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따티제 Mar 25. 2024

누군가의 직업이 사라졌다.

백수 주제에 사라지고 있는 직업들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참 우습다.

누군가의 직업이 사라졌다.


   지난 몇 년간 주차 요금 정산 부스에서 일하던 지인이 일을 그만하게 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6개월 치 급여를 보상으로 받았다고 한다. 아무래도 사측에서 해고에 의한 실업급여를 그렇게 설명하고 달랜 모양이다. 모든 인력은 키오스크로 대체되었다.


   욕실 LED 등이 나갔다. 이사올 때 새로 달린 등이었다. 기판을 뽑아 조명 가게로 갔다. 기사님이 여자가 작업하기는 어려울 거라고 다짜고짜 주소를 묻고 출장비를 불러댔다. 조명은 2만 원, 출장비도 2만 원이다. 괜히 화가 나 남편 핑계를 대고 가게에서 나왔다. 돌아오는 길 너튜브를 검색해 보니 누군가에겐 불친절할 친절이 넘쳐난다. 생각보다 쉽게 등을 갈았다.


   클라이언트에게 웹 페이지의 배경으로 넣을 이미지를 제안했다. 브랜드에 어울리는 이미지를 고르고 골라 컨펌까지 받은 것이었다. 페이지에 구현된 모습을 보자마자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며칠 뒤 이 이미지로 교체해달라고 직접 보내온 이미지는 챗 GPT가 만든 것이었다.


   챗 GPT에 챗 GPT 시대에도 사라지지 않을 직업을 물었다. 인간과 기술 사이의 윤리적인 문제를 다룰 윤리 전문가, 감정적이고 복잡한 상황에서의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예술가나 작가와 같은 창의성이 있어야 하는 직업, 교육이나 상담과 같은 사람 간 서비스 제공자, 문화 보존가가 답변으로 생성됐다. 하지만 이미 그 영역 내에서도 많은 직업들이 위협받고 있다. 동의가 잘되지 않는다.


   지난주, 강남에서 일하는 친구의 점심시간에 맞춰 그의 회사 앞으로 갔다. 점심을 먹으러 쏟아져 나온 인파 사이로 저마다의 고민이 흩날린다. 프로젝트에 관해 이야기하고 상사 뒷담화를 한다. 그러다 문득 그 고민이 언제까지고 계속될 수 있을까 하는 섬뜩한 생각이 들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백수 주제에 사라지고 있는 직업들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참 우습다. 그럼에도 마냥 우습지만은 않은 것은 다시 갖게 될 직업은 그 어떠한 위협에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또한 그 어떠한 위협에도 누군가의 직업이 사라지지 않도록 돕고 싶기 때문이다.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한참 써 내려가다 하늘을 나는 자동차를 만든다는 모 회사의 주가를 뒤적거렸다.


   오늘도 누군가의 직업이 사라지고 있다.




Image source: by Waldo Miguez via Pixabay

매거진의 이전글 카페에 들어온 지 다섯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