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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썽으니 Sung Nov 13. 2019

인도, 무섭지 않아요?

괜찮아요, 다 사람사는 곳이니까요

어느 채널이나 유튜브에 올렸을 때 댓글로 욕을 엄청 먹는 국가가 있다. 바로 인도다. 딩고 채널에 인도편을 올렸을 때도 이 공식은 똑같았다. 보통의 이유는 치안이 위험한 국가인데 굳이 여행지로 추천하느냐는 비판적인 의견이었다. 물론 치안이 안전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내가 경험한 인도는 밤늦게 혼자 돌아다니지만 않는다면 그렇게 여행하기 나쁜 곳은 아니었다. 물론 여기 저기 사기꾼을 조심해야하고 길거리가 청결하지 못하다는 점 쯤은 감안하고 가야하는 곳이긴 하지만 말이다. 특히 나의 경우에는 혼자 다닌 것이 아니라 든든한(?) 고백친구들과 거의 항시 붙어다니거나 동행을 구해서 다녔기 때문에 위험이 덜했다. 그리고 우리 네 명 모두 이미 인도 여행이 처음이 아니라 거부감도 덜 했던 것 같다. 인도는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여행지이다.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은 엄청 좋아해서 최고의 여행지로 꼽기도 하지만, 싫어하는 사람은 극혐 수준의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인도는 미지의 신비로운 이미지가 있어서 호기심이 생기는 국가였다. 이전에 한 번 오긴 했지만 대학교에서 보내주는 1주일 연수 프로그램이어서 첸나이 쪽만 살짝 다녀오고 진정한 인도는 경험하지 못했었다. 특히 대학교에서 외부 출입을 철저히 통제했었기 때문에 인도보다는 현대자동차 공장에 다녀온 기억 밖에 없었다. 그래서 고백아시아를 통해 방문하는 인도에서 '진정한 인도'를 경험해보고 싶었다.



사리, 이거 어떻게 입는거예요 도대체...


아마도 알라딘에 나온 자스민 때문인걸까? '인도'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예쁜 인도 여자가 사리(인도 전통 옷)을 입고 있는 모습이다. 그래서인지 인도에 오면 꼭 사리를 입어보고 싶었다. 나도 사리를 입으면 과연 예뻐질 수 있을까? 옷이 날개라는 말을 믿어보고 싶다. 


인도에서 제일 먼저 도착한 도시 뉴델리. 뉴델리에서 가장 유명한 거리는 상점들이 쭉 늘어져있는 파하르간지이다. 인도에서 총 8개의 도시를 돌았는데 파하르간지의 물가가 가장 저렴했다. 그리고 아침에 사러 나가면 정말 심각하게 싼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 인도 사람들이 믿는 미신이 있는데 장사 시작했을 때 첫 손님이 물건을 많이 사줘야 그날 장사가 잘 되고, 그 손님이 아무 것도 안 사고 나가면 그 날 장사는 땡친다는 속설이다. 그래서 오전 중에 나가서 가게를 방문하면 가격을 많이 깎아주더라도 주인들이 팔려고 한다. 이러한 꿀팁을 체득하고 파하르간지에서 옷이며 기념품이며 정말 많이 샀다. 그리고 '사리도 여기서 사야겠다'라는 마음을 먹고 이 가게 저 가게를 돌아다녔다. 그런데 이상했던 점이 다른 물건을 취급하는 가게도 아니고 여자 옷을 파는 사리 집 전부가 여자는 없고 남자들이 팔고 있었다. 파하르간지를 전체적으로 둘러봤을 때는 98% 다 남자 상인들이었다. 그리고 인도 여행을 마친 후 되돌아봤을 때도 이러한 현상은 대부분의 인도 도시에서 거의 동일했다. 여성들은 바깥 일을 거의 안하는 것 같았고, 여학생들은 많이 봤지만 20-50대 사이의 여성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문화적 환경으로 인해 여성들의 사회 활동이 많이 제약되는 현실을 보았다. 

 

처음에 들어간 가게가 제일 마음에 든다는 말이 꼭 맞았다. 다른 집보다 고퀄의 붉은색 사리 원단에 내 마음이 이미 빼앗겨버린 터였다. 이 원단으로 사리를 만들어달라고 하니까 그냥 그 원단을 봉투에 넣어주는 할아버지.


"사리를 만들어 달라구요 할아버지"

"응 이게 사리야"

"아니 이게 사리라고요?"

"응 사리라니까 사리"

"....?"


네모난 직사각형 천 원단이 사리라고? 이걸 도대체 어떻게 입으라는 건지 나는 멘붕에 빠졌다. 어떻게 이걸 입냐고 물어보니 아저씨가 웃으시더니 팔을 벌려보라고 하셨다. 그리고 손수 입혀주셨다. 사리라는게 드레스인줄 알았는데, 네모난 천을 가지고 몸에 입히는 것이었다. 


"아...! 이렇게 입는 것이군요. 그럼 위에 탑은 없나요?"


라고 물었더니 그건 재단해줄 수 있다고 한다. 사리로 샀던 원단에서 일부를 잘라서 위에 탑만 만드는 것이었다. 3시간 후에 찾으러 오라고 하셨다. 다시 찾아가니 예쁜 탑이 완성되어 있었다. 한화로는 16,000원(990루피) 상당을 주고 구매하였는데, 그렇게 잘 깎는 나도 마음에 드는 원단 앞에서는 맥도 못추리고 처음 부른 가격 그대로 지불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숙소에 돌아와 입으려고 보니 사리 입는 방법을 까먹은 것이었다. 하아... 내일 바로 타지마할 갈 때 입어야 하는데 방법을 모르니 참 난감했다. 유튜브를 켜서 사리입는 법을 찾았지만, 영상을 보고 따라입기는 무리였다. 그래서... 그냥 내 맘대로 입기로 했다. 



인도에 오면 꼭 봐야한다는 타지마할. 뉴델리에서 타지마할이 있는 아그라까지 택시로 편도 4시간이 소요된다. 치우, 소영, 보준은 이미 예전에 인도여행 왔을 때 가본 적이 있다고 하여 나만 따로 동행을 구했다. 기차로 가는 방법도 있지만 택시 투어로 가면 더 편하고 비용도 1/n 하니까 오히려 적게 든다. 타지마할에서 일출을 보기 위해 새벽 2시 30분에 출발했지만, 우리가 도착했을 때 이미 해는 떠버린 후였다. 최소 새벽 2시에 출발해야 제대로된 일출을 볼 수 있을 듯 싶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나에게 설...설사가 시작되었다. 인도 온 지 몇 일 되었다고 물갈이란 말인가. 당연히 마시는 물은 생수를 사마셨지만, 양치할 때 조금 들어갔는지 혹은 음식점에서 먹은 음식 때문인지 물갈이를 하게 된 것 같다. 그날 처음 만난 동행이었는데, 인도에서 여행자끼리 제일 먼저 나누는 이야기가 물갈이기 때문에 의도치 않게 똥밍아웃을 하고야 말았다. 그리고 살포시 그 분은 내 손에 '스멕타'를 쥐어주셨다. 설사를 똥으로 굳게 만들어 준다며 가장 잘 듣는 약인데 본인은 곧 한국 돌아간다고 남은 약을 모두 넘겨주셨다. 이런 것이 인도 여행자들의 정이 아닐까. 하하하. 근데 진짜 효과가 직빵이였다. 검증된 약, 스멕타! 


혹시나 일출을 볼 수 있을지 싶어서 타지마할 입구까지 열심히 뛰어갔다. 입구에서는 소지품 검사를 하고 있었는데 삼각대는 일절 반입 금지 였다. 물론 알고는 있었지만 셀카봉 모양으로 생겼기 때문에 가지고 들어가볼까 시도하고 있었는데, 심사대에서 딱 걸렸다. "이거 사물함에 넣고 오세요" 하면서 나를 뒤로 물렸다. 사물함이 어디있는지 물어보니 엄청 멀리있는 다른 문 앞에 있다는 것이었다. 지금 안들어가면 동행과 떨어지게 되서 사진도 영상도 제대로 못 건질 수 있었기에 나는 의사결정 해야했다. 그 당시 나에게 촬영보다 중요한 것은 없었다.그래서 도저히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서 쓰레기통에 삼각대를 버렸다. 그리고 다시 검색대를 지났다. 옆에 경비병이 내 행동을 보더니 너무 놀라서 쓰레기통에서 삼각대를 건졌다. 


"이거 왜 버려요? 사물함에 넣어요."  


경비병이 충격을 받았는지, 본인이 보관해주겠다고 했다. 이따가 나올 때 본인에게 찾아오면 다시 주겠다고... 사실 많이 아까웠는데 타이밍 놓치면 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버릴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경비병의 착한 마음이 내 삼각대를 살렸다. 고맙다고 말하고 다시 타지마할 입구로 뜀박질을 시작했다. 이미 해는 다 뜬 후 여서 일출은 볼 수 없었으나, 하얀 궁전처럼 생긴 타지마할은 시공을 초월한 찬란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타지마할은 샤 자한 황제가 사랑했던 황후 뭄타즈 마할의 죽음을 애도하며 22년 동안 건축한 무덤이다. 후세의 관점에서는 국보급 유적이지만, 당대에는 무덤 건축으로 인해 2만 여명의 노동자를 동원하고 막대한 국가재정을 탕진했다고 한다. 이 죄로 샤 자한 왕은 아그라 성에 유폐되었고 여생을 마칠 때까지 아그라 성의 거실에서 타지 마할을 바라보며 황후를 그리워했다고 한다. 


인도에 왔다면 타지마할은 정말 꼭 봐야하는 여행지이다. 아름답고 또 아름답다. 눈에 담아가고 싶은 아름다움을 지녔다. 그러나 인충이의 인증샷을 찍기 위한 과정은 매우 고달팠다. 유명한 관광지인 만큼 전 세계에서 여행객들이 몰려들었고, 나와 타지마할만 나오는 인증샷을 건지기가 굉장히 힘들었다. 다른 여행객들이 꼭 엑스트라로 들어가있다. 그래도 함께 간 동행들이 열심히 사진을 찍어준 덕분에 인생샷을 건질 수 있었다. 


사리를 보면 기본적으로 허리가 다 드러나기 때문에, 치안이 위험한 인도에서 입고 다녀도 되는 옷인지 의문이 들 수 있다. 우리 문화 내에서는 노출이 심하다거나 야하다고 여겨질 수 있지만, 오히려 인도에서는 허리를 내놓고 다니는 것에서 성적 매력을 못 느낀다고 한다. 다리의 굴곡을 보이는 청바지나, 짧은 바지 등은 위험할 수 있지만 사리는 오히려 여성들의 평상복이라서 몸을 가린다고 느낀다고 한다. 나같은 외국인이 사리를 입으면 눈에 띄기도 하지만, 인도 사람들 입장에서는 굉장히 좋아해주고 반가워해준다. 외국인이 한복입고 광화문에 사진찍으러 다니는 것과 같은 느낌이랄까? 그리고 얼마나 정겨운 지, 길을 지나가던 중에도 아줌마들이 먼저 다가와서는 사리는 그렇게 입는게 아니라면서 고쳐 입혀줄 때도 여러 번 있었다. 


타지마할을 둘러본 후에는 옆에 있는 아그라성으로 간다. 아그라성은 다람쥐에게 밥주는 것이 주요 액티비티인데 이 다람쥐들이 내 팔 위로 올라올 때 얼마나 귀여운지 모른다. 다람쥐 밥이라고 비스켓을 파는 아저씨가 있어서 팁을 줘야하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비스켓 한 봉지 사올 거 그랬다. 아그라성 내부는 그렇게 크게 볼 것은 없었지만, 아그라성에서 보이는 타지마할의 모습에서 이 창을 통해서 샤 자한 왕이 황후를 그리워했겠지라는 감상에 빠질 수 있었다. 


아그라성 입구
아그라성에서 보이는 타지마할


여행 영상 촬영을 할 때 정말 다양한 컷들을 많이 찍어둔다. 여행 맛집 촬영만 해도 음식점 외관, 내부 인테리어, 외관에서 내부로 들어가는 이동 컷, 메뉴 전체 컷, 음식 확대 컷, 젓가락으로 음식 집는 컷, 먹는 컷 등 찍을 영상 소스가 상당하다. 그러한 다양한 소스의 일환으로서 아그라성에서도 앉아서 눈을 감고 사색하는 모습을 열심히 찍고 있었는데, 동행이 혼자 있는 나를 보고 심심할까봐 옆에 와주었다. 그런데 영상을 찍고 있는 내 모습에 화들짝 놀라셨다. "아니, 이런 것도 찍어요?" 약간 분위기 잡는 컷이나 어디에 어떻게 쓸지 모르니까 다양한 소스를 확보해놓으려고 찍고 있었는데 나의 이런 열정에 당황하신 눈치였다. 고백친구들은 이미 다 적응되었는데 말이다. 5개월 차 쯤 까지는 내가 찍는 모습 볼 때마다 항마력 딸린다며 칭얼댔는데, 이제는 적응되서 그러려니 한다. 이 자리를 빌려 항상 나를 이해해주었던 고백친구들에게 감사를 전한다.


타지마할 근처에 있는 한식집이 딱 한 곳 있었는데, 점심 식사를 하러 그리로 가기로 했다. Jonny's place라고 구글 리뷰에 한식을 잘못 해석한 곳이라는 평이 있었는데, 실제로 가보니 정말 잘못 해석했다는 것을 한 입 먹자마자 느낄 수 있었다. 인도인이 운영하는 한식당이어서 그런지, 김치볶음밥은 케찹 살짝넣은 토마토 볶음밥이었고 불고기 덮밥은 짜장밥과 같은 맛이었다. 동행이 가져온 고추장으로 연명했는데, 9개월 동안 갔던 숱하게 많은 한식당 중 가장 최악이었다. 원래는 이 내용을 안쓰려다가 정말 혹시라도 타지마할 여행 전 이 글을 보게 된다면 제발 Jonny's place만큼은 피하라고 간절히 말해주고 싶어서 넣게 되었다. 어쩔 수 없이 가더라도 짜장밥 맛의 불고기 덮밥을 시키는 것을 추천한다. 김치볶음밥은 정말 극혐이었다. 극혐!

이게 정녕 김치 볶음밥이란 말이더냐 (좌 불고기덮밥 / 우 김치볶음밥)


하이데라바드, 신도시다


인도하면 소가 막 길가에 지나다니고 여기저기 쓰레기가 널려져있고 먼지가 폴폴 날리는 거리를 상상하겠지만, 사실 그게 맞긴 하지만, 대부분의 거리가 그렇긴 하지만... 엄청 문명화된 신도시도 있다. 뉴델리에서는 인도의 첫 도시고 혼자 돌아다니기 좀 무섭기도 하고 그래서 주일을 영상 설교로 대신했지만 일주일 넘게 인도에 있다보니 '인도도 다 사람사는 곳이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적응도 되고 마음이 굉장히 편해졌다. 밤 늦게만 아니면 혼자 돌아다니기도 하고 말이다. 그래서 하이데라바드에서는 교회를 가자는 마음을 먹었다. 검색해보니 한인교회가 있다는 사실은 나오지만 도저히 교회 주소가 검색되지를 않았다. 그래서 담임 목사님의 따님을 검색하여 페이스북 메세지를 보냈다. 그 메세지에 남긴 내 연락처를 통해서 주일 날 아침 목사님이 전화를 주셔서 무사히 예배에 갈 수 있었다. 교회는 별도의 건물이 있는 것은 아니고,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모임 장소에서 예배를 드린다고 하셔서 릭샤를 타고 찾아갔다. 우리가 머물고 있었던 동네와는 다르게 송도 신도시가 눈 앞에 펼쳐졌다. 정말 놀라웠다. 아, 인도에도 이런 곳이 있구나. 내가 알던 인도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정말 도시 그 자체!

한인 교회 교인 분들은 대부분 현대자동차나 기아자동차 관련 주재원 분들이셨다. 작지만 은혜가 있는 예배였고 끝나고 다과회도 해서 한국 과자도 먹을 수 있었다. 그리운 맛! 목사님 사모님이 긴 여행으로 한국 과자가 그리웠을 텐데 고백 친구들하고 나누어 먹으라며 남은 과자도 싸주셨다. 숙소로 돌아오니 소영이는 아직 자고 있었다. "소영아 일어나~" 해도 반응이 없길래 한국 과자 한 개를 꺼내서 자고 있는 소영이 코 근처에 가져가니 "킁", "킁" 하고는 눈을 떠서 과자를 먹었다. 앞으로는 잠꾸러기 소영이를 깨울 때 한국 과자를 미끼로 사용해야겠다. 효과가 아주 좋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인도에 와서 카레를 거의 안 먹었다. 혹여나 검증되지 않은 동네 맛집에 갔다가 물갈이를 하게 될까봐 무서웠다. 그래서 KFC, 피자헛, 스타벅스 등 글로벌 표준 위생을 지킬 것만 같은 프랜차이즈나 외국인 리뷰가 많은 맛집에 가서 먹었다. 그러나 글로벌 프랜차이즈라고 해서 인도의 특성을 벗어날 수 없었다. 믿었던 마르게리타 피자 마저 카레 맛이 섞여있었다. 하아... 그 어메리칸 어메리칸 피자를 먹고 싶었는데... 그리고 코카콜라가 거의 설탕물 수준으로 탄산이 없었다. 우리의 입을 의심해본다. 그리고 탄산을 다시 달라고 했더니, 똑같은 설탕물을 가져왔다. 그냥 포기하고 먹긴 했는데, 다른 음식점에서도 탄산음료를 시켜본 결과 인도의 탄산음료는 전체적으로 탄산을 거의 함유하지 않고 있었다. 이런 특징이 국가마다 뚜렷이 차이가 나는 것 같다. 중국이나 일본은 우리나라 처럼 탄산을 좀 쎄게 먹는 것 같고, 국가마다 여러 도시를 돌아다니다 보니 국가 별로 입맛의 특성을 알게 된다.    


중학교 때 별명이 인도아이였는데, 커서는 세 얼간이 여주인공 닮았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물론 치우랑 보준이는 누구랑 비교하느냐며 발끈했지만 말이다. 인도 사람처럼 이목구비가 뚜렷하기도 하고, 인도인들도 나를 많이 좋아해주는 것을 봐서는 인도에서 더 잘 먹히는 얼굴인 것 같다. (착각은 자유니까요...) 아마도 고백아시아에 뭄바이가 껴있었다면 발리우드 오디션 보러가는 컨텐츠를 찍었을 텐데 너무나 아쉽다. 발리우드는 뭄바이(봄베이)+할리우드를 결합시킨 말로 인도의 영화 산업 전반을 의미한다. 인도는 매 해 1,000편 이상의 극장 영화를 제작하는 유일한 나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으며 미국, 중국에 이어 세계 3위 규모의 영화 시장을 이루고 있다. 발리우드는 아니지만 발리우드 영화를 촬영하는 스튜디오가 하이데라바드에 있다고 해서 당장 예약했다. 혹시나 갔다가 길거리 캐스팅을 당하지 않을까? 라는 희망을 가지고! 


방문했던 Ramoji Film Studio는 유니버셜 스튜디오같은 느낌의 놀이동산이었다. 그렇지만 실제로 인도영화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세세하게 설명해주고 체험해볼 수 있는 공간도 존재했다. 우리나라 세트장처럼 실제 실물로 스튜디오를 꾸밀 때도 있지만, 그린스크린을 이용하여 배경을 빼고 원하는 필름을 덧대는 방식으로도 많이 찍는 것 같았다. 투어 버스를 타면 '이 세트 촬영장에서는 이 영화를 촬영했고' 등의 설명도 나온다. 여기에서도 변함없이 나의 사리를 고쳐주시는 아주머니를 만났다. 내가 보기엔 똑같은데 그렇게 입는게 아니라고들 하신다. 중간에 자주 마주쳐서 나중에는 마마 파파 시스터라고 부르면서 함께 구경다녔다. 벵갈루루에서 여행 왔다고 했다. 벵갈루루라면 다음 달에 우리가 들르는 도시가 아니던가! 벵갈루루가면 꼭 연락하겠다고 약속하고 연락처도 교환했다. 인도는 겪으면 겪을 수록 정이 참 많이 느껴지는 '사람 냄새나는 여행지'이다.


에버랜드 느낌이 나는 ramoji film studio
함께 다녔던 인도 가족들


벵갈루루에 도착했다. 숙소는 아주 저렴하고 깨끗하고 넓었다. 바퀴도 없을 것만 같았는데.. 그랬는데!!


치우가 베드버그에 물렸다.


아침에 우리 방 문을 열고 치우가 들어왔다. "누나, 소영아 나 베드버그 물린 것 같아" 

보준이까지 그 뒤를 따라 들어왔다. 아침에 눈을 떠서 침대에 누워있는데 옆에 무언가가 기어다녀서 '뭐지?'싶었는데 침대 머리 뒤에 드글 드글 베드버그가 기어다니고 있었다고 한다. 치우가 충격과 공포에 멘탈을 놓았을 때 보준이가 단숨에 10마리나 잡았다고 한다. 베드버그 사냥꾼인가요? 베드버그는 보통 유럽 여행 최대의 적이라고 불리우는데, 빈대를 일컫는다. 낮에는 침대나 어두컴컴한 어디엔가 몰래 숨어지내다가 밤이되면 잠자는 사람의 피를 흡혈해 극도의 가려움증을 유발시킨다. 번식력도 바퀴벌레급이라고 한다. 베드버그가 짐 사이로 들어갔을 경우 모든 옷을 빨래에 맡기고 배낭은 햇볕에 쨍쨍 말리거나, 심한 경우는 짐을 태워버리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다. 그런 어마무시한 여행의 적이 랑카위에 이어 또 치우를 문 것이었다. 그런데 보준이도 옆에서 자고 있는데 치우만 문 것을 봐서는 치우 피가 맛있는 것 같기도 하다. 우리 넷 다 너무 놀라서 프론트로 내려가서 컴플레인을 했다. 방은 바꿔주었지만 바꾼 방에도 베드버그가 1마리 있었다고 한다. 그래도 다른 방도가 없어서 우리는 3일 간 그 호텔에서 잤다. 물론 여자방에는 없어서 다행이었지만!


사실 하이데라바드에서 만난 벵갈루루 가족을 만나려고 연락했는데, 나의 과대한 걱정일 수 있겠지만... 시스터의 행동이 좀 껄끄럽게 느껴져서 그냥 만나지 않기로 했다. 실제로 만났을 때 너무나 친절했고, 절대 절대 나쁜 사람 같아보이진 않았지만 말이다. 인도 번호로 문자를 보냈는데 친구 번호로 나에게 답장하고...(?) 핸드폰 요금이 선불제라 문자 충전할 돈이 없는지 아니면 남편한테 외국인 친구만난다고 말하기 어려워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자꾸 친구 번호로 답장하고 연락했다. 그리고 본인 일 끝나고 저녁 7시에 만나자고 하는데, 저녁 7시면 꽤나 어두워져서 혼자 나가기가 솔직히 좀 무서웠다. 그리고 호텔 근처에 번화가가 있어서 사실 걸어서 이동할 수 있는 거리인 그 쪽에서 만나면 나갈 수도 있었겠지만, 좀 멀리 떨어진 운동장 부근에서 만나자고 하길래 마음이 어려웠다. 예를 들어 '종합운동장에서 7시에 봐'라고만 하고 운동장 어디에서 보자는 것인지 동문인지 서문인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전화 연락도 잘 안되는데 괜히 나갔다가 나만 미아가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미안하다고 하고 약속을 취소했다. 시스터도 호의를 베푼 것인데 괜히 예민해 한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 컸다. 그래서 선물이라도 집으로 보내려고 집주소도 알려달라고 했는데, 본인 집주소가 아닌 친구집으로 보내달라고 하면서 친구집 주소를 알려주었다. 아직까지 왜 그랬는지 미스테리이긴하지만, 남편에게 들키지 말아야할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인도에서는 혼자 밤늦게 돌아다녀서는 안된다.' 저녁 6시 이후에 혼자 돌아다니지 않기'라는 인도 여행 철칙만 지켜도 위험은 1/2로 줄어든다.   



인도에서 소고기 스테이크를 먹었다고?


인도에서는 소를 먹지 않는다는 말을 어디선가 한 번 쯤 들어봤을 것이다. 힌두교는 소를 신성 시 여기기 때문에 인도 인구의 80%를 차지하는 힌두교인들은 소를 먹지 않는다. 그 뿐만 아니라 인도 인구의 13.4%는 이슬람교인이기 때문에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 때문에 대부분의 음식점에서 소, 돼지고기는 취급하지 않고 닭이나 양고기로 대체한다. 나같은 육식주의자는 참 살기 힘들 것 같다. 소, 돼지를 먹을 수 없다니! 


특히 힌두교 민족주의 성향의 정당이 통치하면서 소를 보호하는 정책이 강화되었다. 때문에 인도에서 소를 팔거나 소고기를 취급하는 레스토랑은 거의 매장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벵갈루루 맛집을 검색하다보니 소고기 스테이크를 파는 맛집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인도에서 소고기 스테이크를 먹을 수 있다니 너무나 놀라워서 찾아가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딱 매장에 들어서는 순간 풍기는 이 오로라는 뭐지?


한국말들이 여기 저기서 들리는데, 한국인들이 많이 방문한 것을 보니 이 음식점에 대한 신뢰도가 급 상승했다.


 '맛도 있겠구만' 


우리가 앉은 테이블 옆에도 한국인 아주머니 모임을 하고 계셨다. 우리가 한국어로 대화하니까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셨다. 


"학생, 유학생이예요~? 여긴 어떻게 왔어요?"

"아 저희 여행왔어요"

"여행이요? 여길 왜 여행와요? 인도에 여행 왔대..."


주재원 아내 분들 모임이셨는데, 인도에 3년에서 5년 정도 살았는데 얼른 한국에 돌아가고 싶어 하셨다. 인터넷 선 고치는 것만 해도 6개월씩 걸리고 먼지도 너무 많고 길거리에 쓰레기도 많고 힘든데, 도대체 이 곳을 왜 여행왔는지 정말 진심으로 궁금해하셨다. 그분들은 몇 년 째 여행도 안다니시고 벵갈루루에서만 계셨다고 한다. 인도가 너무 싫고 낙후되어서 집마저 벗어나면 더 끔찍할 것 같다면서... 사실 본인 의도로 온게 아니라 피치 못하게 왔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사실 인도는 사서 고생하는 여행지이고 청춘 배낭 여행자에게는 낭만적일 수 있는 도시이지만, 청결함과 예쁜 자연 풍경을 원하는 여행자들에게는 맞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여행이 아니라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인도를 더 싫어하게 되신 것 같다. 인도에 대한 부정적 감정을 해소시켜드리지는 못하겠지만, 기왕 인도에 있는 동안 인도 나름의 매력을 느껴보실 수 있도록 여행을 다니면 좋을 만한 곳들을 알려드렸다. 


이야기 도중 스테이크가 나왔다. 아웃백이나 빕스보다 더 맛있었다. 머스타드 소스랑 함께 먹으니 정말 기가 막힌 인도 소고기의 맛이었다. 놀라운 사실 하나는 2014년도에는 소고기 최대 수출국이 인도였다는 사실이다. 인도인은 먹지 않지만 수출은 하는 상황이었는데 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소 보호 정책으로 소고기 수출을 하는 농가들이 많이 탄압당했다고 한다. 종교적 이념과 경제적 가치가 복잡하게 얽혀있긴 하지만, 인도 소고기가 유명한 만큼 스테이크도 정말 맛있었다. 그러나 함께 주문한 파스타는 최악 중에 최악이었다. 이건 도저히 먹을 수 없는 정도로 최악이어서 매니저에게 파스타가 너무 맛이 없다고 했더니 "우리는 스테이크 전문점이야"라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맞긴 맞는데.. 그래 소고기 스테이크만 맛있으면 되었다. 그런데 외국인만 먹고있는 것은 아니었다. 인도인들도 스테이크를 먹고 있었다. 힌두교가 아닐 경우에는 인도인들도 소고기를 먹긴 한다고 한다. 다만 다수를 차지하는 힌두교가 탄압하기 때문에 레스토랑이 많지 않은 것 뿐이다. 그리고 벵갈루루에는 무역 수출입이 잦아서 외국인들도 많고 타 지역에 비해 좀 더 문화가 개방적이라고 한다. 그래서 소고기 스테이크를 파는 레스토랑이 있을 수 있는 듯 싶다.



백종원 선생님 여기 꼭 와주세요, 푸네


푸네라는 도시가 인도에 여행온다고 해도 쉽게 들르는 여행지는 아니다. 그러나 정말 이번 여행 중에 손꼽을 정도의 맛집이 있었다. 검색을 했는데 푸네에서 거주하시는 유학생이 이 집 게살 스프가 참 맛있다고 리뷰를 올려서 찾아가게 되었다. 사실 게살 스프가 메인은 아니었는데 다 먹고 나서 보니 눈물 나게 맛있었던 터라 게살 스프가 메인이 되어버렸다. 백종원 선생님이 꼭 와보셔야 할 특급 맛집! 인도에서 커리가 아닌 중국집을 추천하기 살짝 민망하긴 한데, 정말 한국에서 장사해도 줄 서서 먹을 것 같은 맛집이었다. Suonmoi라는 중국집이었는데 내 인생 다시는 못만날 인생 게살스프를 만났다. 사실 여러 도시 촬영이 계속되고 너무 피곤해서 푸네는 촬영을 스킵하려고 했다. 주요 관광지도 아니고... 내가 올린다고 해서 뷰가 많이 나올 것 같지도 않고... 그래서 카메라를 끄고 있었는데, 게살 스프 한 입 먹자 마자 카메라를 다시 켰다. 게살스프에 정말 게살이 실하게 들어있어 씹히는 맛이 최고였을 뿐 만 아니라 그냥 맛 자체가 완벽했다. 한국에서 차이니스 고메 뷔페 샹하오 런칭 마케팅 부터 아워홈의 차이니스 파인 다이닝 싱카이 리브랜딩 프로젝트까지... 중식하면 또 일가견이 있는 나인데,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게살 스프는 처음 먹어보았다. 큰 사이즈 솥으로 시켜서 나눠먹었는데 다른 메뉴 안시키고 1인 1솥 할 것 그랬나 아쉬움이 남는다. 다른 건 몰라도 인도는 이 게살 스프 때문에 다시 가고 싶다.     


믿을 수 없는 환상적인 맛


인도에서의 마지막 도시, 핑크시티 자이푸르


핑크시티라는 별명을 가진 자이푸르는 도시에 들어오자마자 분홍색으로 물들여진 건물 외관들을 볼 수 있다. 이곳이 분홍색으로 칠해지게 된 배경은 100여년 전 영국 식민지 시절에 자이푸르에 방문하는 영국 왕세자에 대한 환영의 의미로 당시 자이푸르 성주가 도시 전체를 분홍색으로 칠했다는 이야기에 기반한다. 핑크 핑크한 자이푸르의 꽃은 하와마할(바람의 궁전)이라는 건물인데, 바깥 출입이 금지된 왕실의 여인들이 궁전 안에서도 이 좁은 창문을 통해 시장의 활기찬 풍경들을 구경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밖에서는 안을 볼 수 없고 안에서만 밖이 보이는 구조이다. 워낙 큰 건물인지라 가까이에서는 전경을 제대로 보기 어려운데, 사진 찍는 도중 인도인 친구를 만나게 되어 명당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사실 인도에는 여행객에게 괜히 다가오는 사기꾼들이 많기 때문에, 다가오면 이내 무시해버리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렸다. 하와마할 앞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인도인이 건너편에 자기 가게가 있으니 거기서 보면 전체 풍경을 볼 수 있다며, 자꾸 오라고 했다. 처음에 나는 뭘 팔아먹을 수작인가 싶어서 못들은체 했는데, 그 친구가 진짜로 하와마할 바로 건너편 3층에서 본인이 쥬얼리샵을 운영한다며 나를 설득했다. 처음보는 남자가 건물 안으로 올라가자는데 솔직히 혼자 올라가기 좀 무서워서 친구랑 얘기해보겠다고 하고 빠져나갔다. 고백친구들은 저 멀리서 쇼핑을 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돌아가서 쥬얼리샵 친구 얘기를 하고 함께 왔다. 든든한 고백친구들이 3명이나 있으니 해코지는 못하겠지 싶어서 속는 셈치고 그를 만났던 건물 앞으로 다시 갔다. 그를 따라 올라가니 진짜 쥬얼리 샵이 있었고 본인의 이름은 '유노쉬'라고 했다. 뭘 팔려고 하지도 않았고 정말 순수하게 우리에게 좋은 뷰에서 하와마할을 구경시켜주려는 의도였다. 엄청 부자집 아들이 부모님께 쥬얼리샵 물려받아서 취미로 하고 있는 그런 느낌이었다. 인스타그램으로 본인의 한국인 친구들을 보여주면서, 원래 한국인 친구가 많아서 한국인을 보면 더 챙겨주고 싶고 더 좋은 환경에서 구경시켜주고 싶어서 나에게 다가왔던 것이라고 했다. 선한 의도로 말을 걸었던 것 같은데, 처음에 사기꾼 취급하고 경계한 것 같아서 미안했다. 그러나 인도에서는 어쩔 수 없다. 그 정도로 경계해야만 나를 지키면서 안전한 여행을 할 수 있는 곳이니까! 그의 쥬얼리샵은 정말 하와마할 정 중앙 반대편에 위치한 명소 중의 명소였다. 이런 곳에서 무료로 사진찍을 수 있다니 정말 고마웠다. 우리는 제발 이곳에 카페를 차리라며, 돈을 쓸어모을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는데 다음에 우리가 또 자이푸르를 방문한다면 그 때는 카페로 바뀌어있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유노쉬와 고백친구들
하와마할 전경


유노쉬처럼 따뜻한 사람이 있는 반면 무례한 사람도 있었다. 인도 3대 라씨(요거트 음료)맛집으로 꼽히는 '라씨왈라'에 갔다. 보준이 말로는 인도에서 먹었던 라씨 중에 이곳이 최고라고 했다. 사람들이 엄청나게 줄 서있었고, 외국인 관광객도 많았다. 라씨왈라의 특별한 점은 차가운 도기에 스윗라씨(Sweet Lassi)를 담아주어 시원한 맛을 그릇을 비울 때까지 느끼면서 마실 수 있다는 점이었다. 또한 다 마시고 난 후 도기를 깨서 버리는 전통이 있다. 사실 너무 양이 많아서 먹다가 선반에 올려놓고 쉬다가 다시 먹다가를 반복했다. 그 와중에 어떤 인도 아줌마가 지나가다가 선반에 올려져있는 내 라씨를 쳐서 바닥에 떨어뜨려버렸고 도기는 그대로 깨져버렸다. 아주머니가 사과할 줄 알았는데, 그냥 모르는척 하는 것이 아닌가! 열이 슬금 슬금 받기 시작했다. "아주머니가 떨어뜨렸잖아요"라고 얘기했는데 안들린다는 표시를 하며 고개를 돌려 무시했다. 한 번 더 이야기하니까 못들은체하고 본인 마시는 컵을 비운 후 도망가버렸다. 화는 나지만 말도 안 통하고... 오늘도 이 화를 기도로 풀어야겠다는 다짐을 한 채 그냥 내 돈 주고 한 잔 더 샀다. 도기 깨는 모습은 찍어야 하니까! 근데 도기 퀄리티가 너무 좋아서, 기나긴 여행 일정만 아니었다면 기념품 화분으로 가져가서 썼을 것 같은데 아쉽긴 했다. 


라씨 왈라


주로 나는 화나면 울면서 기도한다. 그래서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사람에게 직접적으로 화를 내는 경우가 적다. 솔직히 이전 성격 같았으면 욕도 엄청했을텐데, 하나님은 인격적으로 만난 후 성격이 180도 바뀌었다. 물론 겉으로 티는 많이 안날 수 있어도 내면 안에 많은 것들이 정리되었다. 과거에는 편한 친구들하고 있을 때 음담패설도 많이하고 입도 많이 험했는데, 지금은 내가 하는 '말'에 권세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부정적인 언어는 의식적으로 삼가하고 긍정적이고 좋은 말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의 행동을 보고 화가 나거나 부당하다고 느끼더라도, 내가 그 사람을 고칠 수 있는 것은 없다. 백 번 말해도 사람은 하나님이 바꾸시기 전까지는 바뀌지 않는다는 진리를 깨달았다. 나도 하나님을 만나기 전까지 안 바뀌었었으니까. 물론 모태신앙이긴 했지만 나의 믿음은 99%였다. 그러나 엄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는 그 순간, 100%의 믿음이 되는 그 순간이 인생에 왔다. 역시 사람은 힘든 일이 있어야 하나님을 찾게 되는 것 같다. 내 힘으로는 절대 할 수 없는 그 무너짐 앞에서 하나님을 찾았고, 그 분은 나를 만나주셨다. 기도 중에 '방언'을 받았는데, 내 입이 내가 말하는 것과 다르게 움직이고 손이 내 의지로 움직일 수 없는 속도로 떨렸는데 그 순간 하나님이 정말 살아 계시는구나를 느꼈다. 내 의지가 아니라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그 순간,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 같다. 고백친구들에게 매 번 하는 말이지만 옛날 성격 그대로 고백아시아를 왔다면 정말 피터지게 싸웠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성격 그대로였다면 크리스찬으로서 안 좋은 면을 더 많이 보여주었을 것 같다. 물론 지금도 많이 부족하지만, 의식적으로 가능하면 좋은 면을 보여줄 수 있도록 노력하게 되는 것 같다.


자이푸르에서 편도 3시간 버스를 타고 가면 푸쉬카르라는 도시가 나온다. 인도에 왔으니 낙타를 너무나 타보고 싶었는데, 낙타사파리로 유명한 자이살메르는 우리 일정에 없었다. 그러나 푸쉬카르에도 낙타사파리가 있다는 정보를 듣고 고민없이 길을 떠났다. 


세상에나 세상에나


푸쉬카르는 또 다른 느낌의 세상이었다. 진짜 내가 상상하던 리얼한 인도가 눈 앞에 펼쳐져 있었다. 도시 문명과 아주 멀디 먼 그런 시골 마을이랄까. 정말 쓰레기 더미가 곳곳에 있고... 만화에서만 보던 긴 수염의 터번 쓴 할아버지가 현실로 살아계셨다. 소들도 리얼로 똥싸면서 내 옆을 지나다녔다. 오 마이 갓!



치우는 푸쉬카르에 한 번 와본 적이 있어서 최고의 맛집들로 데려가 주었다. 제일 먼저 도착한 쥬스샵(Sonu Juice Shop)에서 생과일 쥬스를 먹었는데, 아주 위생적으로 만드는 것을 직접 주방 촬영을 통해 목격하고 안심하고 마셨다. 그런데 한국인들이 꽤나 많이 오는지 주인 아저씨가 나보고 '아이유'닮았다고 칭찬해주셨다. 


'아...아저씨 아무리 그러셔도 저랑 아이유랑은 닮은 곳이 한 군데도 없는데요...'


한국 여자만 오면 죄다 아이유 닮았다고 하는 것 같은데, 분명 전에 온 사람이 가리켜 주었던 것이 틀림없다. 아이유는 알까? 지구 저 멀리 인도 푸쉬카르에 있는 인도인도 아이유를 알고 있다는 사실을! 근데 한 두명이 아니었다. 하마터면 정말 아이유 닮았는지 거울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볼 뻔 했다. 피자롤 맛집에서도 그렇고 시장에 걸어다니다 보면 물건 하나 더 팔려고 날 보고 '아이유 아이유' 하는데 아이휴...(한숨) 조금 더 현실적으로 닮은 배우를 댔으면 사줬을 것 같은데, 솔직히 아이유는 너무 안 닮았잖아!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3시간 짜리 낙타사파리를 예약했다. 사막에서 하루자고 오는 낙타사파리도 있지만 소영이가 극구 말렸다. 물론 인도 여행이 사서 고생하는 여정이라고는 하지만, 안해도 좋은 경험도 있으니까 말이다. 소영이가 직접 해본 결과 추위, 모래바람 그리고 모래가 씹히는 밥까지 경험할 수 있는 원나잇 낙타사파리보다는 3시간 도는 것으로 만족하라는 조언을 주었고 따르기로 했다. 새로운 체험은 언제나 환영이지만, 나이가 들 수록 사서 고생하는 건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어지는 중이다. 메르스 걱정도 있긴 했는데 검색해보니 중동 낙타에서만 발견되고 인도 낙타는 아직 발병된 적이 없다고 해서 타기로 했다. 낙타를 처음 타보는 터라 굉장히 설레였다. 낙타가 앉아있을 때 위에 올라탄 후 낙타가 일어서는데 마치 놀이기구 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엄청 높았다. '낙타가 키가 크긴 큰가보다.' 3시간이 금방 지나갈 정도로 정말 재밌었다. 낙타를 타고 사막을 돌아다니는데, 사막에 있는 가시나무에 카메라가 걸려서 큰 일 날 뻔 했다. 그런데 '사막에 있는 가시나무'를 처음 경험해보니 책에서서만 봤던 지식들이 경험적으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여행의 재미란 그런 것 같다. 내가 살던 영역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고 처음 보는 것들을 누려보는 것, 깨달아 보는 것 말이다. 세상에는 우리가 도전해볼 만한 새로운 것들이 정말 많다.     



푸쉬카르에서 우리는 엄청난 가산을 탕진했다. 이 곳은 정말 저렴한 가격에 앤티크한 물건들을 많이 떼갈 수 있는 도시였다. 그 중 원석이 박힌 노트가 있었는데 한화로 4,000원 정도 밖에 안했지만 비슷한 것을 호주에서는 40,000원 정도에 판매하고 있었다. 10배라니 쓸어가자. 배낭이 허락하는 선에서 쓸어가려고 했다. 그리고 푸쉬카르에서 '마크라메'라고 불리우는 실공예 레슨을 받았다. 왁스실을 다양한 매듭으로 꼬아 팔찌나 발찌 등의 장신구를 만드는 것인데, 이 실도 동대문에서 비싸다는 말에 왕창 사버렸다. 우선 지르긴 했는데, 사고 나니 이걸 어떻게 짐지고 다니나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요즘 한국에서도 유행하고 있는 팔찌 스타일이여서 만들어서 팔아야지라는 생각에 흐뭇해하며 꿋꿋히 지고 다녔다. 현실은? 그 실 그대로 내 장롱 속에 쳐박혀있다. 언제쯤 만들려나...? 미지수다.


썽으니에게 마크라메 배우실 분 있나요?


푸쉬카르에서 다시 자이푸르로 돌아와서 인도를 떠날 차비를 했다. 인도에서의 마지막 날이 괜시리 아쉬워서 혼자 사리를 입고 정처없이 떠돌아다녔다. 한 번 쯤 다시 올 것 같긴 한데, 그래도 내 인생 마지막 인도일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어떤 여행지를 들리고 그 곳을 떠날 때마다, 내 인생 중 이 곳에 들리는 마지막 순간일 것이라는 생각이 항상 스쳐지나간다. '내가 과연 이 곳에 다시 올 수 있을까?' 그래서 한 도시 한 도시가 더 애틋하게 느껴지고, 순간 순간의 시간을 더 누리기 위해 노력했던 것 같다. 지나가다가 호객 행위에도 모르는 척 넘어가 주기도 하고, 설사 걱정도 잠시 내려놓은 채 아저씨가 권하는 짜이도 마셔보고, 어디선가 노래소리가 들려 따라가 보기도 했다. 들어가보니 유치원 아이들이 모여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는데, 나와서 감자칩 20개를 사서 다시 들어갔다. 개당 200원 밖에 안하는 감자칩이었지만, 아마도 그 아이들은 쉽게 먹을 수 없는 간식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도 정말 좋아했고 선생님들도 굉장히 고마워했다. 그렇게 인도에서의 마지막 추억을 만들었다. 


인도 유치원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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