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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진 Dec 23. 2023

먹먹해지는 그런 사이

  한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어떤 이론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지식으로 받아들여지고 걸러질 수는 있겠지만. 그 세계에서 말하는 것들에 깊이 다가가기가 그냥 되는 것은 어렵지 않을까. 그것은 오직 한 사람으로 인하여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치우치는 사고에서 바로 보게 하는 것은 깊은 만남으로만 가능한 것일 수도 있다. 순수하게 사람을 이해하고 가까워지고 신앙이나 가치관에 대하여 바라볼 때 나 자신이 더 넓어지는 경험을 하게 되기도 한다.


 우체국에 택배를 보내기 위해 열한 시 오십 구분에 도착했다. 열두 시에 셔터를 내리고 한시에 문을 연다고 다시 오란다. 예전에는 당번으로 한 사람씩 점심시간에도 자리를 지키더니 이제는 그마저 아예 문을 닫아건다. 내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이지만 서비스란 그래도 되는 것인가 싶어 아쉬운 마음이다.


 어쩔 수 없이 선물할 책 열 권을 그대로 들고 일하는 곳으로 갈 수밖에. 오후 느지막이 우체국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낮 익은 모습의 수녀님이 일을 보고 있다. 다가가 살짝 알은척을 했다. 마음 같아서는 안아드리고 싶었지만 여건이 안 되는 것 같아 인사만 건넸다. 몇 년 만의 만남. 같은 지역 같은 동에서 살아가지만 함부로 만날 수 없는 사람도 있다.


 아이들 어릴 때 고운이라는 가정환경이 어려운 친구를 수녀원에서 잠시 돌보고 있었는지 가끔 우리에게로 왔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수녀님도 마주치게 되고 차 한 잔씩 마시며 수녀원에 들르기도 하며 친구처럼 지냈다. 수녀님은 이탈리아로, 러시아로 다녀오고, 몸이 아픈 기간을 소식 없이 지낼 수밖에 없기도 했다. 나는 아주 조금의 사랑을 흉내 냈을 뿐인데 수녀님으로부터 큰 사랑을 빚졌다. 잊지 않고 우리 아이들 일을 자신의 일처럼 걱정해 주고 물어주었던. 큰 딸이 서울로 학교를 가게 되었을 때 장학금으로 가게 되었지만 드는 돈이 만만치 않았다. 아무 말 안 했는데도 수녀님이 딸아이 안부를 물어 여차저차 이야기했었다. 돈 이야기는 요만큼도 꺼내지 않았다. 합격증만 있으면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제도가 있다고 했다. 우리는 천주교가 아니고 개신교인데 가능하냐고 했을 때 다고 했다. 여차로 딸아이가 합격증을 복사해 놓은 것이 있어 드렸더니 아무런 조건을 내세우지 않고 장학금을 보내왔다. 그때 살짝 비교가 되었다. 입장을 바꾸어 개신교에서는 이런 일이 가능한 이야기일까 하고. 그렇게 딸은 보이지 않는 손길의 도움으로 학교를 갔다.


 수녀님을 볼 수 있는 시간은 아주 짧고, 만나도 한정된 시간이었다. 시간을 소분해서 살아가는 삶. 자신을 위하지 않고 다른 이들을 위해 내어 주는 삶. 참 아름다운 모습이 내게 각인되었다. 말로 하지 않고 행함으로 말하는. 그분을 통하여 가톨릭이라는 세계를 엿보게 되었다. 사람들이 그어놓은 선을 뛰어넘어 바라보는.


 사람은 늘 익숙한 곳으로 향한다. 다른 곳의 우체국을 들렸더라면 우리의 만남은 또 언제쯤으로 미루어졌을지. 잠시 얼굴을 본 것으로 마무리되었지만. 반가움은 마음 가득 차올랐다. 어떤 약속도 기약할 수 없는 관계. 생각 만으로만 기뻐하고 궁금한 사이. 일 년에 두어 번 카카오 톡으로 전해지는 성탄과 부활의 기쁨. 그렇게라도 서로의 안부를 확인할 뿐이지만 생각하면 마음이 뿌듯해지고 먹먹해지기도 하는 그런 사이.


 잠시의 만남이 간절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조금이라도 덜 서운하기 위하여 성탄 선물로 준비한 기도문 책 중 한 권을 얼른 봉투에 넣었다. 늘 기도와 말씀을 묵상으로 사는 삶인 수녀님도 좋아할 것이라 여겨 마음으로 드렸다.

 

 기도문이 좋아 날마다 두 바닥씩 기도하는 마음으로 따라 쓰고 있다. 혹여 그 기도 중에 수녀님을 만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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