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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fulmito Jun 29. 2024

여자의 변신은 무죄

실수 제조기의 삶을 살다 보니, 실수를 하고 나면 스트레스를 받기보다는 남의 일 보듯 빵 터지며 깔깔 웃곤 한다. 나의 그 실수담은 다시 에피소드라는 옷을 입고 주변의 많은 사람들의 웃음을 제조한다. 개그의 피와는 전혀 관련 없던 내가 언젠가부터 남을 웃겨놓고 뿌듯하다. 그렇게 남을 웃길 에피소드가 늘어가는 기쁨을 느끼기도 한다.


지난주 '이모에게 수박과 참외를 보내라'는 엄마의 지령을 성실하게 혹은 귀찮음에 툴툴거리며 수행하고 월요일 퇴근 후 우리 집 앞에서 참외 박스를 발견했던 에피소드를 곳곳에서 신나게 우려먹는다. 나와 함께 깔깔 웃던 사람들이 "자기는 그러면 언제 스트레스 받아?" 하고 묻는다. 잠시 고민한 후, "음... 스트레스 많이 안 받는 것 같아요."하고 답했다.(나중에 떠오른 나의 스트레스 포인트는 새로운 기계 사용하기다. 나는 정말 심각한 기계치다.)


"원래 스트레스를 잘 안 받는 성격이었어?" 두 번째 질문에 또 한 번 멈칫 고민한다. "아닌데? 나 완전 소심하고 스트레스 많이 받는 성격이었는데?"

"그럼 어떻게 변하게 된 거야? 계기가 있어?"

"어... 모르겠네."


나의 인생을 돌아보게 하는 말 그대로 빅퀘스쳔이 던져졌다. 어디 가서 누구에게 말도 못 붙이던 소심한 아이, 시험 문제 하나 틀려도 대성통곡하던 아이, 성탄절 개막인사를 결국은 못하고 몸져누워버렸던 아이, 선생님의 지적 한마디에 민망함에 눈물이 터져 나오던 중학생, 그런 눈물이 성인이 되어서까지 주책맞게 터져 나와 민망한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말이다.


곰곰이 나의 삶을 돌아보다 두 개의 장면이 떠오른다.


뛰어난 학생들이 가득 모인 대학에서 취미에 맞지 않는 영문학과 어렵기만 했던 영어학, 입이 떨어지지 않던 회화까지 어느 하나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늘 우등생이었던 나는 평생에 처음으로 형편없는 점수 퍼레이드를 겪었다. 물론 대학을 다니는 내내 성적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긴 했지만 대학 시절 다른 것들에 더 관심이 많았던 덕분에 그 스트레스에 잠식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임용을 치기 전 학과 사무실에서 처음으로 석차가 적힌 성적표를 받아 들고 적잖이 당황했더랬다. 심각한 얼굴로 성적표를 들고 나온 4명의 친구들이 캠퍼스 벤치에 앉아 조심스럽게 성적을 공개하기를 제안한다. "내가 더 못했을걸?", "아니야, 내가 더 심해." 모두들 강력히 우승 후보를 자처하는 가운데 조심스럽게 내밀어진 4장의 성적표를 보고 우리 넷은 빵 터지고 말았다. 누구보다 심각했던 4명의 여대생이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배꼽을 잡고 눈물까지 흘려가며 웃어댔다. 우리 밑에는 복학생 몇 명 밖에 없을 것 같은 하위에 쪼롬히 붙은 4개의 숫자. 우리 넷 사이에 단 한 명도 파고들지 않은 덕분에 비극은 희극이 되고, 좌절은 추억이 되었다.(그 와중에 넷 중 1등인 나는 으쓱해져서 친구들의 칭찬까지 받았다.)


두 번째 장면은 좀 더 비극이긴 하다. 6년의 육아휴직 후 복직했던 해, 소위 폭탄인 반을 담임하게 되었고, 쉬는 동안 감을 완전히 잃어버린 나는(쉬는 사이에 체벌이 없어져 체벌 없이 학생들을 다루는 방법을 나는 알지 못했고, 그 사이 학생들도 세대교체라 불릴 만큼 달라져 있었다.) 최선을 다해 노력했지만 무능한 교사일 수밖에 없었다. 진심은 전달되지 않았고 오해는 깊어갔고 나의 무능함은 팩트였기에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구제불능이 되어버린 반을 힘겹게 끌고 일 년을 버텨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망쳐버린 일 년을 보내고 다시 돌아보고 싶지 않은 흑역사를 마무리하게 된 종업식날, 기분전환을 위해 머리를 하고 미용실에서 나오면서 묘한 뿌듯함이 밀려왔다. 아! 도망가지 않고 버텨냈다!!


인생에는 성취감의 경험도 중요하지만 실패의 경험도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 실패를 버텨내고 나면 실패해도 큰일 나지는 않구나, 하는 깨달음이 생긴다. 내가 큰 스트레스 없이 일상을 살아가는 힘은 '못 해도 괜찮아'라는 생각에서 출발하는 여유로움이다. 15년의 교직 경험은 "반드시 잘해야 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게 했다. 인간관계라는 것이 아무리 내가 잘한다고 해서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더라고. 수없이 깨지고 욕을 먹고 오해받으면서 나는 인생에서 적절한 성공과 적절한 실패를 맛볼 수 있었다.


꼼꼼하지 못한 성격 덕분에 연발하는 작은 실수들은 우습게 되었고, 내 머릿속에 유쾌하게 각인된 캠퍼스 교정을 가득 채웠던 친구들과의 웃음에는 중독성이 있어 그런 경험을 꾸준히 만들어가게 된 듯하다. 타고난 천성은 아니었더라도(내면 깊숙이 숨어있던 한 부분이 발견된 건지도 모르지만) 마흔여섯의 나는 낙천적이고 유쾌하고 여유로운 중년이 되었다. 다행이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조금 더 멋진 모습으로 늙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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