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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낀느 Mar 12. 2024

참으로 이상한 여행

 

후쿠오카는 대도시로 변했다. 30년 전 친구들과 부산에서 고속선 비틀 타고 처음 왔을 때도, 그 후 비행기 타고 왔을 때도 지방 소도시 느낌이었는데 완전히 달라졌다. 초라하던 국제공항은 호텔 로비처럼 바뀌었고, 시내에는 높은 건물도 많이 들어섰고, 카페며 상가, 호텔들이 여행자의 마음을 빼앗기 충분했다. 

놀랐다. 약간 촌스럽지만 다정했던 친구가 오래간만에 만나니 완전히 세련된 시티걸이 된 느낌이다.


하카타역이 원래 이렇게 넓었던가 싶을 정도로 상가도 많아지고 넓어져 동서로 나뉜 출구를 찾느라 헤매기도 했다. 이제 좀 입구가 익는다 싶을 때 길 찾는 한국인 젊은이들을 만나서 안내해주기도 했다. 이번에는 교통 패스를 사지 않고, 하루만 지하철 종일권을 아침에 사서 잘 이용했는데, 새로 생긴 나나쿠마선만 여러 번 탔다.     


추천하고 싶은 음식점 거리 두 곳     


1. 구텐(くうてん)


하카타역 JR 하카타 시티(JR博多シティ) 아뮤플라자 9층과 10층에 있는 레스토랑 구역이다. 여기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식당들만 입점하기에 기본적으로 맛은 보장받은 곳이니 입맛에 따라 고르면 된다.     

나는 10층 사천반점(四川飯店 博多)을 예약해 두었다. 그런데 빠르기도 하지. 네일동(네이버 일본동아리)에서 구텐에 2월 16일 몬자야키점이 개점했다고 해서 망설이다가 사천반점으로 마음을 굳혔다. 결과는 성공적. 마파두부는 런치세트로 시키고 탄탄면은 단품으로 주문했는데 둘 다 놀라운 맛이었다.      



탄탄면은 국물이 조금 짰지만, 면이 쫄깃했다. 마파두부를 집에서도 가끔 요리해 먹는데, 이제까지 먹은 것은 마파두부가 아니었다. 나는 최고의 마파두부를 먹었다. 사천반점 셰프는 일본에서 중국요리로 유명한 사람이다. 다음에 그의 다른 음식을 또 맛보고 싶다.   

   

하여간 구텐은 여행객들에게 추천한다. 백화점 푸드 코트 수준 이상이다.

구텐 https://www.jrhakatacity.com/kooten/

사천반점 https://www.jrhakatacity.com/gourmet/shisenhanten/

몬자야키점 https://www.jrhakatacity.com/gourmet/seijuro/     


2. JRJP ‘역에서 3 백보 골목(駅から三百歩横丁)’     


구텐이 제대로 된 식당들의 집합이라면, JRJP는 캐주얼한 식당들이 옹기종기 모인 동네 맛집 분위기이다. 입구를 찾기가 쉽지 않은데, 지하 West 17 출구 부근에서 Dean & Deluca와 FamilyMart 사이 골목으로 들어가면 된다.      

나는 이 골목에서 야키토리 가게인 하치베이(八兵衛)를 골랐다. 야키토리는 일본 음식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메뉴이다. 그 맛을 뉴욕에서 배웠는데, 뉴욕 음식점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가게가 이스트 빌리지에 있는 '야키토리 다이쇼'였을 정도였다.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네.      


하치베이에서 모둠 세트를 시켰다. 구운 꼬치들을 모둠으로 갖다 주는 게 아니라, 하나씩 구워서 갖다 주니 뜨거운 음식을 매번 먹을 수 있어 더욱 맛있었다. 세 가지 모둠구이 중에서 하나를 고르고, 포테이토 샐러드나 치즈두부를 곁들이면 식사가 될 것이다. 

다음에 JRJP에 가면, 모츠나베를 먹어보려 한다. 이곳은 모두 카운터 좌석이고, 현지인과 섞여 가볍게 한잔하기 좋은 분위기이다.      


빨간 도장이 찍힌 메뉴가 가장 인기있고 맛있다고 보면 된다.


밤비 맞으며 노천욕 즐겼던 미츠이가든 호텔 기온     


왜 구글 지도에는 지하철 출구 번호가 다 표시되어 있지 않은지. 왜 일본 지하철에는 바깥에 지하철 입구 표시가 없는지. 우리나라 지하철처럼 몇 번 출구가 딱 명시되어 있으면 얼마나 길 찾기 편한데. 그럴 때는 일본 야후 지도(https://map.yahoo.co.jp/)가 도움이 된다.      


미츠이가든 호텔은 구시다진자마에역 5번 출구에서 가장 가깝다. FUK 커피집이 곁에 있다. 이거 진작 알았다면 캐리어 끌고 반대편으로 가서 돌아오지 않았을 텐데.     

2박 묵었지만, 호텔 조식은 먹지 않았다. 바깥에서 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 보니 엄두가 안 났다. 대신 바로 옆에 스타벅스가 있어 커피와 베이글 먹고 글 쓰면서 아침 시간을 풍족하게 보냈다.      


가장 좋았던 건 역시 옥상 노천탕이었다. 내가 묵었던 3월 3일과 4일, 후쿠오카엔 종일 비가 오다 말다 했다. 나는 비 와도 노천탕에 간다. 아리마 온천에서도 일본인들은 비 맞는 것쯤 개의치 않고 노천탕 이용하는 사람이 많아서 쫌 신기했다. 언제 맨몸에 비 맞는 시원함을 맛볼 수 있나. 폭우라면 삼가겠지만, 뜨거운 탕에 앉아서 물에 퐁퐁 동그라미를 만드는 빗방울을 구경한다. 이틀 밤비 맞으며 노천욕 했다.      


재즈 클럽 뉴 콤보의 라이브 공연     


여행지에 가면 그 지역의 오래된 재즈바에 라이브 공연을 즐기러 간다. 미리 검색해 보니 재즈 클럽이 몇 개 있고, 그중에서 뉴 콤보가 스케줄에 맞았다. 매일 저녁 7시 반 공연이 있다. 미리 예약하면 3천엔, 즉석에선 3,500엔 관람료를 내야 하고 음료는 따로 계산한다.     

홈페이지(https://newcombo.sakura.ne.jp/)에 가면, 공연 스케줄이 나와 있다. 내가 보았던 공연은 피아노와 베이스, 그리고 보컬 세 사람의 공연이었다. 


피아니스트는 몇십 년 공연한 사람답게 ’강약을 아는 남자‘였다. 부드럽게 시작하여 엉덩이를 들썩일 정도로 강하게 흥을 돋우는 유쾌한 연주를 하는 사람. 적어도 일본식 푸딩 같은 밋밋하고 알갱이 없는 연주가 아니었다. 거기다 내가 편안해하는 톤과 높이의 목소리를 가진 관록이 보이는 보컬과 베이스 두 사람의 어울림이 기억에 남는다. 


막 공연을 시작하고, 맞은편 자리에 세 사람이 앉는다.

"오, 클래시컬한 분위기인데."

한국말에 놀라 바라보니 내 또래의 여자 두 분이 미소 짓고 있다.

미국에서도 유럽에서도 일본에서도, 그 지역 재즈바에서 6, 70대 한국 분을 만나본 적이 없다. 연주를 들으며 간간이 이야기도 나눈다. 성격 좋고 약간 익살기 있는 70세라는 여자분. 다시 만날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여행 이틀째, 만 하루 동안 나는 이것저것 하며 신나는 하루를 보냈다. 지난 두 달 동안의 스트레스가 확 풀렸다.     


그리고 그분이 돌아가셨다는 연락     


여행 삼일째 아침 8시. 나는 여전히 붐비는 조식 식당을 피해서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고 노트북에 첫 줄을 쓰기 시작했다. 

‘후쿠오카는 서귀포와 위도가 비슷하다. 그래서인지 오늘 아침 남편과 아내의 날씨가 같았다.’     


죽음을 알리는 전화를 받고, 그 즉시 비행기표를 알아보고 한 시간 후에는 택시 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에서 나머지 일정들을 다 취소했다. 당일 가기로 한 료칸, 비행기, 기차, 호텔. 모든 게 날짜가 임박해서 환불 안되었지만 여행이야 담에도 할 수 있지.      

여행의 나머지는 3일 동안 부산에서 장례식 마칠 때까지 보냈다. 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분이지만, 이제 나도 늙고, 그분도 가시니 진심으로 명복을 빌게 된다. 

살러 가서 죽음까지 겪고 온, 나에게는 다시없을 이상한 여행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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