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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부탐구생활 Aug 03. 2020

뼈가 약한 아이

24살, 출산의 기억


당신의 삶에서 만난 스승님은 누구 인가요?


누군가 내게 이 질문을 한다면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난 나의 큰아들이라고 대답하겠다.

아이는 준비되지 않은 나에게 처음 와 준 그 순간부터 큰 결단과 책임감을 알려주었다.


아이가 뱃속에서 6개월 즈음 산부인과 담당 의사 선생님께서 초음파를 확인해 보시고는 큰 병원에 가서 정밀 검진을 받아 보는 것이 좋겠다는 소견을 주셨다.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봐도 초음파로 보인 아이의 양쪽 허벅지 뼈는 선명하게 휘어있었다.


진료실을 나와 수납을 기다리는 그 시간 동안

나는 소리 없이 뚝뚝 눈물을 흘렸다.

철부지 엄마는 임신한 줄도 모른 체 지냈고,

임신 기간  입덧은 또 왜 렇게 심했는지 좋은 음식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순식간에 변한 환경과 몸 상태에 심적으로도 예민하고 불안한 상태였기에 아이가 아픈 것이 모두  다 내 탓인 것만 같았다.



대학 병원에 다니며 산부인과 진료를 받았다.

병원에 갈 때마다 꽤 오랜 시간 초음파를 하며 인턴 의사들이  내 뱃속을 들여다보며 뱃속 아이의 상태를 공부했다.

나는 매일같이 기도하며 아이의 건강을 빌었지만 야속하게도 거꾸로 누워있는 아이의 자세가 돌아오지 않았고 결국, 제왕절개 수술 날짜를 잡고 중환자실을 대기해 둔 체 출산을 했다.

자연분만이라도 하고 싶다는 나의 작은 바람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


설명하자면 어렵지만 쉽게 말해 ‘뼈가 약한 아이’라는 병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


태어나자마자 발목 골절과 함께 중환자실로 이동되었다. 아이를 안아보지도 한번 바라보지도 못한 채 마취에서 깬 나는 눈물로 출산 후 후유증을 앓아야 했다.  

많은 이들에게는 축복 가득한 출산의 시간이 나에겐 가슴 아프고 힘든 시간이 되었다.

묵직한 배 통증을 부여잡고 어떻게든 아이에게 초유를 먹이고 싶어 젖이 잘 돌 수 있도록 꾸역꾸역 밥을 먹는 것이 내가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었다.


하루 두 번 허락된 아이와의 면회시간이 되면 수술 통증도 잊어버리고 성큼성큼 아이를 만나러 다.


침대에 누워있는 2.6kg의 작디작은 아이의 발목에는 붕대가 칭칭 감겨있다. 안아 볼 수조차 없어  만질 수조차 없는 작은 아이를 쳐다보며 또 다시 약한 엄마는 소리없이 눈물만 흘릴 뿐


 퇴원하는 날 병원에 아이를 놓고 와야 한다는 사실은 내 가슴을 더 찢어지게 했다.

퇴원하기 전 날 밤 조용한 병실에서 혼자 숨죽여 얼마나 울었는지, 그때를 떠올리기만 해도 여전히 찌릿찌릿 가슴이 저려온다.


' 엄마가 미안해, 안아주지 못해 미안해  미안해 .. '


다행히도 며칠 뒤 아이 퇴원 소식을 듣고 아이를 집으로 데려올 수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무사히 퇴원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그 당시에는 모유수유의 중요성에 대해 정말 많은 정보와 책들이 쏟아지고 있었고, 나 역시 아이가 퇴원하고 돌아오면 양질의 엄마 젖을 마음껏 먹이고 싶었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생각처럼 젖이 나오지 않는다.

남들은 젖이 남아돌아 버리기도 한다는데

족발 달인 물에 매 끼니를 고봉밥으로 챙겨 먹어도 젖이 돌지 않았다. 그렇게 난 아이를 건강하게 낳지도 젖 하나도 충분히  아이 배를 부르게 먹이지 못한다는 죄책감에 또다시 힘겨웠다.


축복 가득해야 할 출산의 기억은 24살 나의 삶에서 ,

 어느새 감당하기 힘든 두려움과 죄책감의 시간으로 물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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