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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궤변론자 Jan 02. 2023

[가벼운 글] 글 쓰는 사치

정신을 차려보니 브런치라는 마약에 흠뻑 빠져 있다.

 밤 11시 아이가 잠에 들고 미뤄둔 집안일까지 모두 마친  시간, 살며시 브런치를 켜고 키보드를 듭니다.




 어느 날 갑자기 브런치를 시작해야겠다는 결심이 섰습니다. 약간의 현실 도피 같은 것이었습니다. 름 건장한 체격에, 보병 중위 만기전역까지 한 남자로서, 체력에는 자신 있었지만 육아는 생각보다 더 바쁘고 지치는 일이었습니다.


 사랑스러운 저희 아기는 이제 태어난 지 76일이 됐습니다. 두 명 살림에 아직 60cm도 안 되는 조그마한 아기 하나가 추가된 것뿐인데 집안일은 왜 두세 배가 됐을까요. 이제 겨우 5kg 왔다 갔다 하는 아기가 왜 이리도 천근만근으로 느껴질까요. 육아를 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아기스케줄에 맞춰 살다 보면 하루가 금세 갑니다. 먹이고, 치우고, 씻기고, 기저귀 갈고, 안아 달래고, 달래고, 달래고의 일상이죠. 너무나 지칠 때에는 내 이쁜 아가지만 붙잡고 울고 싶어 질 때 있더라고요... 여담입니다만 남자인 제가 해도 지치고 힘든 육아와 살림을 출산을 한 지 얼마 안 된 여성이 혼자 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렵고 고된 일인지 상상도 되지 않습니다. 그것을 해내고 있는 이 세상 모든 엄마들... 정말 존경합니다...


 태어난 지 76일 된 아기가 있다는 것은 출산한 지 76일 된 아내가 있다는 것이지요. 제가 간접적으로나마 겪은 임신과 출산의 과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기적의 연속이고 놀라움의 향연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마찬가지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괴로움과 고통, 고난이 함께한다는 것 또한 알았습니다. 그런 모든 과정을 겪고 이겨낸 아내는 큰 상처를 얻은 뒤에야 아이를 안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런 아내에게 육아까지 하라 맡기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애초에 아내는 살림에 병이었고 결혼 전부터도 제가 어느 정도의 살림을 도맡았기에 '그렇다면 내가 살림과 육아를 전담하겠다!' 선포했던 것이었습니다. 직 출산휴가 중인 아내도 함께 집에 있기에 그래도 아내가 적극적으로 육아를 도와주고는 있습니다. 다만 아내가 성치 않은 몸으로 아이를 안아 드는 모습이 보기 싫은 저는 더 적극적으로 육아를 전담하려고 합니다.


육아와 살림의 반복. 밤을 새며 아기 수유를 하고, 젖병을 척하고, 식사를 준비하고, 설거지를 하고, 아기를 안아 들고 달래며 청소와 빨래를 하다 보면 어느새 하루가 갑니다. 마음 편히 잠을 자본게 언제인지 모르겠네요. 이런 일상의 반복에서 브런치가 떠오른 건 비단 마음속 어딘가 숨겨져 있던 글작가라는 청운의 꿈을 이루고 싶다는 이유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하루하루 견뎌가는 육아와 살림 점차 닳아 어지고 있는 나를 다시 한번 온전한 나로서 다시 빚어보고 싶은 마음도 적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밤 수유가 끝나고 칭얼대는 아기를 달래다 쇼파에서 함께 잠든 아빠와 딸 _촬영자:아내


 글을 쓰기 위해서는 작가 등록을 해야 하는 줄도 몰랐던 브린이중에 브린이인 저는 소문으로만 들어왔던 브런치라는 신세계를 탐방하기 시작했습니다. 수많은 분야의 수많은 작가님들께서 올려주시는 재미나고 즐거운, 때때로 슬프지만 그 속에 감동이 배어있는 글들이 풍성하게 저를 반겨주었습니다.  도 이곳에 스며드는 게 가능할까. 별것도 아닌 내 글에 누구라도 관심을 보여줄까. 아니 관심은 고사하고 나 까짓게 심사를 통과할 수는 있을까. 불안하고 초조한 설렘을 안고 첫 글을 쓰고 작가등록 신청을 했습니다. 며칠 후 탈락을 확신하고 재도전을 다심하는 순간 심사 통과 메일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첫 번째 글, 두 번째 글을 발행했습니다. 참 떨리는 순간이었습니다. 너무 짜치거나 수준미달의 글이라고 비웃음을 사지는 않을까 얼마나 걱정했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수줍게 발행 뒤, 하나 둘 라이킷을 알리는 알람이 울렸습니다. 가끔 너무나 과분하게도 댓글까지 달아주시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하나둘 오르는 라이킷 수를 확인하고 대댓글을 다는 것이 너무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아! 이 맛에 브런치를 하는구나. 이 맛에 글을 쓰는구나. 저는 점점 브런치라는 마약에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이제 브런치는 저만의 작은 놀이터가 되었습니다. 비록 살림 육아로 다른 분들 보다는 글 발행 속도가 정기적이지도 빠르지도 못 하지만, 느리지만 꾸준히 키보드를 듭니다. 이제 조금씩 짬이 나면 브런치 작가분들의 재미난 글도 찾아보고, 다음 쓸 제 글을 구상도 해보면서 저만의 시간을 즐겨봅니다. 고단하고 피곤한 일상 중 조심스레 글 쓰는 사치를 부려봅니다.


브런치에 계시는 모든 작가님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하시는 일 모두 무탈히 좋은 성과 있으시길 바라겠습니다! 모두 행복한 2023년이 되시길 빕니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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