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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오늘 Jun 08. 2023

누구나 편하게 이용할 수 있다면 휠체어가 못갈곳은 없다

장애인과 함께 사는 법  - 백정연

 





 장애인과 함께 사는 법. 너무나 막연해 어떤 감상문을 남겨야 할지 몰라 머뭇거려진다. '서울에 살며 눈이 피곤할 정도로 많은 인파를 보는데 그 안에서 장애인은 보지 못했다.'라고 쓰려 했으나 장애도 너무나 다양하니 겉으로 드러나는 장애인을 말하는 거겠고, 그럼 시각장애인이나 보행장애인을 말하는 게 되려나 싶고, 혹여나 내가 관심 있게 보지 않아 그들을 지나친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난 이 책을 읽고 무엇을 쓰고 싶은가. 다시 한번 생각해 봤다.


 발목이 부러지고 발목 인대가 끊어진 사고로 깁스를 한 경험이 있다. 약 4주간 깁스를 했고 전혀 디디지 못해 집에서는 바퀴가 달린 의자를 끌고 다니거나 깽깽이로 다녔고 부득이하게 외출을 해야 할 때는 목발을 짚고 다녔다. 그리고 4주 내내 다른 세상을 살았다. 진부하지만 정말이다. 내가 지금껏 거대한 미세먼지를 덮어쓰고 살았었나 싶을 정도로 새로운 것들이 보였다.


 2년 넘게 같은 길을 출퇴근하면서 지하철 계단 바로 옆에 엘리베이터가 있는 걸 그날 처음 알았다. 보도블록은 깨져있고 바닥이 이렇게 울퉁불퉁 한지, 서너 칸짜리 자잘한 계단이 느닷없이 등장하는지, 내가 가지 못하는 길이 이렇게도 많았는지, 엘리베이터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건지, 땀은 왜 이렇게 뻘뻘 나는 건지, 이 땀은 진땀인지 짜디짠 눈물인지 내가 참고 있는 울분인지!


 퇴근길 회사에서 코앞인 전철을 타기까지 평소 4분 정도 소요되니 넉넉하게 20분 정도의 시간을 잡으면 되겠군! 호기롭게 계산을 하곤 하나둘하나둘 목발을 짚으며 에스컬레이터를 타려고 보니 공사 중이다. 그놈의 엘리베이터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건지 한참을 찾아 내려가고, 또다시 뺑글뺑글 돌며 엘리베이터를 찾아 내려가니 열차는 한참 전에 떠났다. 이미 시간은 40여 분이 흘렀고 내 티셔츠가 땀으로 축추욱히 젖어갈 즈음 그저 주저앉아 잠이나 청하고 싶은데 아직 난 출발도 못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2시간의 시간을 길에 쏟아붓고 겨우 집에 도착해 바로 2주 병가를 냈다. 그 이후 깁스를 푸르기 전까지 지하철은커녕 그 어떤 대중교통은 타지도 않았으며 누군가가 태워주는 자동차를 제외하곤 필요한 보행만 했다. 그 이유는 뭐 알다시피 내 삶을 울분으로 채울 수 없었으니까.


 바깥세상만 문제였던 건 아니다. 가족이 바닥에 옷가지라도 버려두면 정말 황당하다. 내가 황급히 화를 내니 가족이 어리둥절해 한다. 이렇게까지 화를 낼 필요가 있냐는 표정인데 아, 이 사람은 정말로 이게 얼마나 뻔뻔한 일을 한 건지 모르는구나 싶었다. 나라도 2주 전만 해도 전혀 몰랐겠지. 그러니까 우리가 길거리에 미관상 점자블록을 없애놓고는 아무 곳이나 킥보드를 내버려 둬 미관을 해치는 이 광경은 당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역시 내가 겪은(당한) 일을 쓰면 할 말이 한 바가지다. 내가 정말 가고 싶었던 해물찜 가게에 도착해 엘리베이터를 열심히 찾고는 허망하게 냄새만 맡고 돌아왔다든지 그런 건 아직 쓰지도 않았는데.

 내 지인도 최근 전동휠체어로 이동하는 장애인과 식당을 찾느라 1시간 30분을 돌아다닌 적이 있다고 한다. 장애인 화장실이 있고 1층에 진입할 때 전동휠체어가 이동할 수 있고 식당 안에서 전동휠체어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장소를 찾기가 너무나도 어려웠다고.

 이런 일들이 나만 겪은 일이 아니라면 분명 도처에 널려있을 텐데 세상이 너무나 조용하다. 나 또한 깁스하기 전엔 깁스하는 사람들을 보지 못했듯이 나의 무심함이 그들의 외침에 귀를 막았을 테지. 나의 알량한 4주간의 경험으로 그들의 외침을 조금이라도 더 들을 수 있게 되었을까. 그마저도 보행장애에 대해서만 생각해 보았으니 다양한 장애인과는 많은 부분이 다를 테지만, 한 가지. 누구나 편하게 이용할 수 있다면 휠체어가 못 갈 곳은 없다. 유아차, 지팡이, 목발, 삑삑이신발들이 어디든 갈 수 있는 세상은 지금보다는 훨씬 더 나은 세상일 거다.











우리나라는 「장애인복지법」에 따라 장애 유형을 15가지로 나눈다. 장애 유형을 분류하는 것은 그 사람에게 필요한 지원을 하기 위한 근거를 마련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장애 유형을 장애인을 분류 하는 기준 또는 잣대로 생각한다. 그래서 같은 시각장애인이라도 전혀 다른 장애(정도)를 가지고 완전히 다른 삶을 살 거라 생각하지 않으며, 척수장애인들끼리도 서로의 상태에 대해 모르는 게 당연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이해하기 쉬운 장례식장 예절이라는 소책자를 발간했다. (…)
 어두운 색의 옷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선규는 장례식장에 들어서자 마자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방명록에 이름을 쓰고 부조함에 봉투를 넣었다. 고인에게 헌화를 하고 향도 피웠다. 고인과 상주에게 절을 하더니 남편에게 다가와 손을 잡고 위로했다.
"승일이 형!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얼마나 마음이 아프십니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렇게 확보한 주차장인데, 주말이 되니 장애인 주차 구역이 재활용 쓰레기 수거장으로 변했다. 그럼 우리는 어디에 주차하냐고 경비 아저씨를 찾아가 물으니 별다른 방법이 없다는 대답만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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