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간의 유럽 여행 동안 시차적응을 하지 못해 늘 잠이 부족했으니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한정 없이 잠이 쏟아진다. 낮에 자면 밤에 못 잘 까봐 잠을 아껴두려 했던 계획이 무색하게, 이틀 동안 하루의 절반씩을 잠으로 보낸 것 같다.
그리고 3월 2일 개학날. 아이들은 학교에 가는데 나에겐 여전히 방학이 이어진다. 드디어 휴직을 했다는 게 실감이 난다. 교사 생활 평생에 1년만 쓸 수 있는 안식년 휴직이니만큼, 이 시간을 최대한 보람되게 쓰고 싶다는 열정이 끓는다. 물론 이미 휴직 경력은 육아 휴직 6년에 시간 선택제(3일만 출근) 2년도 있지만, 앞으로 남은 날의 경력 중엔 마지막 1년이 될지도 모른다.(내심 무급 휴직이 앞으로 더 늘어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침대에서 겨우 기어 나와 삼발 한 머리로 등교하는 아이들을 배웅하고 다시 침대에 들어가 누우면서 "아~ 이렇게 시작하면 안 되는데"하며 되뇐다. 의지의 한국인으로 조금만 쉬다 나와 아침을 먹고 머리를 감는다. 무조건 아침 일찍 집 나설 준비를 하는 게 일차적인 목표다. 오전에 나가서 1시간 이상 걷고 그림 그리고 들어온 후에 책도 읽고 영어공부도 하고 글도 쓸 계획이다.
머리 말리는 동안 영어공부를 시작했는데 늦게 나갔다간 점심시간도 아이들 하교 시간도 못 맞추겠다 싶어 일단 집을 나서기로 한다. 여행에 가져가기 위해 빌렸던 책을 반납하고 눈에 띄는 새로운 책을 또 가방에 넣었다. 걷는 동안 엄마에게 전화도 드리고 오디오 클립으로 역사나 영어 강의도 듣는다. 물론 카페에 앉아 그림도 한 장 그린다. 의외로 마음에 드는 장면을 포착하게 되어 신이 난다.
개학날 아이들은 하교 후 친구들과 놀다가 들어온다니, 보던 미드를 틀어놓고 청소를 한다. 돌아보니 휴직 첫날을 정말 성실하게 보냈다. 놀려고 휴직을 한 건지 공부를 하려고 휴직을 한 건지 헷갈린다.
생각해 보면 학교 다닐 때도 그랬다. 방학이 오면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마음대로 할 수 있어서 계획을 짜며 신이 났었다. 교사가 된 후 방학이 돌아오면 무조건 열심히 노느라 공부계획 같은 건 안중에도 없었는데, 시간이 1년쯤 주어졌다고 생각하니 공부를 할 여유도 있다고 생각되나 보다. 실컷 놀고 공부까지 해도 시간이 많다고 느껴진다.
1년이 지났을 때 돌아보면 또 시간 쏜 살같이 지나간 듯 느끼겠지. 쏜 살같이 지나가더라도 많은 것들로 가득 채우고 나면 후회는 없을 것 같다. 내일은 염색하러 가야지. 룰루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