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계 대학원생의 공부 방법 2
한 때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라는 책이 베스트셀러였다. 읽어보진 않았지만, 평생 생계를 위해 이것저것 안해본 일이 없이 열심히 살던 저자가 뒤늦게 사시공부를 하여 변호사가 된 이야기이다. 책 내용과는 상관없이 이 책의 제목은 일종의 '짤'처럼 여기저기서 재미있는 다른 맥락을 만들어내며 사용되었다.
나는 솔직히 공부가 제일 쉬웠던 사람 중에 한 명이다. 잘하는 것과는 별개로 나는 공부가 우선 재밌었다. 초등학교를 마치면 집으로 달려와 옷도 안 갈아입고 책가방 속 교과서를 꺼내 선생님이 내주신 숙제를 했다. "우리 동네 이름의 유래와 그에 얽힌 전설을 알아오기"라는 숙제는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어찌나 야단법석을 떨었는지, 당시 같이 살았던 할아버지가 동네 이장님이셨는데 할아버지 백을 사용해 마을에 얽힌 온갖 문서며 책은 다 모아서 그 숙제를 재밌게도 했었더랬다. 참고로 내가 살던 곳은 도서관을 한번 가려면 하루에 두 번 밖에 없는 버스를 타고 몇 시간이나 기다려 다른 버스를 또 갈아타고 가야할 만큼 시골이었기에, 선생님이 내주시는 숙제를 마음껏 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그러나 나의 열정만큼은 대단했다.
그랬던 아이는 스스로 세상과 인간을 탐구하는 학문에 매료되어 집도 도서관과 걸어서 10분 거리에 얻고, 날마다 책을 펴 세상의 온갖 이름과 유래와 전설에 대해 공부하는 연구자가 되었다. 지금도 공부가 제일 쉽냐고? 글쎄. 공부를 사랑하고 재밌어하는 건 맞지만 솔직히 이제 자신있게 쉽다고는 못하겠다. 그래도 확실한 것은 대학원 다니면서 입버릇처럼 하는 말은 생계 걱정 때문에 이것저것 아르바이트 하지 않고, 학교 행정일에 치이지 않고, 그냥 공부만 했으면 소원이 없겠다는 것이다. 성인이 되어 1인분의 몫을 하려니 그것이 힘든 것이지, 돈 걱정 없이, 생활에 대한 걱정 없이 공부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 자주 상상한다. 그러나 사람의 욕심이라는 것이 얼마나 간사한지, 공부만 하게 되는 때가 오면 그 소원은 또 교묘하게 모양을 바꾼다. "내가 하고 싶은 공부만 하고 살고 싶다"라는 소원으로. 막상 대학원에 와보면, 별로 관심 없는 과목도 들어야 하고, 이런저런 연구에 반강제로 참가하게 되어 내 실속은 못 챙기는 일도 생긴다. 나중에 교수가 되면 또 좀 달라지려나 싶어도, 고개를 들어 교수님들을 보면 행정일에, 외부활동에, 학생 관리에, 저렇게나 바쁜데 연구는 언제 하시고 잠은 언제 주무시나 내가 걱정이 될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일을 하는 것은 저마다의 보람과 열정과 도저히 궁금해서(그 호기심이 긍정적인 이유에서 출발했든, 부정적이고 아픈 이유에서 출발했든) 못 견디는 세상의 모양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