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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델몬키 Feb 05. 2024

텔레파시

잘했고, 잘하고 있고, 계속 잘 할거야

가든이는 친한 친구의 소개로 알게 되었다. 20 중반의 우리는 부푼 꿈을 안고 서울행을 택했다는 공통점으로 서슴없이 친해졌다. 가족이 없는 서울  위에 몸을 누일 집을 구하고, 공과금을 내고, 주말엔 젊음까지 즐기려면 아주 작은 월급을  쪼개야 했다.  어떻게든 되긴 됐다.

그 즈음 나는 삼거리 포차 앞에서 팔던 트럭 떡볶이가 너무 먹고 싶은데, 돈을 쓰면 안된다는 생각에 그 앞을 뛰어서 지났다. 그 냄새를 맡고 망설이지 않을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냥 사 먹을 수도 있었지만 그때는 다양한 방법으로 푼돈을 아끼는 데 집착했다. 그렇게 월, 화, 수, 목을 내리뛰다가 금요일에는 떡볶이 값과 나의 행복의 가치를 저울에 올려봤다. 결과는 행복 승. 나는 비장한 마음으로 떡볶이와 순대, 오뎅까지 시켜 만찬을 즐겼다. 그렇게 먹은 떡볶이는 행복한 맛 대신 분한 맛이 나서 자꾸 목이 메었다.

그런 일들을 포함해서 늘 결핍과 외로움을 동반하는 타지 생활에 마음이 울적하던 어느 날이었다. 가든이에게 그런 마음을 슬쩍 비추자 그녀 왈. "야, 난 커피값 아끼려고 집에 뛰어가서 커피 티백 먹는다. 것도 먹고 바로 안 버리지. 한 번 더 우려도 되거던."라며 얼마 전엔 돈을 아끼겠단 일념으로 감자 한 봉지를 사와서 모든 방법을 총 동원해 먹어치웠노라고 단숨에 이야기했다. 그 기세가 대단해서 방금 내가 뭔가 대단한 걸 목격한 것 같았다. "자, 다음 가난 들어와봐!" 이런 느낌으로 세상의 시련 테스트에 쉽게 당하지 않겠다는 당찬 친구의 기운이 나에게도 전해졌다.

시련을 에피소드로 웃어 넘기고 고난을 당당하게 대하는 주도적인 태도. 그로부터 몇 년간 이어지는 뭔가 안 풀리던 시절을 가든이에게 배운 이 관점으로 이겨냈다.  우리집에도 재탕을 기다리는 쟈뎅 헤이즐넛 커피 티백이 있었다(그땐 스타벅스가 사치의 표본과도 같았고 저가의 커피 매장이 전무했음, 이라고 쓰니 내가 엄청 옛사람 같네). 간혹 티백에서 흘러나온 커피 얼룩을 닦을 때나 딱딱해진 티백을 발견하고 문득 서글픔이 찾아오려 할 때 나는 가든이와 상상의 대화를 했다. "야, 한 번 우리고 버리는 인간이랑은 친구하지 마라." 아마 이런 식으로 그녀는 우리의 궁핍함에 당당한 날개를 달아주었을 것이다.

거의 3년만에 가든이를 만난 자리에서 나는 이 에피소드를 당사자에게 전해주었다. 이런 식으로 너는 내 삶이 틀리지 않았음을 자꾸 일깨워 주어 힘이 되었다고 말이다. 가든이는 빵실빵실해진 얼굴로 그랬냐고, 그때 온갖 인간들한테 뜯기고 뒤통수 맞느라 우리 참 고생했다고 웃었다. 웃음으로 승화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시간들이 있었다. 사건사고와 배신이 끊이지 않던 요란하고 불안한 시절이었다. 이제는 한결 편한 표정이 되어 그때를 웃으며 곱씹었다.

에피소드는 얼마든지 있었기에 한참을 떠들고 마셔도 시간이 모자랐다. 결국 우리는 따뜻한 가족의 품으로 기어서 돌아갔다. 거의 실려가던 택시 안에서 나는 '지금은 외롭고 불안하겠지만 안정적인 순간이 꼭 올 거'라고, 그때의 우리에게 텔레파시를 전송했다. 오늘은 감자를 물결로 썰어야 하나 고민하는 가든이와 떡볶이 트럭 앞을 뛰어서 지나는 나에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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