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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향기 Aug 12. 2022

폭우가 쏟아지던 날.

  어렸을 적에 비가 많이 오면 우리 집 여기저기에 빗물이 떨어졌다. 당시 우리 집은 가파른 오르막길에 지어졌는데 기울어진 지대에 돌로 축대를 쌓아 편평하게 한 후 마당과 방을 만들었다. 그래서 축대가 무너지지 않도록 매년 균열이 난 부분에 엄마는 시멘트를 발랐다.

  지붕은 슬레이트로 덮었는데, 지금이야 석면이 나온다 하여 싫어하지만 당시에는 보수가 간편해서 우리 동네는 거의 사용했다. 슬레이트를 여러 겹 겹쳐서 지붕을 만들었으므로 부실하기 그지없었다. 오래된 목조 골격에 무거운 지붕을 쌓을 수 없어 그리 했으리라 짐작이 가는데 지붕과 천장 사이에는 공간이 있어서 어떤 때는 ‘사그락 사그락’ 서생원이 머무는 소리가 들렸다.

  폭우나 태풍이 오면 엄마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축대며 지붕이 위험해 비상사태 시 대피해야 하므로 조마조마한 초조함이 어린 내게도 느껴졌다.      


 어느 날 엄마는 천막 두루마리를 사 왔다. 방수가 되는 것이라 지붕 위에 걸쳐 두고자 한 것이다. 그리고 모래주머니를 연결해 양쪽으로 늘어놓아 천이 날아가지 못하도록 고정해두었다. 한동안 장맛비에 집안으로 빗물이 떨어지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태풍이 왔을 때 혹여나 걸쳐 둔 모래주머니와 천막이 날아갈까 하여 늘 살펴야 했다. 그래서 엄마는 밤새 라디오를 방송을 들으며 잠을 설쳤다.   

   

  안전을 걱정하는 엄마와 달리 나는 폭우와 태풍이 오면 TV가 잘 나오지 않는 것이 더 큰 문제거리였다. TV 안테나가 비와 바람에 흔들려 화면이 ‘지지직’ 거렸기 때문이다. 위험하니 함부로 안테나를 만지면 안 된다고 엄마에게 경고를 들었지만 외화시리즈 ‘브이(v)’나 ‘전격 제트 작전’을 꼭 봐야 하는 나였기에 몰래 비옷을 입고 얼른 지붕 위를 올라가 안테나를 만지작거리며 큰 소리로 “화면 잘 나와? 어때?”를 외치며 화면 조정을 담당했다.


 이렇듯 날씨가 심하게 궂은날에는 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세탁기도 없어서 빨래하기도 힘들었는데 새끼들 옷을 깨끗이 빨아 수건으로 물기를 걷어내고 다리미로 꾹꾹 눌러 말려주던 엄마의 모습.

 습기가 많아서 꿉꿉한 데 천장에서 떨어지는 빗물을 받느라 양동이를 이리저리 옮기고 젖은 바닥은 깨끗한 걸레로 닦고 마른걸레로 다시 훔쳐내며 여동생과 장난쳤던 기억.

 실외 화장실 사용을 못하니 요강을 가져다 놓고 사용한 후 다음 날 유한락스로 소독하는데 윗집 오빠가 보이면 얼른 숨겼던 기억.

     

 참 먼 이야기 같다.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지는 모습을 아파트 베란다에서 내려다보며 잊었던 기억을 떠올려본다.      


  내가 물난리를 직접 겪었던 것은 정작 집이 아니라 고등학교에서였다. 당시 기록적인 폭우로 교실에 물이 차올랐다. 비가 그치자 우리는 교실에 있는 바가지와 대걸레, 쓰레받기, 물동이 등으로 물을 밖으로 펐다. 나는 집에서 엄마가 하시듯이 걸레를 들고 여기저기 흙탕물로 더러워진 곳을 닦아 냈다.  더러워진 걸레를 맨 손으로 빨고 있는데 세숫대야의 구정물을 본 반장이 소리를 질렀다.

 “야! 이 더러운 물에 어떻게 손을 넣니?”

 하얀 피부를 가진, 남포동 건물주 딸답게 반장은 이 상황에 혼란을 겪다가 그나마 쉬워 보이는 걸레질을 하려고 나에게 다가왔다가 기염을 토한 것이다. 나는 얼굴이 빨개졌다. 얼른 자리를 떠서 세숫대야의 구정물을 화장실에 버리고 깨끗한 물을 받아 교실로 왔다. 걸레 하나를 가지고 화장실을 왔다 갔다 하기에는 시간이 걸리므로 깨끗한 물을 옆에다 두고 걸레를 빨았다 닦았다 하면 빠르기 때문이다. 한데 반장은 계속 내 곁에서 세숫대야의 맑았던 물이 어떻게 구정물이 되는지 처음 보는 사람처럼 지켜보았다. 실은 그 구정물에 손을 넣는 내가 더 신기했던 모양이다.


 이질감.

 나는 이 급박감을 도우려 애쓰고 있는데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녀가 묘하게 기분 나쁘면서도, 또 이런 일에 익숙한 내 모습이 빈곤함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묘하게 부끄럽고 창피했다.

그날의 감정이 30년이 지난 지금에도 기억 속에 또렷이 남아 있다.

   

서울시, 물난리를 겪으며 주거목적으로는 지하와 반지하를 불허!

국회의원, 물난리 수해 현장에서 망언을 해 물의!

거물 정치인이 수해복구 중 “육체노동 힐링된다.”라는 발언의 사실 여부 설전

물난리 속 참사 현장 대통령 카드 뉴스 논란

         

 이질감.

 타인의 관점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 사유의 불능.

 타인의 고통을 인지할 수 없는 도덕성의 결여.     

 도덕성의 결여와 무사유는 악을 넘어선다는 한나 아렌트의 말이 머릿속에 빙빙 돈다.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던 반장은 교수가 되었다. 우리는 가끔 연락하는 사이다.  

내가 그때 느꼈던 서운함과 감정을 결혼을 하고 아파트를 장만했을 때 비로소 털어놓았다.  


뉴스를 보면서 반장에게 전화를 했다.

"너 정치인이 되지 않아서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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