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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나고, 아프고, 죽고 있다

by 꼬낀느


어떻게 이 모든 일이 한꺼번에 일어나고 있을까.

가끔 머리가 멍-해지면서, 아무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말하다가 백지가 되면서, 할 말이 안 떠오르기도 한다. 다행히 어제는 많이 자서, 마음이 차분해졌다.

가장 뜨거운 여름. 모든 일을 오는 대로 맞아들이기로 한다.


딸이 6월 말 아기를 낳았다. 7월과 8월, 조리원에서 나온 딸과 사위와 아기가 우리 집에서 지냈다. 함께 아기를 돌보면서 기쁘고, 가쁜 시간을 보냈다. 아기는 상상했던 것보다 더, 엄청나게 사랑스러웠다. 그리고 쑥쑥 자라, 매일 새로운 모습을 보여 주었다.


또 가족 중 한 명이 중병을 앓아 입원했다. 다른 형제는 이제 병의 마지막 단계라 호스피스 병동에 들어갔고, 곧 부고가 올 것이다. 일주일 만에 세 번 서울에 다녀온다. 매일 다른 호텔에 숙박해야 했다. 그사이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울기도 많이 울었지만, 내 울음이 그들에게 무슨 소용이랴. 아프고, 죽는 건 운명인 것을.



b.jpg 보리, 처음 우리집에 왔을 때 2개월 모습


15세가 되는 보더콜리 강아지 보리마저 8월에 죽었다. 아무 기미도 없이 전날 저녁을 먹고, 밤새 이상한 신음 소리를 내더니 다음 날 오전 꼼짝 못 하고 있다가 정오에 갔다.

하룻밤 만에 그리 가는 게 기가 막혔지만, 화장하고, 뼈를 정원에 묻고, 묘비를 주문했다.


이 모든 일에 나의 노력이나 마음 따위 하나도 도움 되지 않았다. 그저 일이 일어나면 정신 차리고, 하나씩 다음 일을 처리해야 했다.


내일은 고3에게 중요한 가늠이 될 모평 시험이 있는 날이다. 좀 더 아이들에게 집중해야 할 시기인데, 가족의 일이 너무 크다. 오늘 애들을 만나 시험 전 실력 점검이라도 해보고 보내야지. 결국 아무리 큰일이 있어도, 제 할 일을 뚜벅뚜벅 할 수밖에 없다. 그게 나도 살고, 나를 보고 있는 사람들도 버티게 할 것이다.


혼돈 속에서도 아기의 모습을 떠올리면 살만하다. 밤에 잠이 안 올 때는, 기도하면서 곁에 누운 아기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그 말랑말랑한 생명이 나를 편안하게 했다.

우리는 그렇게 산다.

아프고, 죽더라도, 또 새로 태어나는 생명의 힘찬 에너지를 받고 웃음을 되찾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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