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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델몬키 Feb 07. 2024

시작하는 연인들 2부      

오늘부터 1일

https://brunch.co.kr/@goodlife371/26

이어서 계속.


새로운 일은 계획할 때가 제일 즐겁더라.

"그냥 집에 있고 싶지 않아?". "소름이다. 나도 그 생각했어." 이 대화를 작년 이탈리아 여행 전에도 한 것 같은데, 오늘도 한다. 누구 하나가 그냥 쉬자고 해주길 바라면서도, 사놓은 게 있으니 꾸역꾸역 차에 오른다. 가기 싫어 죽겠는 내 마음이 천근만근이어서 물에나 뜰까 싶다.


일단 등록부터 해야 했다. 우리는 8시 수업을 들으려 하는데, 7시 45분까지도 카운터에 붙잡혀 있어 엉덩이가 들썩였다. 서두르다 벌거벗은 채로 수영장에 입장하면 어떡하지? 수영복은 잘 올라갈까? 수모는 또 어떻고!!! 그러나 우려와 달리 나는 정확히 55분에 나는 수영장에 몸을 담갔다. 갓 잡아올린 갈치처럼 힘차게 파닥이며 샤워를 마치고 후다닥 뛰어가니 그 시간이었다.


오우, 물이 참 따숩다. 오기 싫었던 이유 중 하나가 추위였는데, 온수 하나로 마음이 싹 풀렸다. 할 만 하네, 나는 물이 반가운 아이처럼 콩콩콩 제자리 뛰기를 하며 실내를 둘러봤다. 밖에서 구경했을 때 실내가 꽤 칙칙해보여 '유리창 청소를 좀 해야겠네' 싶었는데 그냥 실내가 어둡고 칙칙한 거였다. 어두운 실내에 천장은 낮고 사람은 많아서 약간 동네 목욕탕 같은 느낌도 들었다. 위화감 따윈 전혀 들지 않았다. 너도 오고~ 너도 오시고~ 이런 느낌이었다.


초급반이라 다들 @@ 이런 느낌으로 멀뚱멀뚱 서있는 가운데 터줏대감처럼 약간 오바하며 대화하는 아저씨가 있었다. 걸어오는 사람들에게 "아잇! 누구세요??? 한참을 안 보이더니???" 라며 수영장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다. 저 사람은 피해야지, 라고 남편에게 주의를 주려는데 그 분이 갑자기 "자, 준비운동~"이라며 선생님으로 변신했다. 아까 잠깐 인사만 했던 연세 지긋한 왕언니는 선생님 앞에 자리잡고 박력있는 겨드랑이 털을 내보이며 몸을 풀었다. 요지경이군, 나도 지지 않아! 나는 힘차게 물 표면을 내리쳤다.


나와 남편은 수업 중간에 들어온 셈이고, 초급반 사람들의 실력도 왕초보, 초보, 살짝 초보로 다 달랐다. 선생님은 그 미세한 초짜의 퀄리티를 알아챘다. 일단 10명이 넘는 어리버리한 사람들을 한 명 한 명 간격을 두고 출발시켰다. 일단 해보라고. 그러자 터널 진입 전 구간처럼 중간 중간 정체가 생겼다. 누구는 로켓처럼 돌진하고 누구는 물을 먹고 서 있고, 누구는 뒷사람에게 똥침을 찔렸다.


어찌어찌 돌아온 우리들을, 선생님은 카드를 섞듯 차례를 바꾸더니 마치 벤치에서 주전으로 나가는 선수에게 당부하듯 한 명 한 명에게 가르침을 선사했다. 어리버리한 학생들의 눈빛이 열정으로 변하고, 한 명씩 물살을 가르며 힘차게 출발했다.


"두 분, 지금 고개를 들고 한 단 말이에요. 그러면 어떻게 되냐면 봐봐요? (시범) 허리, 꺽이죠? 속도도 안 난단 말이야~ 자, 고개는 항상 어떻게? (시범) 이렇게 해야 쭉 나가요. 그리고 남자분, 지금 호흡을 너무 다 뱉고 있어. 그러면 올라올 때 어떻게 돼? (시범) 이러면 나도 가라앉아. 내 몸에 항상 30 퍼센트는 숨은 갖고 있으세요? 고개랑 호흡 가지고 다시 해봅시다. 출발!"


내가 좋아하는 가르침의 방식이다. 정답과 오답을 비교 분석해주는 거.  나는 착한 어린이가 되어 가르침대로 열심히 헤엄쳐 보았다. 언뜻 장난만 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선생님 눈은 옆에도 달려서 출발선으로 돌아오면 마치 나만 보고 있었다는 듯이 다음 과정을 알려주었다. 그게 너무 정확하고 신통방통해서 나는 선생님이 너무 너무 마음에 들어버렸다. 선생님의 비호를 받으며 왕언니도 신나게 발을 차고 있었다. 어두컴컴한 수영장에서 스포츠가 꽃 피는 중이었다.


50분이 순식간에 흘러갔다. 바이킹이었더라면 "한 번 더! 한 번 더!" 외치고 싶은 멋진 시간이었다. 나와 남편은 모범생이 되기 위해 자유수영 레인에서 오늘 배운 것을 복습했다. 잘 안되는 데도 웃음이 났다. 젖은 머리를 한 채 남편과 다시 집으로 가는 길. 오기를 참 잘했다고, 선생님이 너무 좋다고 연신 떠들었다. 머리를 꽉 채우고 있던 생각들이 자리를 비켰고, 몸이 알아서 살아나서 배고프다고 떠들기 시작했다. 기분 좋은 신호였다.


나는 칙칙한 수영장과 <인어공주>의 마녀를 닮은 우리 선생님(남자)이 벌써 그립다. 수영을 시작해서 정말이지 좋다. 사주에도, 건강에도 꼭 필요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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