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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향기 Jan 26. 2023

신(神)의 숙제

선생님어떻게 해야 친구를 사귈 수 있어요?”     


점심시간. 나는 운동장을 돌고 있다. 등나무 아래 의자에 잠시 앉아 있다. 그곳에 민정이가 먼저와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 너의 이야기 들었어.”

 민정이의 말에 자존심이 상했다. 민정이는 우리 반 아이들이 매우 싫어하는 아이였다. 여기저기 말을 옮기며 분란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결국은 모든 무리에서 ‘팽’당했다. 그런 민정이가 나를 같은 부류로 여기는 것 같아 몹시 언짢다.      


일 년 마무리를 며칠 앞두고 한 여학생이 다가와 진지하게 물었다. 아이의 질문에 나는 운동장을 돌고 있는 ‘나’를 만난다.      


아이들이 저를 미워해요여자애들은 피하고남자애들은 놀려요.”     


 사춘기에 혼자가 된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정글에 홀로 남겨진 어린 새끼같이 누구에게나 먹잇감, 놀잇감이 되기 쉽다. 어떤 곳에는 못되게 굴며 비열하게 약자를 괴롭히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들의 비뚤어진 감정을 쏟아내며, 누군가를 밟으며 존재를 과시하는 무리들 말이다. 다행히 우리 반에는 그리 심한 아이들은 없다. 여학교라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측은하게 동정하는 친구들이 있다. 그런 시선도 내겐 상처다. 본인들의 불편한 감정을 어쩌지 못해 약자를 위해 정의로운 척하는 게 꼴사납다. 자기들도 나를 미워하고 있기는 매 한가지면서.    


학교 다니는 게 힘들어요제가 너무 싫어요.”


 전학을 가고 싶다고 엄마에게 말했다. 그러나 사실상 불가능함을 안다. 이사를 가는 것도 아니고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것도 아니다. 무슨 일이 있냐는 물음에 여기 애들이 국민학교때와 다르게 못된 것 같아서 힘들다고 에둘러 말한다. 엄마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살다 보면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다 있고 맘에 꼭 맞는 사람 찾기 힘들다는 말만 반복했다.     

 새까만 얼굴, 고르지 못한 치열, 뾰족한 턱, 작은 눈, 뚱뚱한 엉덩이. 

못생긴 내 외모가 싫다. 내가 더 예뻤다면 미움받지 않았을 것이다.  연이는 공부도 지지리 못하는데 하얀 피부에 또렷한 이목구비로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다. 남학생들에게 더 인기가 많다는 소문도 돈다. 욕도 잘하고 새침 떼기에 복장도 불량한데, 거기에 비하면 나는 모범적이고 바른말만 하는데 친구들이 싫어하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내 탓이 아닌지 모르겠다. 부모님의 안 좋은 유전자가 나한테 몰빵 된 것이 화근이 아닐까?   

   

민지랑 같이 다녔는데 언젠가부터 저를 피해요완전 혼자예요.”     


   민정이는 어느 순간 나에게 찰싹 붙어있다. 나는 민정이와 함께 다니고 싶지 않았다. 같은 부류로 취급받기가 싫었다. 나는 꿋꿋하게 혼자 다니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민정이에게 매몰 차게 군다.

 “야! 나랑 친한 척하지 마! 너 싫어”

  따돌림당하는 아이들은 서로를 싫어한다. 같이 있으면 더 손가락질받고 찐따 무리라는 말이 더 듣기 싫기 때문이다. 선생들은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늘 혼자 다니는 아이들끼리 묶어주려 한다. 소풍 갈 때도, 수련회 갈 때도, 조별 활동할 때도...     

 민정이는 나와 싸운 무리 틈에 끼어 내 욕을 하고 다녔다. 불쌍해서 같이 있어 주려 했더니 여전히 잘난 척하며 함부로 굴더라며 몇 명을 붙잡고 신이 나서 과장된 액션까지 취한다. 모른 척하지만 내 귀는 이미 열려있다. 노트에 욕을 썼다. 욕을 크게 썼다. 진하게 썼다.     

 

“네가 잘하는 거 하렴그러면서 때를 기다려 보자!”     


 나는 열심히 시험공부를 했다. 우리 학교는 모든 과목 90점 이상을 받으면 우등상을 주었다. 그리고 전교 3등까지 아침 조회 단상에 올라가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시상을 했다.

‘그래! 보여주겠어. 함부로 하지 못하도록!’

시험 전날까지 밤을 새우며 공부를 했다. 엉덩이에 땀띠가 나고 그것이 터져 피가 나서 연고를 바르면서도 소화기관과 구조를, 영어 6 과를 외우며 나에게 모욕감을 준 아이들에게 잘난 척을 보여주리라.

 나는 우등상을 받았지만 반에서 2등, 아쉽게도 전교 10등을 했다. 게시판에 적힌 반 등수와 전교 등수를 보고 

 “야! 외톨이가 공부는 꽤 하네?”

 부반장 수민이가 먼저 시비를 거는 것 같았다. 

“야! 부반장 주제에 외톨이보다 공부를 못하냐?” 

 성적을 등에 업고 한 방을 먹였다. 

 중 1 때 나는 친구를 사귀지 않기로 다짐했다. 그리고 나를 건드리기라도 하면 으르렁할 만반의 태세를 갖추며 지냈다. 민정이와 수민이를 비롯하여 아이들은 그런 나를 더욱 미워했다.      

  30년도 훨씬 지난 내 이야기가 아이의 질문에 또렷이 떠올랐다. 그때의 감정, 사건, 인물, 운동장, 학교 건물, 땀띠의 쓰라림. 

 미움을 받는다는 것은 정말로 아프다. 많은 친구들의 따가운 시선이 비수처럼 마음에 와닿을 때 소름 끼침은 아직도 나를 위축시킨다.      

  질문을 한 여학생을 보며 어떻게 위로를 해야 할지 몰랐다. 나도 똑같이 중1 여학생이 되어 버렸다. 교실에서 꼿꼿하던 아이가 내 앞에서 눈시울이 한껏 붉어진 모습을 보이니 당황스러웠다. 


  선생이 되고 보니 친구를 미워하는 마음, 친구 때문에 속상한 마음을 양쪽 다 이해가 된다. 아이들은 감정, 관계 등 배우며 만드는 시기니 크고 작은 갈등은 당연하다. 

 아이들이 ‘관계’를 만들어 가는 과정은 줄다리기와 같다. 자존감을 지키며 어느 한쪽으로 쏠리지 않게 서로가 힘을 조절하면서 때로는 팽팽하게, 때로는 느슨하게 해야 동등하게 지낼 수 있다. 그런데 아이는 강약 조절을 잘 못하고 있다. 아이들이 일방적으로 자기를 미워한다고 생각하면 힘들 텐데...


 헉! 

어쩌면 나는 내가 기억하고 싶은 대로만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 줄을 슬그머니 잡았던 민정이, 한 방을 먹이려던 것이 아닌 거친 칭찬의 말을 한 것인지도 모를 수민이. 


나를 미워하던 아이들은 다수가 아닌 소수였을 것이다. 중1 아이들은 과장하며 부풀리는 경향이 있으니까.  오히려 다수는 내가 싸운 지도 몰랐거나 별로 신경 쓰지 않으며 무관심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우리 반 모두가 나를 미워한다고 생각하고 모조리 적대심을 내뿜고 지냈는데...     


아이의 얼굴을 한 ‘신’이 나에게 메시지를 보내며 숙제를 냈다. 

이제 나의 ‘미움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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