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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리라 Feb 15. 2023

내 인생에 알바생이라는 작은 조각이 생겼다

[알바가 된 사장님 #3]첫날의 소회

얼마전 독서모임에서 "설국"을 다룬적이 있었다.

나의 정신적 탈출구인 애정하는 독모는 참여자간의 케미가 좋은 모임이다. 그렇기에 2시간여 동안의 짧다면 짧은 나눔의 시간동안 꽤 진중한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그날 멤버들이 "설국"에 대해 내리는 평점은 대체로 좀 낮은 편이었다. 

특히 한량같은 남자주인공 시마무라에 대한 평가는 더더욱 낮았다.

나 역시 전체적으로 비슷한 느낌의 평을 내렸지만 다른 사람들의 평과 내가 조금 달랐던 건 그런 시마무라가 이해가 되는 부분이 있었던 거였다.


"저는 시마무라처럼 그냥 어딘가로 홀로 떠나서 나를 모르는 사람과 편하게 시덥잖은 이야기를 나누고 파요

그게 인생을 아직 겪지 못한 순수한 젊은이어도 좋고, 나처럼 풍파를 많이 겪은 동년배여도 좋고, 모든것이 지나가고 편안해진 노인이여도 좋을꺼 같아요"

내 차례가 되었을때 내가 꺼낸 첫 마디였다.


나는 요즘 나에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가장 편했다.

내 삶의 전체가 아닌 한조각만 떼어내서 이야기를 나누는 대상이 있다면 그 만남에서만큼은 잠시 현실의 시름을 뒤에 감추고 편안함을 느낄 수 있을 꺼 같았다.

이런 생각이 드는건 아마도 지금 내 인생은 최악의 엉망진창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았다.

누군가가 내 인생 전체를 뚫어보고 채점을 매긴다면 보나마나 빵점만을 줄 수 밖에 없는 지금의 나일꺼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나라도.. 조각조각 떼어내서 바라보면 잘하고 있고, 잘하는 역할이 있기에.. 그런 부분부분이라도 유지해보려고 애쓰는 내가 있다는 것을 어떡해서든 인정을 받고 싶어서. 

내 삶의 한 조각만을 떼어내 이야기를 나눌 상대가 필요하다고 이야기 하는 것 같았다.


인생이 힘들면

관계를 조각내서 맺어가게 된다.

나의 전체를 평가받는 것이 아닌, 부분만을 나누어 보여주고 관계를 맺어가는 것. 그렇게 관계를 조각내는 것이다.

어른이 되면서 생기는 변화라고 생각한다. 


어릴 때는 나에 대한 모든 걸 알고 있는 친구가 편했다.

하지만 이제는 나에 대해 너무 많은 걸 알고 있는 사람은 불편하다.

그냥... 나도 어딘가에 가서 숨을 쉬고 싶은데.. 현재 힘든 삶의 나를 모르는 사람에게서 그 편안함이 찾아지는 것 같다.

아마.. 시마무라가 고마코에게 찾았던 건은.. 그런 조각의 편안함이 아니었을까?


나는 아르바이트생이 되면서 그런 조각하나를 더 만들었다.


새로운 알바를 시작하면서 맺어진 사람들에게 나는 그냥 평범한 주부였다.

첫날이지만 금방 새로운 공간에 적응하는 알바.

손이 빨라서 도움이 많이 된다고 느껴지는 알바.

(나도 사장님인걸 숨겼기에) 사장님의 고충을 엄청 잘 공감해주는 알바.


그곳에서 나는 여느 평범한 사람처럼

샌드위치 만드는 법에 대해서 배우고,

처음 다뤄보는 커피머신 사용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아직 한달밖에 안되서 적응이 안된 사장님을 동지처럼 응원하고,

인수인계를 해주고 떠날 기존 알바생의 둘째 고민을 상담해주는 육아 선배가 되었다.


그래서 오늘부터 그곳은 몸은 힘들지만 마음은 편한 곳

나의 또 하나의 조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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