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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리라 Aug 05. 2021

잘 살고 싶은 건지, 잘 헤어지고 싶은건지

부부상담의 목적은 무엇일까 고민하며

‘여보

우리 부부상담을 좀 받아볼까?


사전에 아무런 대화의 연결성도 없는 6월의 어느날 내가 툭 하고 보낸 이 카톡메세지에 대한 남편의 대답은


‘그래’

라는 단답형의 대답이었다

참.. 그 다운 대답이었다. 왜 하자고 하는 건지 나의 생각을 알고 싶은 질문도, 이말을 들은 본인의 생각이나 기분은 어떤지 등을 나타내는 부연설명은 없다. 그저 단답형의 대답으로 말을 꺼낸 나를 답답하게 만드는 그의 대화법은 여전하다.


지난 4년동안 숨막히는 침묵이 항상 우리 부부사이에는 있었다. 하루종일 재잘재잘 시끄럽게 떠들던 두 아들들이 잠들고 나서 가끔씩 남편과 나는 둘다 잠들지 않고 깨어있는 밤이 있다. 그 시간이면 어김없이 둘 사이에 생기는 적막함때문에 예전에는 도대체 둘이 무슨 이야기를 나눴던 걸까 하고 상대방을 투명인간처럼 취급하며 움직이는 그 어색함 조용함 속에서 우리의 예전을 떠올려 보았다.

여행, 부동산, 하루의 일과, 내일의 계획 등 지금과 별다르지 않은 주제였다. 다른건 그저 그때는 즐겁게 나누던 대화들이 지금은 말만 꺼내면 결국 싸우게 되는 이야기가 된다는 것이 차이였다.


우리 사이에 처음 이혼이라는 단어를 꺼낸 것도 부부상담 얘기를 꺼낸 것도 내가 아닌 남편이었다. 둘째가 태어나고 백일도 안된 시기였던것 같다.

2018년 그때는 모든면에서 굉장히 힘들었던 시기였다. 사기를 당하고 피해자가 되고 어느 순간 가해자로 몰아지면서 가장 가까운 믿었던 사람들에게 제일 먼저 배신을 당하는 드라마 같은 일을 버텨내는 와중에 나는 둘째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다. 왜 하필 지금인가 싶었던 계획에 없던 두번째 임신이었지만 돌아보면 그 시기에 나를 살아있게 지켜 준것은 뱃속에 있는 아이였다.

인생에서 큰일을 겪으면서 우리 부부는 감정이 극한까지 서로 몰렸고, 여기에 시부모님까지 가세가 되었던 시기였다. 상대방의 행동이 이해가 안되고, 섭섭함을 넘어 괘씸함이 되어가고, 서운함이 분노로 바뀌는 시기에 꾹꾹 눌러담던 감정을 결국 먼저 폭발시킨 것은 성격급한 시어머님이었다.


어느 날 밤, 시어머님은 근래의 내 행동과 나에게 쌓인 서운함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때의 나는 태어난지 백일도 안된 신생아를 케어하며 밤낮이 뒤바뀐 바이오리듬과 시어머니가 아니어도 매일 전화오는 날선 채권자와 쓰린 대화와 가까웠던 지인들이 벌인 소송으로 인한 법원과 경찰의 연락으로 마지막 정신력으로 집에서는 티를 내고 싶지 않아서 아무렇지 않은 척 하고 있었지만 내 정신이 아닌 상태였기에 불편한 대화는 되도록이면 늦게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본인이 답답한 것을 못 견디고 지금 말해야 하는것을  반드시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향의 시어머니는 시간을 조금 더 갖고 싶어한 나의 의사보다 본인의 답답함을 풀고자 하는 것이 더 강하셨기에 그 얘기가 나온 늦은밤에 아버님을 대동하고 우리집에 찾아오셨다.


두 아이를 재우고 나와 남편, 시부모님 이렇게 4명이 테이블에 앉았지만 나는 철저히 혼자였다. 아버님은 본인의 배우자인 어머님의 편에 서 있어 주었지만 (비록 어머님의 주장이 편향적이라는 걸 인정하면서도 아버님은 남편의 본분을 지키셨다) 나의 배우자인 남편은 그 상황에 놓인 나를 방관했고, 아들의 역할을 좀 더 앞세우면서 나를 비난하며 그때 처음으로 상담이라는 단어를 꺼냈었다

그 시절은 상담이 현실이 이어지지 않았다.

아마… 먹고살기가 더 급급했던 시기였기 때문에 그런것도 같다.

진짜 상담이 우리 사이에 시작된거는 그뒤로부터 3년이 흐른 내가 다시 말을 꺼낸 2021년 6월이었다.


아마도 6월에 처음 부부상담을 해보자고 처음 말을 꺼낸 내 마음은

“남편과 앞으로 잘살고 싶어서”쪽이 더 컸던거 같다.


가슴이 터질듯한 답답함에 나는 말이 나온 당장에 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일정 그리고 집에서 가까운 위치의 나름 인지도가 있는 상담사를 찾았지만

남편은 구에서 지원하는 무료상담을 이용해보는게 어떠냐고 말을 했고

늘 그렇듯.. 나는 그러자고 했다.

그는 늘 그 어떤것보다 비용을 먼저 생각하는 기준이 있는 사람이다. 좋게 표현하면 절약이 몸에 밴사람이고 그 성향은 내가 돈을 많이 벌때도 여전했고, 내가 망하고 돈이 없을때 이후로는 더 심해졌다.


오랜 대기를 하고 우리의 상담은 그로부터 한달반 뒤에 시작되었다. 그것도 강화된 코로나 규제로 상담사와 비대면 온라인 줌 상담이었다. 이런 사실을 미리 남편이 말해주지 않았기에 나는 상담 당일 아침에 알았다.

줌 상담이라는 걸 알고 있었냐고 물었고, 남편은 신청할 때 부터 알고 있었다고 대답했다. 왜 나한테 미리 알려주지 않았냐고 물으니 그냥..뭐…라고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외출을 예상하고 이런저런 신경을 쓰고 있던게 허무해 지는 순간이었고, 시작도 하기 전부터 항상 남편에게 느끼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없는 무심함때문에 남편을 향한 분노가 일었다.



상담을 기다리고 시작하는 날까지의 한달반동안 나의 마음은 “잘 헤어지고 싶어서”쪽으로 바뀌어 있었다.

나는 무언가 행위를 함에 있어 목적지향적인 성향이 강한 사람이다. 어떤 시작을 할때는 나만의 작은 목적을 정해두고 일이나 공부를 시작한다. 하지만 부부상담의 첫날, 나는 아무런 기대도 목적도 없었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일까 게다가 줌 상담이라니.


남편에 대한 마음을 접고,

상담으로 인해 무언가 나아질 기대를 접고,

그렇게 둘이 화면을 바라보고 앉아서 상담사를 만나는 첫 시간에 대한 나의 심정을 표현하는 단어를 고르자면 “분노”였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인 남편의 새삼스러운 발견이었다.


세상만사 아롱이 다롱이 겠지만

우리 부부는 만남부터 나이차, 집안에서의 역할까지 모두 세상의 일반적인 기준과는 조금은 남달랐다.

우리는 각자 유럽여행을 갔던 프라하 숙소에서 첫 만남을 가졌고, 여행지에서 만난 인연은 그 사람의 배경보다는 오직 사람 하나만을 보고 호감도가 결정되기에 서울에서의 만남이었다면 절대 시작되지 않을 26살 남자와 32살 여여자의 연애는 여행에서 씌여진 콩깍지로 인해 서울로 돌아오고도 이어지게 되었다. 가볍게 만나는 거야 라며 시작한 것에 비해 연애이후 서로가 너무 빨리 좋아졌고 만난지 3개월만에 결혼을 결정짓는 이야기가 서로 오갔다.


연애부터 첫아이 출산까지 우리는 한번도 싸운적이 없었다. 나는 먼저 사회에서 자리잡으면서 배운 경험과 여유로움이 있었기에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남편에게 전혀 닥달하지 않았고 남편은 그런 나에게서 편안함을 느꼈다. 경제적인 부분은 어차피 내가 책임지고 가려고 시작한 결혼이었고, 내가 남편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사랑과 경제적 안정감 이었고 내가 남편에게 기대한 것은 사랑, 관심, 존중과 응원 같은 것이었다. 서로간의 이러한 부분을 잘 채워주는 시간동안 나와 남편은 정말 싸울일이라곤 없었다.


하지만 첫 아이가 태어나고 점점 감춰져 있던 성격차이가 보이기 시작했고, 그때는 부부사이의 싸움이 일어나는 원인이 모두 시어머니라고 생각했다.

시어머니가 나에게 했던 말과 행동으로 싸움이 났기에 부부사이에 싸우는 날이 생길수록 점점 나는 시어머니에 대한 원망만 커져갔다.

하지만 2018년 그날 밤의 테이블에 앉아본 뒤 나는 깨달았다. 내가 남편과 싸웠던 이유는 엄한 시어머니탓이 아니였다. 나와는 다른 남편의 성격, 내 기대와는 전혀 다르게 하는 남편의 행동이 주된 원인이었던 것이다.


그 날이후 시어머니와는  잠시 냉각기를 갖게 되었고, 오히려 그 뒤로 나는 시어머님을 행동을 다 수긍은 못하지만 그래도 많이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몇년 동안 마음속에 쌓여있던 미움도 많이 사라졌고 밖으로 티는 많이 못냈지만 지금은 오히려 시어머니가 남편집안 사람들 중에 가장 편하기까지 했다. 남편이 멀어지고 불편해 지고 나서 얻은 성과물이랄까..


4년전 그날이 오기전 나는 꽤 자수성가한 사업가로써 빛나는 탄탄대로를 걷고 있었다. 그리고 현금흐름이 아주 좋은 사업을 유지중이었기에 인생의 자본주의 레벨 또한 마구 상승확장이 되던 시절이었다. 그러다보니 그 시기에 아직 어린 아이를 케어하는 건 자연스레 남편이 육아휴직개념의 휴식기를 가지면서 전담하게 되었다.


남자와 여자의 역할이 달랐으면 어땠을까?

남편이 의사인 지인이 있었다. 그녀는 음악을 전공했지만 성형외과 의사로 자리를 잡아가는 남편을 서포트하면서 쌍둥이를 출산하고 막내딸을 출산하며 본인의 본업보다는 남편의 사업을 조력하는 역할에 집중했다. 누가봐도 자연스러웠다.. 그리고 그녀는 그 와중에 본인의 전공을 아예 놓아버리진 않고 띄엄띄엄이라도 살려나갔다. 그 모든걸 가능하게 해준 베이스는 의사인 남편의 소득이 점점 늘어갔고 현금흐름이 좋아지고 있었기 때문인 부분도 컸다고 생각이 들었다.


같은 상황에서 우리 부부는 여자인 내가 사업으로 성공했다. 남자인 남편은 임용고시를 준비하면서 계약직 강사를 준비하던 와중에 나와 결혼을 했고, 선생님이 되는 것이 본인의 목표였지만 육아를 전담하면서 막연히 생각했던 고시준비에 대해 좀 더 손을 놓게 되었다. 하지만 잠시 손을 놓았을 뿐 나이가 아직 어린 남자였기에 아이가 적당히 크고 나면 본인이 다시 공부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고 나역시 그 생각을 지지해 주었다. 점점 나의 사업이 커져가면서 남편은 내 사업에 참여하여 나를 돕게 되었고 그렇게 본인의 꿈보다는 한팀인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는데 본인의 역할을 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던 시기에 내가 망해버렸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나고 상담사 앞에 앉은 남편은

이 상황을 설명하며

나 때문에 본인의 꿈을 향한 과정인 임용고시도전을 멈췄고,  지금도 못하고 있으며 그래서 내가 원망되고 본인의 삶이 이렇게 불안정하다고 말했다

우리는 결혼 8년차의 부부이다.

결혼 생활중에 상위1%에 드는 삶을 영위하던 앞에 4년도 있었고, 철저하게 흔들리는 불안정한 삶을 살아야 했던 뒤에 4년의 시간도 있었다.


남편은 앞에 4년에서도 나를 원망했고, 뒤에 4년에서도 나를 탓했다.

앞에 4년동안 우리 부부 사이에서의 싸움이 나곤 하면 나는 남편에게 고마움을 모른다고 말하고, 뒤에 4년동안 싸움을 하며 지내온 지금도 나는 남편이 고마움을 모른다고 느낀다.


오늘까지 3번의 부부상담을 했다

첫날은 같이 앉아서 상담사와 이야기를 나눴지만

2회차는 남편 혼자, 3회차인 오늘은 나 혼자 상담사와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 사이는 별다른 진전은 없다

아직도 내 감정은 이 부부상담의 목적이 “잘 헤어지기 위한 상담”이라고 생각되고 있으며 상담이 진행된 이후에도 여전히 우리 부부는 필요한 말 이외의 대화를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우리는 거의 매주 아이들과 캠핑을 가고, 6시면 퇴근해서 저녁시간을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며, 모든 휴일과 주말을 4인1조로 보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둘은 단답형의 대화 이외의 말은 나누지 않는다.


사랑해서 결혼한 사람이 이렇게까지 미워질 수 있고 싫어질 수 있다는 걸 경험하는 과정은 씁쓸하다.

그렇게 밉고 싫은데도 사소한 하나의 사건에도 웃음이 터질때가 있고 금방 화해를 한다는 것이 신기할 때도 있다.

그렇지만 이 과정이 반복되면 허망함이 찾아온다.


옆에 있는 누군가로 인해 기운을 얻고 따뜻함을 전달받을때도 있지만, 내 옆에 있는 누군가로 인해 극도의 외로움을 경험하게 되는 일도 있다는 것을 남편과의 8년의 결혼생활에서 알게 되었다.


한창 싸움이 격해지던 2018년에 남편이 이혼얘기를 꺼냈을때 그때 나의 대답은 우리가 가난해서 지금은 헤어지지 못하겠다 였다. 지금 상태에서 둘이 헤어지면 지금보다 더 비참해지는 삶을 살아야 하기에 반드시 다시 부자가되고 헤어져 주리라 다짐했다.

2021년인 지금은 그때보다 상황은 좋다. 여전히 나는 가장마인드로 살고 있기에 나의 관점에서 현재의 경제상황을 돌아보자면 나의 사업은 아직도 엉망이지만 집과 자산은 정상화가 되었기에(이게 어떻게 가능하냐 싶겠지만.. 가족을 위해 내 삶 하나를 희생시키면 가능한 것이었다) 아마 우리가 헤어져도 적당히 서로 살아갈 수 있는 경제상태인 것 같다. 하지만 지금도 우리가 헤어지지 못하는 이유는 아직 어린 아이들 때문이다.


아이들을 너무 사랑하지만 내 삶도 소중하기에 나는 숨이 막힐꺼 같았다. 아이들을 위해 이 가정을 유지하자니 나를 갉아먹는 듯한 남편의 변화없는 태도와 싫음에도 계속 함께 붙어있어야 하는 시간이 너무 괴롭게만 느껴졌다. 숨을 쉬고 싶어서 부부상담이라는 끈을 잡게 된거 같다


10회동안 진행되는 이 부부상담의 끝에서

우린 평범함을 되찾을 수 있을까?

너무 기대가 없고, 마음이 닫힌 나는 그저 시간이 빨리 흐르기만을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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