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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궤변론자 Jun 27. 2024

남자 주양육자가 주로 듣는 말말말

안녕하세요. 상처 잘 받는 '소인배' 남자 주양육자 입니다. 

아기 돌 기념 사진

 남자로서 주양육을 하게 되면 듣게 되는 말들이 참 많습니다. 물론 대 훈수, 비방, 참견의 시대에서 남자 주양육자뿐만이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들도 모두 겪는 일이겠지만요. 그럴 필요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오해와 억측을 피하기 위해 참 부단히도 스스로를 증명하고 설명해 왔습니다. 아직도 그 어떤 '엄마'보다 번듯하게 육아와 살림을 잘 해내고 싶어 발버둥 치며 살아가는 중이기도 합니다. 


 많이 익숙해졌다고 생각하지만 지금도 한 번씩 속과 눈이 뒤집히는 말들이 있습니다. 요즘은 이런 걸 두고 긁혔다고 표현하더라고요. 네, 전 참 쉽게 잘 긁히는 소인배이긴 합니다.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자격지심에 혼자 상처도 참 많이 받습니다. 아무래도 정형적이지 않은 형태의 삶을 살고 있다 보니 더욱 이 모양이(?) 된 것 같습니다. 나의 약점을 고해하는 마음으로 이곳저곳에서 들었던 속과 눈이 뒤집히는 말들을 적어보렵니다.


1. 남자가 육아를 뭘 해?


 여적여(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이 있죠. 이 경우는 남적남입니다. 제가 처음 전업 육아와 살림을 결심하고 회사에 퇴사 통보를 할 때 대부분의 나이 많은 상사, 선배들은 저에게 물었습니다. "남자가 육아를 뭘 하게?", "처갓집은 안 도와준대?", "네가 가서 도움이 돼?", "퇴근하고 도와주는 거로는 안 되는 거야?" 오래된 남초 대기업이었기 때문에 유독 더 심했는지는 몰라도 얼마나 많은 남자들이 육아에 얼마나 무지하고 무관하게 살고 있는가, 무관하게 살아왔는가를 여실히 느끼게 되는 부분이었습니다. 


 어떤 이유로, 왜 제가 육아와 살림을 하게 되는지는 전혀 관심은 없었습니다. 그저 '남자'가 '육아'와 관련해서 주된 입장이 된다는 것 자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이었죠. 시대에 따른 문화적 차이라고 해야 할까요. 저는 도저히 어떻게 이해를 시켜야 할지 갈피를 잃었고 그냥 깔끔하게 포기하고 퇴사를 하게 되었더랬습니다.


2. 부럽다. 좋겠다. 내가 바랬던 삶이야. 


 제 또래의 남자들은 어느 정도 이해하고 받아들이긴 합니다. "큰 결심 했다.", "고생이 많다."등의 말도 많이 듣긴 했습니다. 다만 동시에 덩달아 들려오는 말들이 있습니다. "부럽다.", "좋겠다.", "내가 바랬던 삶이야." 등. 마찬가지로 참 육아의 현실과 어려움을 모르는 무지의 말들입니다. 심지어 아내가 있고 아기가 있는 남자들도 같은 말을 할 때가 있습니다. 본인 얼굴에 침을 뱉고 본인의 아내를 욕하는 말인 줄도 모르고요. 


 처음엔 이런 소리들을 들을 때마다 눈이 뒤집혀 달려들곤 했었습니다. 내가 지금 얼마나 힘든지를 어필하고, 육아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토로했습니다. 아무도 몰라주는 섭섭함, 홀로 육아를 하는 것에서 오는 외로움과 혼자 멈춰있는 것 같다는 불안감 등을 어필하고 또 어필했죠.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가 참 비참하게 느껴지면서 그런 친구들과는 자연스레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더는 바라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 맞겠죠. 타인이 격고 있는 삶과 입장을 100% 공감하고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요.


3. 아빠가 아기 기저귀는 갈 줄이나 알아?


 아빠가 아기를 안고 다니거나 데리고 다니면 아무래도 불안하 신가 봅니다. 특히 어르신들은요... 아기 안고 어떤 골목길을 지나면 어디선가 나와계신 어르신들이 꼭 한 마디씩 하십니다. "어휴 애 떨어질라! 아빠가 아기 안고 있으면 불안해", 양말 없이 맨발로 데리고 다니면 여지없이 날아옵니다. "아기 춥겠다! 아빠라서 그런가 무심하네" 꽤나 더운 여름날씨였음에도 말이죠. 


 한 번은 아기 돌배기 정도 되었을 때 유모차에 태우고 산책 중 아이가 응가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근처에 기저귀를 갈 곳을 찾다가 도저히 없어 인근 어린이집 벨을 조심스레 누르게 되었죠. 아기 기저귀를 좀 갈 수 있겠냐는 부탁에 원장선생님은 흔쾌히 들어오라고 해주셨고 다행히 그곳에서 아기를 눕힐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역시 들려오는 한마디가 있었죠. "아빠가 아기 기저귀는 갈 줄은 아세요? 호호" 이런 종류의 말은 너무나 빈번히 자주 듣는 말입니다. 이제는 유쾌히 받아들이면서 "아기 제가 키워요~"라고 대답합니다.


4. 그래도 아기한테는 엄마가 필요해


 가장 듣기 싫은 말이기도 하고, 또 그만큼 제가 가장 쉽게 '긁히는' 말이기도 합니다. 저희 아내가 아기를 안 돌 보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전 글에 적어둔 것처럼, 저희 아내는 전통적인 아빠의 삶을 살고 있고 저는 전통적인 엄마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저는 저희 아이가 나쁜 의미의 '아빠가 키운 티 나는 아이' 즉, '여기저기 세심하게 관리받지 못한 것이 티 나는 아이'라는 속뜻이 담긴 말을 듣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어떤 '엄마'보다도 더 그럴듯하게 아기를 키우고 싶다는 욕심이 커져 갔죠. (그 욕심은 결국 저와 가족을 갉아먹는 불화의 씨앗이 되긴 했습니다. 자세한 얘기는 다음번에 조금 더 적어보겠습니다.) 나름 최선을 다해 육아책과 관련 교육영상 자료를 탐독하고 공부하며 성심껏 아기를 케어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자는 얘기하더군요. "그래도 아기한테는 엄마가 있어야 해." 저에게는 참 잔인한 말로 들렸습니다. 저 말이 맞다면 저와 제 아내는 아기를 방임하는 아동학대 부모가 되는 셈이니까요. 


 사실 위 말들에 긁힌 것은 순전히 제 자격지심에 의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음이 조금 더 여유로웠다면 아빠가 아기를 보는 게 익숙한 광경이 아닌 만큼 당연히 받아야 하는 시선이고 말이라 생각하고 가벼이 넘길 수 있었을 것도 같습니다. 다만 반복되고 거듭되는 똑같은 일상에 지치고, 하루에 3시간 이상 잘 수 없는 신생아 케어에 멘탈은 무너지니 점점 예민해지는 성격 탓에 좀 더 예민하게 받아들이게 된 것 같기도 합니다. 저 또한 제가 회사를 그만두고 육아와 살림을 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던 탓에 더욱 자격지심이 크게 발동된 것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소인배답게 마음에 남은 또 다른 말들도 많지만 이 정도로 마무리하겠습니다. 다음번에는 아빠 주양육의 장점도 한 번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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