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을 읽고
어떤 책은 읽었을 때 한 문장 한 문장을 후루룩 빨아들이기보다 삶을 향한 태도로서 책 전체를 삼키고 싶어진다.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가 그랬다. 저자 패트릭 브링리가 보여준 인생의 슬픔을 충분히 애도하는 태도, 다시 말해 자기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삶의 태도를 생각했다.
이건 내가 잘하지 못했던 것에 관한 이야기다.
상실로부터의 다급한 회복, 즉 애도 기간을 건너뛴 상실은 마음의 싱크홀이 된다. 나는 갑상선암 진단을 받은 뒤 이전의 나를 잃었다. 삶을 바라보는 관점, 사람들과 관계 맺는 방식, 앞으로의 삶에 대한 기대……. 삶에 초장부터 기권패를 강제당한 느낌. 건강검진센터의 지하 화장실에서 목놓아 운 이후의 나는 그전과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렇지만 덮어두고 지나갔다.
삶에 졌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나는 갑상선암을 치료하곤 아무런 변화도 없는 것처럼 일상으로 돌아갔다. 2번의 갑상선암 수술과 1번의 방사성 요오드 치료를 거치면서도 충분히 쉬지 않았다. 첫 수술을 했을 땐 기자로서 출입처를 뺏길 수도 있단 초조함에 2주만 쉬었다. 두 번째 수술을 했을 땐 한 달을 쉬기로 했지만 1주일을 당겨 복귀해야 하는 상황이 생겨 그렇게 했다. 그나마 쉬는 동안에도 불안했고 불행했다. 일하지 않는 순간의 나는 존재의 의미를 잃어버리곤 했다. 뻔한 말이지만, 앞만 보고 달렸다.
쓸모 없(어질 수도 있)는 (아픈) 나 자신을 견딜 수 없었다.
브링리는 형의 죽음이라는 상실을 겪고 직장을 그만둔 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침잠하기로 한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생각지도 않으며" "아는 공간 중 가장 아름다운 장소에서, 떠올릴 수 있는 가장 단순한 일"을 하기 위해 말이다.
그렇게 그는 10년 동안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으로 살아간다. 경비원인 브링리의 시선은 미술 작품, 관람객, 동료 직원들을 투과해 세계를 살아가는 자신에게 향한다.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는 저자가 자신을 깊은 수장고에서 세상에 꺼내기까지 걸린 10년 동안의 기록이다.
천천히, 우아하게 삶을 버텨낸 브링리. 삶이 건넨 무자비한 상실의 구멍을 단단하게 메워냈다. 나는 두 번째 수술로부터 3년이 지난 이제야 나 자신을 들여다보고 있다. 왜 이렇게 나를 닦달했는지, 못 믿었는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생의 잔인함이 할퀴고 간 자리를 어떻게 다독여야 할지.
다시 말해 이미 일어난 일로서의 상실을 이해하고 그로부터의 회복을 꿈꾼다. 이 책의 띠지 문구엔 이렇게 쓰여 있다. "7만 평의 공간, 300만 점의 작품, 연 700만 명의 관람객들 사이에서 발견한 삶과 예술의 의미, 그리고 다시 나아갈 용기에 대하여". 브링리가 그랬듯, 다시 나아가기 위해 용기를 내는 중이다.
� 책 속의 한 줄
그가 대성당의 거대한 돔 지붕을 그린 가로세로 25센티미터가량의 종이를 들여다본다. 로마의 지붕들 위로 높이 솟아오른 돔을 짓는 것은 초인간적인 능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고, 바로 그래서 우리가 미켈란젤로라는 인물이 초인간적인 능력을 지닌 사람이라는 인상을 갖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 소박한 그림에서 그는 그저 무지개 모양을 거듭해 그리면서 마음에 드는 곡선을 찾으려 하고 있다. 아무리 위대하다 칭송을 받는 그일지라도 결국 어린아이 같은 연습 과정을 건너뛸 수는 없는 사람인 것이다. (29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