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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향기 Aug 28. 2022

집안일을 좋아하세요?

나는 청소를 자주 한다. 청소를 잘하거나 좋아한다는 말로 오해하지 말았으면 한다.

내가 청소를 자주 하는 이유는 습관화되었기 때문이다. 퇴근 후에 짬짬이, 일요일 오전 등 대부분 정해진 시간에 청소를 한다. 내가 이런 습관을 갖게 된 것은 집안일 담당의 ‘역할’ 때문이다. 곰곰이 돌이켜 보면 집안일 담당은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딱히 자발적인 것도 아니었다. 그냥 자연스럽게 나에게 주어졌다.   

  

 나는 삼 남매 중 맏이. 장녀다. ‘장녀는 살림 밑천’이라는 말을 들으며 어렸을 적부터 소소한 집안일은 당연히 해야 하는 줄로 알았다. 빨래, 설거지, 청소, 요리, 동생 돌보기 등 이런 일들을 국민학교 4학년 때부터 했다. 7살 차이가 나는 남동생을 정말 많이 돌봐 주었다. 남동생이 태어나 기저귀 가는 일부터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는 둘이 함께 자취를 했으므로 엄마 못지않게 챙기고 신경 써 주었다.


여중과 여고를 나온 나는 기술 과목을 배운 적이 없다. ‘가정’ 과목을 배웠는데 중학교 때에는 주요 과목에 해당했다. 바느질을 배우고 식품의 구성요소 및 요리법을 배웠고, 육아와 출산에 대해 배웠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바느질을 해야 하는 일이 생기면 학교에서 배운 대로 바느질을 했고, 식사 때가 되면 요리를 해 끼니를 챙겼다. 연탄불에 생선을 굽기도 했고, 곤로를 사용해서 계란을 부쳤고, 가스레인지로 김치찌개를 끓이는 등 도구는 바뀌어도 나의 요리 생활은 계속되고 있다.  

    

  고등학교 교련 시간에 ‘붕대’ 감기를 배웠다. 전쟁 시를 대비해 응급처치법과 신체별 붕대 감기를 열심히 익히고 실습 시험을 치렀다. 또 1급에서 4급까지의 전염병을 배우고 외워 전파력과 격리 유무에 대해 알고 위생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위생과 안전에 관해서, 소소한 치료는 내가 배웠던 대로 응급처치를 했다.

     

 결혼을 하면서 집안일에 대한 나의 역할은 더욱더 공고해졌다. 시어머님은 좋으신 분이지만 남녀의 역할을 구분하셨다. 바깥일은 남자가 집안일은 여자가 했으면 하는 마음이 행동으로 드러났다. 남편이 설거지를 할라치면 슬그머니 밀어내고 본인이 하셨다. 나는 1930년대 태어난 시어머니의 사고를 변화시키는 것은 전쟁을 선포하는 것과 마찬가지라 생각했다. 그래서 명절 때 잠깐 뵙고 오는 것이니 맞춰 주는 편이 더 낫다고 여겼다.     

  아이를 낳고 1년 6개월 육아 휴직을 했기에 나는 더욱 열심히 집안일을 했다. 무엇이든 물고 빨고 하는 아이를 위해 물건들을 삶고 소독하고, 닦았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집안일은 내가, 그 외의 일은 남편이 해야 되는 양 되어버렸다. 복직을 앞두고 나는 남편이 세탁기 돌리는 방법을 모른다는 걸 알았다. 남편이 집안일에 끼어들 새도 없이 그리고 그조차도 알지 못한 채 나는 집안일이 내 몫 인양 무의식적으로 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출근을 해야 했으므로 그때서야 남편과 집안일에 대한 역할 분담을 했다. 하지만, 출장이 잦고 출퇴근 시간이 매우 긴 남편은 마음만큼 도와주지 못한다. 설거지 정도로 생색내기를 할 뿐이다.


   후배 교사의 남편이 육아 휴직을 했다. 부부끼리 나눠서 휴직을 쓰기로 한 모양이다.

  육아 휴직 아빠들 모임이 있어 남편이 참여했는데 모든 아빠가 유모차에 아이들을 태우고 왔다고 한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지 않는 날 아빠들이 종종 만나 정보도 나누고 시간을 보내면서 차를 마시고 수다를 떨고 온다고 한다. 그래야 그나마 스트레스가 풀린다고 말했단다. 그래서 후배 교사는 모임 나갈 때 기죽지 말라고 좋은 옷을 한 벌 사주었다고 자랑했다. 아이들을 전적으로 남편이 감당하니 본인은 직장에서 맘 편히 일할 수 있다고 했다. 퇴근 후에도 아이가 졸리거나 배가 고프면 엄마가 아니라 아빠에게 가서 칭얼거리며 보챈다고 한다. 아무래도 오랜 시간 함께 있다 보니 아이들도 아빠가 더 편한 모양이다. 주말에는 남편이 “야~! 엄마한테 가서 놀아달라고 해”라고 말한다고 해서 함께 모인 사람들이 모두 까르르 웃었다. 더 나아가 후배 남편이 어느 날은 김치를 담갔다고 해 놀랐다. 유튜브를 보고 만들기 시작하더니 요즘에는 막걸리 주조까지 하고 있단다.

후배 교사의 이야기는 나에게 상당히 생소하고 신선한 느낌을 주었다. 성 역할에 따른 일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생생하게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 아! 나는 왜 이리 옛사람처럼 살고 있는가’      


 최근 들어 집안일을 하는 것이 버거웠다. 후배 교사의 이야기도 들은 바 있고 해서 남편과 아이들과 상의해 요일을 정하고 집안일 분담을 하기로 했다. 가족 모두 그간 나의 노력과 희생에 감사하며 그러겠노라 했다. 하지만 귀가 시간대가 다르고 저녁 식사 시간대가 다른 가족들은 밥을 먹지 않거나 인스턴트로 때우기 십상이며, 빨래는 산더미가 되어 못 견딜 때까지 쌓이기 시작했다. 청소 또한 그러했다.

  자기가 먹은 것 치우고 머문 자리만이라도 바로 하기!

결국은 그 정도로 타협을 하고 조금은 가벼워진 집안일을 다시 담당한다.  

    

 “딸아! 너는 엄마처럼 집안일하면서 살지 마라.”

 “응! 엄마 그래서 나도 남동생처럼 집안일 안 하잖아. 걱정 마. 실천하고 있어!”      


“아들아! 너 집안일 열심히 도와주고 주도적으로 해야 돼! ”

“응! 엄마! 돈 많이 벌어서 가사도우미 두고 살 거야. 아니면 식기세척기, 최신식 세탁기, 로봇 청소기 이런 거 사면돼. 돈이면 해결되는데 굳이 지금 해야 돼?”  

          

  양성평등의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도 내 삶의 영역은 그렇지 못하다. 나의 집안일에 대한 수고가 가족들을 위한 것이라고 정해진 뻔한 변명을 하면서 벗어나지 못한다. 무슨 일이든 변화를 위해서는 단호함과 결단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걸 견디지 못해 번번이 타협하면서 남편과 아이들 탓을 더 많이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사회의 의식구조를 바꾸는 것까지는 너무 거대 담론이고, 내 삶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해야 하는데 실상은 바꾸지 못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요즘 직장의 업무는 성의 구분 없이 진행되고 있는데 집안일은 여전하니 내가 감당해야 할 것들이 점점 무게를 더해하고 있는 느낌이다.


 이번 생애에선 집안일을 벗어나긴 어려울 것 같다. 매직 블록 스펀지를 들고 묵을 때를 벗기며 상투적인 말을 한다. “아이고 내 팔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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