철새인 제비가 날아오는 계절은 사랑을 나누고 가정을 이루는 계절을 상징한다. 그래서 포르투갈 가정집에는 이런 제비 장식을 많이 놔둔다. 보르달루 역시 이런 상징을 지닌 제비를 모티프로 많이 사용한다.
모든 이미지 사진은 공식인스타램 @bordallopinheirooficial에서 가져왔다. 비스타알레그르보다 가격 면에서 훨씬 접근성이 좋다. 포인트로 하나씩 식탁위에 올리거나 장식용으로 화병 등을 구매해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