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꼬낀느 Apr 11. 2024

서귀포 4월의 과일, 참외부터 애플망고까지

 

봄이 살그머니 찾아왔다. 열네 살쯤 처음 ‘문득, 봄’을 느꼈는데, 몇 곱절을 산 늦은 나이가 되었어도 봄은 느껴진다. 나보다 나이 많은 주 PD가 그랬다. 

‘이 나이에도 뜨거울 수 있는 것은 조롱감이야.’ 

그런 뜨거움은 아니더라도, 나도 어째 책이 눈에 안 들어오고, 자꾸 바깥을 쳐다보게 된다. 꽃이 얼마나 폈는지, 꽃이 얼마나 졌는지 보느라 뜰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다. 


바야흐로 4월이다. 과일 좋아하는 내게 봄은 감귤류의 기나긴 행진이 끝나고 다른 과일들이 순서를 기다린다는 뜻이다. 겨울 내내 조생귤부터 만감류, 한라봉, 레드향, 천혜향들을 실컷 먹어서 이제 다른 과일들이 탐난다.     


참외     


봄은 참외에서 시작한다. 어릴 적에 참외는 여름 과일이었고, 커다란 참외를 썩 좋아하지 않았다. 서귀포 오일장에 다니면서 단골 태헌이네서 철철이 이른 과일을 사 먹는데, 몇 해 전부터 어린 참외를 좋아하게 되었다.

작은 참외는 씨도 크지 않아 굳이 씨를 골라내지 않아도 되어 고스란히 단맛을 볼 수 있다. 아삭한 과육과 부드러운 속살이 일품이고 게다가 값도 싸서 요즈음 입맛 돋우는 1등 과일이다.

한 이틀 육지에 다녀왔는데, 가족들과 다양한 맛집에서 산해진미로 식사해도 집 냉장고 안에 든 참외의 시원한 맛이 그리웠다.

참외는 더위가 오면서 커다란 과일이 나오기 시작하면 다 먹었다. 더 이상 사지 않는다.     


블루베리     


여름에 노지 블루베리를 사서 냉동실에 두고 반년 먹는다. 매일 아침 서른 알 정도 먹는데, 이미 다 떨어져 못 먹은 지 두 달 지나니 블루베리가 눈앞에 어른거린다. 

제주 온 지 십 년 지나니, 각종 과일 농장주들과 친해져서 그 리스트를 확보하게 되었다. 노지는 아직 멀었고, 혹시나 싶어서 땡큐베리의 농장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블루베리 생과 판매하나요?”

“5월이 되어야죠. 아직은 비싸요. 1kg에 6만 원.”

“네... 아무리 좋아해도 그건 아닌 듯. 5월까지 기다릴게요.”

참외는 올해 이마트 것도 맛있었지만, 블루베리는 이마트에서 파는 수입 제품은 안 먹는다. 나올 때까지 참외 먹으며 기다려야지.     


아마나스     


지인 농장에서 가져왔다. 아마나스는 독특한 과일이다. 서귀포의 가로수로 길가에 서 있는, 서귀포 사람들은 먹지 않는, 육지에서 온 사람들이 길에 주렁주렁 열매 달린 나무 보고 깜짝 놀라는 그 하귤이 아니다. 아마나스는 하귤이지만 거기에 단맛이 가미된 품종이다. 그 맛이 참 묘하다. 시지 않고, 단맛이 돌면서 자몽 맛도 떠오른다. 생과로 많이 먹기보다 한두 조각 입에 넣으면 그 상콤한 맛에 기분이 좋아진다. 한 해에 한 번은 꼭 맛봐야 하는 과일이다.     


애플망고     


딸이 결혼할 때 내 친구들 몇몇이 축의금을 보내주었다. 너무 감사해서 답례를 뭘 할까 하다 통 크게 애플망고를 골랐다. 농장주에게 직접 부탁해서 가장 좋은 걸로 선물을 각각 했다. 모두 그 맛에 감탄했는데, 한 친구가 말이 없었다. 이상해서 물어보니,

“그거 대체 무슨 맛이야? 비싼 과일이라는데 넘 맛없던데.”

라 답해 아뿔싸, 했다.

당연히 알고 있으리라 여겨 부연 설명 안 했는데, 후숙을 몰랐던 거다.   

   

애플망고를 사 오면 일단 식탁 위 후숙 과일 두는 곳에 펼쳐둔다. 며칠쯤 지나면 겉껍질이 약간 시든 듯하며 말랑말랑해진다. 그때 냉장고에 넣는다. 제주의 애플망고는 아직은 귀해서 값이 후덜덜하지만, 대신 잘 후숙 된 과일은 천혜의 맛이다. 

물론 나는 비싼 과일 안 사 먹는다. 큰 애플망고는 선물용으로만 가끔 드릴뿐, 정작 우리가 먹는 것은 오일장에서 사는 새끼 애플망고이다. 그것도 빨리 나가기에 태헌이네가 문 여는 이른 아침에 가서 사 온다. 아주 적은 것부터 크기 별로 값이 확 올라가는데, 맛은 차이 없다. 사이즈만 작을 뿐이라 한 번에 먹기 좋은 크기로 사 온다.     


생각난 김에 단골 농장주에게 올해 가격을 묻는다.     


안녕하세요.
5~6과 18만 원 
7~8과 16만 원 
9~10과 15만 원 
미니 망고 3킬로 1박스 105,000원      


단골이라 미니 망고를 십만 원에 해준다 해서, 시어머니와 친정엄마에게 보내드린다. 나는 오일장에 가서 더 작은 걸로 사 먹어야지.     


봄이다. 누군가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술렁임이 멎을 것 같다. 봄은 열네 살에게만 오는 것은 아니다. 다시 땅으로 내려와 두 발로 굳건히 선다.      


봄바람 난 서홍댁


* 사진은 아마나스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겨울과 봄 사이, 서귀포는 축제 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