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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릴라 Feb 13. 2021

엄마가 사과를 했다. 그리고..

영화 <세자매>가 주는 특별한 위로

내 최초의 기억은 다섯 살쯤 싸우는 엄마 아빠를 오가며 말렸던 장면이다. 아빠는 컵을 집어던졌고 엄마는 소리를 질렀던 것 같다. 나는 엄마한테 그러지 말라고 했다가 아빠한테 그러지 말라고 했다가 오가며 말렸는데 아무 소용이 없었다. 지금 떠오르는 느낌이 상상인지 실제인지 모르겠지만 뭘 해도 안 된다는 무력감과 절망감을 느꼈다.      


때때로 엄마는 체벌했고, 자주 화를 냈다. 조금 크고 나서는 때리지 않아서인지 맞은 기억은 희미한데 무섭게 화를 냈던 기억들은 남아 있다. 왜 혼이 나는지 이유를 몰라 어리둥절하던 그 마음이 아직도 생생하다. 머리를 묶어주다가, 산수 문제를 가르쳐주다가, 코푸는 방법을 가르쳐주다가 갑자기 화를 냈다.      


평범하게 불행했을 뿐인데



부모님은 자주 싸웠고, 집안의 공기는 무거웠다. 나는 언제 어떤 이유로 혼나게 될지 알 수 없어 늘 주눅 들어 있었다. 조마조마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가끔 생각한다. 나는 학대를 당한 걸까? 그땐 다들 그렇게 컸는데. 다들 그렇게 부부싸움을 하고 아이들은 그걸 지켜보고, 부모에게 맞기도 하고, 화풀이 대상도 되고 다 그랬던 것 같은데. 난 그저 평범하게 불행했을 뿐인데.    


영화 <세 자매> 속의 세 자매와 남동생은 아버지에게 맞으면서 컸다. 술만 마시면 엄마를 때리다가, 그다음에는 첫째 딸 희숙(김선영)과 막내아들 진섭을 때렸다. 둘째 미연(문소리)과 셋째 미옥(장윤주)은 맨발에 내복 바람으로 슈퍼에 달려가 어른들에게 신고해달라고 했지만 오히려 혼나기만 한다. ‘아버지가 전과자가 되면 좋겠냐’며 아버지한테 무조건 잘못했다고 빌라고, 너희가 중간에서 아버지를 말리지 못한 잘못이라고 말한다. 쭈쭈바를 얻어먹으면서 집에 돌아오니 멍투성이 희숙이 상처투성이인 벌거벗은 진섭을 껴안고 집 밖에 나와 있다.     

 

영화에서는 생략됐지만 아마도 이들은 이런 일을 여러번 반복했을 것이다. 맞고, 지켜보면서 평범하게 그렇게 컸고 어른이 된 지금 각자 다른 방식으로 불행하다. 세상에 주눅 들어 어떻게 사람과 관계를 맺어야 할지 몰라 힘들고(희숙), 남들에게 완벽해 보이고 싶어 아이를 닦달하는 자신이 힘들고(미연), 술 안 마시고 어떻게 사는지, 그리고 엄마는 어떻게 하는 건지 몰라 힘들고(미옥), 아직도 들끓는 아버지에 대한 분노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라 마음이 힘들다(진섭).


또라이라 불리는 미옥이 불쑥불쑥 어린 시절의 일에 대해 미연에게 물어볼 뿐, 세 자매는 어린 시절을 잊은 것처럼 산다. 하지만 이들의 어린 시절은 잊을 수 있을 만큼 가벼운 일이 아니다. 떠올리고 말하는 것조차 아파서 서로 피했을 뿐이다. 단지 희숙은 나뭇가지로 스스로에게 상처를 내야 마음이 편해지고, 미연은 베개를 반듯하게 정리한 후 얼굴을 파묻고 울고, 미옥은 술 마시고 소리 지르며 화를 낸다. 세자매는 상처를 말하지 못해 자기 자신을 아프게 하며 버틴다.

    

나는 마음이 힘들때 어떻게 하는지 돌아봤다. 심리학 책을 쌓아놓고 읽었다가, 상담을 받으러 다녔다가, 사주 공부를 했다가, 이제는 엄마가 등장하는 글을 쓰고 있다. 혹시나 엄마가 내 글을 볼까 봐 두려워하면서, 조회수가 올라가면 악몽을 꾸면서 엄마에 대한 글을 쓴다. 엄마가 글을 읽고 상처 받는 것도, 나쁜 딸이라고 남들이 욕하는 것도 모두 겁나지만 그래도 꾸역꾸역 쓴다. 마음속 원망을 극복하고 싶어서 계속 쓰고 있다. 쓰다 보면 언젠가는 구원을 얻을 수도 있을 거란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서.


사과하면 다 해결될까?


     

세자매 중 가장 아무렇지 않아 보였던 미연은 가족이 모두 모인 아버지 생일날 폭발한다.

“사과하세요. 목사님한테 말고 우리한테 사과하세요.”

<세자매>의 이승원 감독은 가족 관계에서의 진정한 사과는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부모가 자식에게 사과를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영화 속 세자매는 부모에게 사과를 받았을까? 사과를 받으면 마음의 상처가 다 치유될 수 있을까?  

    

엄마에 대한 원망으로 마음이 힘들어 개인 상담센터에 다닌 지 3개월쯤 됐을 때였다. 상담 선생님은 엄마에게 속마음을 터놓고, 사과를 해달라고 말하라고 권했다. 사과를 받으면 원망이 많이 사라질 거라고 했다. 엄마에 대한 마음을 솔직하게 말하는 것도, 사과해달라고 말하는 것도 힘든 일이었지만 한참을 망설이다 선생님의 권유대로 했다. 무섭고 힘들었지만 이것만 하고 나면 마음속 미움, 원망이 깨끗이 없어지고 엄마와의 관계도 다 좋아질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조심스럽게 말했고 엄마는 다 듣고 미안하다고 했다. 사는 게 힘들었고, 첫째라 아무것도 몰라서 때리고 화내면서 키웠다고 미안하다고 울었다. 난 뭐라고 했었던가. 사실 잘 기억이 안 난다. 내가 뭐라고 말을 꺼냈었는지, 미안하다는 말에 또 뭐라고 답했는지. 워낙에 긴장해서 그런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인 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상담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했고, 엄마는 고맙게도 사과해줬다. 우리는 갑자기 사이좋은 모녀가 됐을까? 나의 미움과 원망은 모두 사라졌을까? 안타깝게도 모두 아니다. 오랫동안 쌓인 감정이 사과 하나로 갑자기 없어지진 않았다. 사과를 하고 받은 후 우리 모녀는 며칠 동안 평소보다 더 어색한 분위기로 지내다가 다시 평소의 어색함으로 돌아왔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모든 것이 다 해결되는 만능키는 없다. 뭐든 다 낫게 해 준다는 만병통치약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일을 통해 엄마와의 관계는 내 평생의 숙제라는 걸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리고 상담은 더 나가지 않았다. 상담 선생님의 시도가 틀렸다거나 효과가 없어서가 아니라 엄마에 대한 내 감정은 하루 이틀에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걸 깨달아서였다.


완벽한 해피엔딩은 없다

     

영화의 세자매에게 해결된 일은 아무것도 없다. 희숙의 병은 치료가 될지 안될지도 아직 모르고, 미연의 집 나간 남편은 돌아올지 모르고, 미옥은 엄마 역할을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린 시절 학대로 인한 세 자매의 상처는 회복되지 않았고 평생 안고 살아야 할 것이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세 자매가 늘 피해왔던 아버지 이야기를 같이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안 그래도 머리 벗겨졌는데 흉 져서 어떡해?”라며 아버지에 대해 웃으면서 얘기할 상대가 생겼다는 거다. 상처가 어디에서 왔는지, 얼마나 아팠었는지, 지금은 어떤지를 말할 수 있게 됐으니 조금은 덜 아프게 되지 않을까. 이제는 적어도 스스로를 아프게 하는 일은 덜 하게 되지 않을까.


동화의 ‘그래서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와 같은 완벽한 해피엔딩은 없다. 어느 날 갑자기 상처가 치유되고, 관계가 회복되는 마법 같은 일은 영화 <세자매>에서도 현실에서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게 상처 받고, 위로 받고, 상처 주고, 위로 주고 그렇게 살았답니다.’가 현실이다. 세자매도 그럴 것이다. 그들은 아파하고, 아픔을 말하고, 아픔을 주기도 하고 그렇게 살았을 것이다.     


영화 <세자매>는 특별하다. 경찰에 신고할 수는 없을 정도로 평범한 폭력을 겪으며 자란 자매들의 이야기라서 그렇다. 이들이 상처를 극복하려 애쓰면서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에 그렇다. 옛날에 안 맞고 큰 사람이 어디 있냐고, 왜 유난이냐고 말하지 않는 영화라서 특별하다. 특별한 일을 계기로 상처를 치유하는 영화가 아니라서 특별하다. 평범하게 불행한 사람이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고 계속 애쓰면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기에 특별하다.


다들 가족과 행복한데 나만 힘든 것 같을 때, 이 나이까지 엄마와의 관계를 고민하는 내가 한심하게 느껴질 때,  문득문득 이 영화가 떠오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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