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과민한 대장을 지니고 있다. 내가 알기론 할아버지, 아버지도 그랬다. 두 분 다 자주 후다닥 집으로 들어오자마자 화장실을 쏜살같이 가는 걸 여러 번 보았다.
멀리 시골에서 우리 집으로 가끔 오셨던 할아버지는 190cm의 장신이었다. 덩치가 워낙 좋아 누가 봐도 주눅이 들 정도였는데 그런 할아버지가 맥없이 주저앉을 때가 과민성 대장염으로 인해 창피를 당할 때였다. 장시간 버스를 타고 비포장 도로를 거치며 좌석에 굽히며 와야 했으므로 그 불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술을 좋아했다. 정신이 혼미할 때까지 술 마시기를 좋아했는데 아버지의 대장은 그걸 잘 견디지 못했다. 술을 마시고 온 다음 날부터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며 독을 다 쏟아내야 했다.
그런 유전을 너무나도 잘 이어받아 나 또한 대장이 매우 과민하다. 신경과 감정이 뇌와 심장뿐만 아니라 대장에도 분포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감정 상태에 따라 내 장은 엄청나게 반응하며 존재감을 과시한다.
대학생 때 나는 활발한 대장 활동 때문에 여러 번 창피한 상황에 놓였다. ‘꾸르륵’ 물이 내려가는 소리 때문에 수업을 받다가 얼굴이 붉어지기도 하고, 신입생을 위한 행사나 모임 때 화장실을 오가느라 집중하지도 못했다. 그런데 정기 검진을 받아봐도 크게 병이 있는 것은 아니어서 그냥 익숙해져야 했다. 나이가 드니 불편함은 있지만 받아들이며 조절하려고 한다. 청춘 때와 같이 민망하고 창피한 건 여전하지만 사람 사는 게 다 비슷하려니 싶어 순응하는 중이다.
그런데 요즘 또 다른 옵션이 추가된 나의 장과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작년부터 배가 더부룩하고 가스가 자주 찼다. 그리곤 나도 모르게 방귀를 뀐다. 아니 정확히는 방귀가 샌다.
걸어가다가도, 앉았다가 일어설 때, 자고 있을 때 사실 방심하면 방귀 대장처럼 방귀를 뀐다. 창피한데 사람이 있나 없나를 살펴보며 아닌 척, 혹은 모른 척하며 시원함을 만끽하기도 한다.
며칠 전 필라테스를 하러 가다 배가 꿀렁꿀렁하는 느낌이 들었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없길래 힘을 줬지만 방귀가 나오지 않아 헛배인가 싶어 안심했다. 그러나 한참 힘든 동작을 힘주어 따라 하며 낑낑거리자 순식간에 “뿌웅” 큰 소리가 나버렸다. 부끄러움이 많은 나는 속으로는 무척이나 당황했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계속 운동을 따라 했다. 여기저기 피식 웃는 소리가 들리긴 해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 하며 뻔뻔하게 운동이 끝날 때까지 모르쇠로 일관했다.
예전 주말 드라마에서 황혼 로맨스를 보여주던 두 노인이 서로를 마주 보며 방귀를 뿡뿡 뀌면서 킥킥 웃고 이제부터 편하게 ‘트자!’ 고 했던 장면이 떠올랐다. 뭐 저런 장면을 보여주나 싶었는데 요즘은 그 마음이 이해된다.
집에서는 마음이 편하니 더 자주 방귀를 뀐다. 의도하지 않지만 너무 자연스럽다. 남편 앞에서 민망하여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지만 자주 들킨다. 사실 남편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내가 그의 코골이를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그는 나와는 달리 튼튼한 장을 가지고 있다. 어떤 음식을 먹어도 무던하다.
그런데 한 가지 흠이 있다면 코를 너무 많이 곤다. 젊은 시절부터 그러했는데 40대 이후 비염이 심해지더니 갈수록 더 소리가 커졌다. 남편의 모든 기능들이 떨어지고 있는데 유독 코골이만은 예외다.
나는 남편의 일상을 코골이로 짐작할 수 있다. 남편이 피곤한 날에는 코골이 때문에 나는 잠을 설친다. 술을 마시고 온 날의 코골이는 리듬과 호흡이 짧고 가쁘다. 더불어 불규칙한 호흡은 옆사람을 긴장하게 만든다. 잠시 소리가 멈추면 쪽잠을 자던 내가 놀라 남편을 흔들기도 했다. 꽃가루가 날리는 봄이 되거나, 환절기 찬바람이 불거나, 미세먼지가 심한 날에는 어김없이 남편의 코는 반응을 한다.
어느 날 건넌방에 자던, 비염과 과민성 대장염을 동시에 지닌 딸이 아침에 아빠를 보며 한마디 한다.
“아빠 콧속에 자아가 사는 거 같아! 밤새 자기가 힘들었다고 우리한테 엄청 말했어!”
우리 부부는 장(腸)과 코로 대화를 한다. 서로 편하게 트며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로맨스를 만들지 않지만 서로의 몸을 걱정한다.
내가 말했잖아.
정말, 정말, 사랑하는, 사랑하는,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들은,
너, 나 사랑해?
묻질 않아
그냥, 그래,
그냥 살어
그냥 서로를 사는 게야
말하지 않고, 확인하려 하지 않고,
그냥 그대 눈에 낀 눈꼽을 훔치거나
그대 옷깃의 솔밥이 뜯어주고 싶게 유난히 커보이는 게야
[늙어가는아내에게 中]- 황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